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사는 왜 한국을 떠났나…인공혈관 사태 2년전 예고

발행날짜: 2019-03-13 05:30:56
  • 흉부외과학회, 지난해 2월 의료현장 심각성 우려했음에도 최악의 상황 초래 지적

|초점| 인공혈관 치료재료 공급 중단 사태 왜 벌어졌나

미국 고어사(社)는 왜 한국에만 인공혈관 등 심장수술 치료재료 공급을 중단했을까.

최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고어사가 독점 공급업체의 횡포로 판단,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을 두고 의료계 일각에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특히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의 핵심에 있는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이하 흉부외과학회) 등 일선 흉부외과 교수들은 독과점 업체의 횡포라기 보다는 정부의 탁상행정이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판단했다.

사실 흉부외과학회는 지금으로부터 2년전인 지난 2017년 2월, 인공혈관 공급 중단으로 심장수술 중단 사태를 예고했었다.

그렇다면 학회가 사전에 심장수술 중단 사태를 경고했음에도 왜 막지 못했을까. 시간을 2년전으로 돌려보자.

2017년 2월 27일 고어사의 한국 대리점 고어 메디컬(Gore Medical)은 한국 내 제품공급 종료를 결정, 2017년 9월 30일을 기점으로 대리점 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당시 업체가 공개적으로 밝힌 한국 내 철수 이유는 크게 2가지. 한가지는 보험상한가 인하정책에 대한 불만 즉, 공급가격이 타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까다로운 GMP규정을 꼽았다.

3년주기로 실시하는 실사과정에서 생산시설을 방문하는데 이때 기업의 영업 비밀을 포함한 방대한 자료 요구가 부담스럽다는 불만이었다.

실제로 당시 학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인조혈관 STRETCH TYPE(G0434004)'의 경우 한국은 약 46만원(보험코드 G0433004)인 반면 미국은 약 82만원, 중국은 147만원으로 크게 차이가 벌어졌다.

다른 국가 대비 현저히 낮은 공급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6년 6월, 12월 정부가 인공혈관 제품에 보험상한가를 인하 조치하면서 약 18.8~19%삭감이 결정되자 결국 고어사는 한국 내 철수를 결정했다.

당시 고어사 이외에도 복수의 인공혈관 업체가 철수 등 강경한 입장을 전했지만 고어사의 제품은 대체품목이 없어 특히 문제로 대두됐던 것.

흉부외과학회 관계자는 "일단 식약처 GMP규정과 관련한 불만을 논외로 치더라도 미국 대비 1/2, 중국 대비 3배이상 낮은 공급가격을 유지했던 업체에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적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흉부외과학회 "고어사 인공혈관, 대체 불가능한 치료재료 사태 심각" 수차례 우려

그 이후로도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흉부외과학회는 지난 2월, 식약처에 공문을 보내 대체가 어려운 치료재료를 공급할 수 있도록 앞서 고어사 측이 자진취하했던 허가를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신규 치료재료 등록을 위한 정식 절차를 밟아 줄 것을 요구했고 고어사 측이 서류제출을 꺼리면서 결국 식약처는 서류미비를 이유로 승인 불가결정 내렸다.

흉부외과학회는 2018년 2월, 즉각 식약처에 직접 공문을 보내 "병원이 보유한 재고가 소진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일부 병원 의사들은 해외학회 방문시 필요한 제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계획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고 호소하며 고어사의 인공혈관 등 제품에 대한 허가증 말소를 취소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회신 공문을 통해 "이미 지난 2017년 9월 30일자로 허가증 말소 취소 요청을 통해 자진취하한 부분을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회신했다.

다만 응급환자 또는 국내 대체 제품이 없는 자가 사용 목적의 의료기기의 경우 수입허가가 없더라도 관할 지방식약청에서 '시험용 의료기기 등 확인서'를 발급받아 수입, 사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말소된 허가를 풀어주는 것은 법적으로 제한점이 있어 복원은 어렵다고 했지만 유권해석을 통해 업체를 통해 수입할 수 있는 통로는 열어둔 셈"이라며 "충분히 공급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회 측은 "식약처가 단서조항으로 허용해줬다고 하지만 식약처의 기본방침이 허가증 복원이 어렵다고 밝힌 만큼 업체 측이 공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었다"며 "고어사 제품 납품을 준비했던 업체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허가만 기다렸지만 식약처의 반려로 올스톱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8년 10월을 맞이했고 흉부외과학회 측은 의료현장에서 바닥난 인공혈관 공급을 위해 또 다시 식약처 해당 관계자를 직접 만나 거듭 설득에 나섰고, 결국 최소한의 요건을 제시하며 허가 승인 답변을 받았다.

이후 학회 측은 고어사 측을 접촉해봤지만 고어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2018년 연말을 맞이했고 2019년 1월 올해 들어서면서 치료재료 공급 중단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터졌다.

뒤늦게 식약처는 지난 2월 인공혈관을 공급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줬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확산된 이후였다.

흉부외과학회 오태윤 이사장(강북삼성병원)은 "2017년부터 최근까지 직접 식약처 담당 과장 및 사무관과 만나 부탁하고 공문을 보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이는 독점 공급업체의 횡포라기 보다는 정부기관의 경직된 업무처리 방식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차례 정부기관에 수차례 우려를 표명하고 만날 것을 요청할 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이슈가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행보가 씁쓸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고어사 측도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번 사태가 해결되겠지만 이를 계기로 의료 전문가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기관의 업무 처리 방식에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 2017년 9월 허가를 자진취하한 업체를 4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들이 요구한다고 다시 승인해주는 것은 맞지가 않는다고 본다"며 "타 국가에 비해 까다로운 GMP기준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 인공혈관 공급가격이 타 국가 대비 공급가격이 현저히 낮다고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확인된 바 없어 이에 대해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9월 '희소·희수 치료재료'에 대해 건강보험 수가 상한금액 산정기준을 조정하도록 고시를 개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고어사가 철수하고 난 이후의 조치인만큼 학회 등 의료계 일각에서 뒷북 행정이라고 지적한다면 할말은 없다"면서도 "분명 고어사 측이 제기한 불만의 진위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와 식약처 등 정부기관은 지난 12일 흉부외과학회 등 의료계 관계자와 만나 당장 시급하고 대체불가능한 치료재료 항목과 학술적 의견을 수렴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미국 고어사를 방문해 최종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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