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한톡|"여기 MRI 더블샷이요!"

여한솔
발행날짜: 2019-12-02 05:45:40
  •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부회장(이대목동 응급의학과)

뇌혈관 MRI 검사가 2018년 11월 1일 급여화 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몇 건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정부의 예상보다 훨씬 증가한 MRI 청구 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전수 조사에 착수하여 검사비가 급증한 곳을 중심으로 '과잉진료' 심사를 하겠다고 한다. 본인들이 예상했던 수치보다 훨씬 상회하자 급여지급기준을 강화하고 대상을 축소하여 문재인 케어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여 보장성을 확보한다는 기조하에 뇌 MRI의 경우 본인부담금은 의원 38만원->8만원으로, 상급종합병원 66만원->17만원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공급 비용이 낮아지면 수요비율은 임계점을 돌파할 시 급증하는 간단한 공급수요 그래프조차도 모르는 것일까. 가격이 싸지면 그만큼 문턱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뇌경색을 의심할 만큼 저명하지 않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경증의 환자들은 너도, 나도 MRI를 찍겠다고 줄을 선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 없고 자신의 질병을 확실히 확인하겠다는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의료진은 검사를 진행하겠다는 그들의 뜻을 현장에서 '거절'할 수 없다. 검사를 하겠다는데 급여화 기준에 맞는 상병명으로 온 환자에게 '당신의 질병은 경증이기에 검사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명분이 없다. 이를 거부한다면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관계에 갈등이 피어나올 수밖에 없다. "원하신다면 검사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레 뇌 MRI 검사 건수는 폭증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해 발표할 때 이런 사태에 대해 나는 그다음 날 짧지 않은 글로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의료비 부담이 낮아지면 의료이용량은 폭증할 것이고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 하므로 결국은 검사 치료를 시행하는 의료공급자들을 옥죄게 될 것이라고. 2년전부터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보건복지부는 '과잉진료'라는 용어를 내밀어 의료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언론화시키고 결국 그들을 '심사'하여 삭감의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국가는 허울 좋은 통계치만 끌어올릴 생각만 하지, 그에 필요한 재원 소요에 대해서는 모르쇠 하고 있었다. 어설픈 시범사업 모델로 그들 입맛에 맞춘 통계 자료에 따라 한가지 검사를 급여화한 지 불과 1년 만에 이러한 기사를 접하니 비웃음이 절로 나온다.

응급실에서 숱하게 이러한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간단한 접촉사고에 심지어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검사비가 싸졌고 나는 실비보험을 들어 놓았으니 MRI 더블샷을 찍어달라!"고 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실무자들은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을까. 지금 당장 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당신이 책임질래? 내가 머리가 어지럽다는데 검사를 안 해줘?'라는 욕 섞인 분노를 그들은 들어본 적이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십수 년이 가지 않아 어마어마한 참극을 맞이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재정적인 이유든 시스템적인 이유든, 어쨌든 '이 의료계는 답이 없다'고 혼잣말처럼 되뇌는 나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자기 일처럼 나서서 답이 없는 의료계에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힘 있는 자들과 부딪히고 싸워가며 옳은 이야기를 하는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봐왔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예상되는 내일이 답답하기만 하다. 불과 수년 전, 일개 공보의인 나조차도 지적하던 예상되는 폐해를 보건복지부 실무자들은 정말로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길 바란다.

온갖 질병이 난무하는 응급실에서 우리나라 의료계가 점점 무너져내려 가는 모습을 처참하게 지켜보고 있다. 비단 뇌 MRI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총체적인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의료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전공의들은 이러한 검은 속내도 모르는 채 힘들게 질병과 사투하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슬픈 이야기의 결말을 알면서도 묵묵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의료계 몰락의 방점이 우리 시대에 만큼은 찍히지 않기만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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