|칼럼| 남·북한 의료기기 협력, 당장 이익보단 미래 투자

이진휴
발행날짜: 2019-02-12 00:07:10
  • 이진휴 의료기기규제연구회 위원

이진휴 의료기기규제연구회 위원
남·북한의 정치 경제적 평화 협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우리사회 각계에서도 북한과의 협력 방안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1월 30일자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명의로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면제요청을 공식 승인했다.

통일부는 이어 지난해 12월 10일 남북협력기금 가운데 725억원을 별도로 배정해 전염성 질병의 방역 등 남북한 보건의료협력 추진사업에 사용토록 결정했다.

특히 남북한 보건의료분야는 개성공단 병원을 비롯해 국제기구 등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최근까지 교류가 이어졌던 만큼 이해관계의 격차나 단절의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하지만 미래의 남북협력 양상을 예상해 볼 때 지금과는 다른 이해와 접근법이 요구된다.

우선 남북한 평화협력시대에 과거와 다른 몇 가지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남북한 보건의료분야 교류는 인도적 지원이나 일방적 원조 형식이 주를 이뤘다.

물론 북한의 사회경제적 기초체계가 미흡하고 경제적으로도 낙후돼 있는 만큼 민간투자나 상업차관의 가능성은 낮아 당분간 지원이나 원조 형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 개방에 대한 확고한 의지 표명을 고려할 때 남북한의 새로운 상호보완적 교류 형태를 모색해야한다.

협력이라는 형태가 국가 간 무역 형태를 가질 수도 있고, 또 양쪽 사회의 인적교류일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교류협력 체계를 구축해야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았던 과거 경험을 돌이켜볼 때 한국은 북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범위를 좁혀 의료기기에서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북한과의 협력·지원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의료용품이나 의료기기 단순 제공이 아닌 초기투자 개념으로 남한의 보건의료 주체들과 협력해 북한 의료기관 및 의료진 수준에 적합한 의료기기를 제공해야 한다.

북한의 시장 발전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한다.

과거 한국으로부터 일방적인 지원을 받았던 북한은 근래 높은 경제 성장률을 통해 충분한 시장 수요와 구매력을 갖추게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을 경제주체로서의 한 교역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기기 특성을 고려한 세부적인 상호협력방안을 추진해야한다.

첫째 의료기기나 의료용품의 경우 단순한 소모성 재료를 제외하고는 제품별 사용 특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반드시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특히 치료재료는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적용분야에 따른 사용상 적합성이 달라 의료진 등 전문가 집단과의 공조를 통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둘째 의료장비는 유지보수를 위한 기술이전과 소모품의 지속적 공급체계가 요구된다.

과거 의료장비나 의료용품의 일회적 지원으로는 동일한 의료의 질을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간단한 진단방사선장비의 경우도 유지보수에 대한 교육과 기술이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얼마 되지 않아 장비 사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모품 역시 지속적인 공급체계가 확보되지 않으면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사용 환경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장비 사용 환경이지만 북한의 경우 사뭇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장비 선정이 필요하다.

과거 남북교류가 한창일 때 남한에서 북한에 일반 필름형 X-ray를 공급했었다.

문제는 장비 소모품 공급 및 유지보수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얼마 사용도 하지 못한 채 창고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을 고려해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거점병원을 통해 원격진단이 가능한 디지털 방식의 장비를 선정해 설치하는 것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진료소별 진단·치료기기 보유율은 매우 낮으며, 그나마 사용 가능한 의료장비도 한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요인을 고려할 때 남북한 의료기기 협력은 중장기적 교류를 기반으로 의료전달체계를 고려한 북한 내 거점(병원)을 설정하고, 의료진 스스로 의료장비 사용법과 유지보수를 자체 재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은 한국 정부의 지원과 국내 의료기기제조사를 통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물론 국내 의료기기제조사 또는 의료기기단체는 단기적 실익보다는 중장기적 안목을 갖고 지원과 투자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국내사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 역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 의지만 있다면 남북한 의료기기 협력에 참여해 북한의 의료서비스 향상과 보건의료 발전에 일조할 수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이미 내부 TF를 꾸려 남북한 보건의료분야 교류의 한 축인 의료기기 협력·지원방안을 선제적으로 적극 모색하고 있는 점은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남북한 의료기기 협력은 당장의 이익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인 동시에 평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기업계의 남북한 의료기기 협력방안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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