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유형섭
올해 초, 연구를 위해 병원청소노동자 근로 실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면접을 진행하던 중 인권실태와 관련해 여러 번 듣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우리도 같은 사람이에요.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세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 환자, 보호자를 포함한 병원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말은 소위 인간으로서 당당히 누려야할 권리,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힐 때 외치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인권이란 무엇일까?
인권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것 역시 의미 있지만, 현실에서 인권이란 말이 어디서 사용되고 적용되는지를 보면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인권의 범위를 볼 때 인권의 정의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범위는 적용되는 대상과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가면 군주제를 타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나설 때 인간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중산층 이상의 내국인 남성에게만 적용했으며, 적용되는 정도 역시 지금 정립되고 있는 건강권, 이동권, 재생산권 등의 개념들을 그 당시에 대입해보면 인권선언문은 심히 부족할 것이다.
아직 인권의 정의는 모르겠지만 인권의 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다. 그러면 범위가 확장되기 전에는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존재가 인간으로 인정되고,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지만 침해 받았던 권리가 이제는 권리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을 넘어서 비인간동물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기득권이 아니었던 모든 계층의 존재들은 자신과 타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피와 땀을 흘리며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끝에 바꿔낸 사회가 그들을 인간이도록 만들었다. 즉 인권이란 사회가 만들고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오염되고 폄훼하는 용어로 돼버렸지만 이렇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정치적'인 사람이라 칭한다.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거나, 현재 국회에서 몸싸움과, 혐오 발언만 해대는 정치인들을 칭하는 속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걸고 열심히 싸우는 사람 말이다.
그럼 여기서 의사는 어떤 위치에 있고, 있어야 할까. 내 주변의 의대생은 "난 정치는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주변의 의사는 단지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자신이 다 사회를 아는 듯 현 정부에 대해 입으로 비판만 한다. 이 사람들은 비정치적인 것일까?
아직 현재 법 제도에서 배제되고, 인권이 침해되는 존재들은 수없이 많다. 여성들은 드디어 재생산권을 인정받는 과정의 한 걸음을 디뎠고, 장애인의 이동권과 자립할 권리는 아직도 취약하며,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아직 죽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또한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현재 국가는 의료산업 부흥을 위해 검증 받지 않는 의료기술을 도입하려 애쓰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일부의 존재에게 부족한 권리를 부여하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기득권들만의 위한 사회존속을 위해 애쓰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것도 결국 정치적인 선택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기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회가 변화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그 방향이 어떠냐에 따라 사회는 더 진보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고, 인권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좁아질 수도 있다. 아무도 인권의 범위를 좀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만의 이익,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편협한 인간일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줄 순 없다.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시작, 더 나아가 인권 향상의 시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