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윤 Medical Mavericks 대외협력이사(순천향의대 본과 4학년)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별관 3층"
와다다다다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흰 가운을 흩날리며 뛰어가는 인턴 선생님, 전공의 선생님들, 급하게 제세동기를 챙기며 분주해지는 간호사 선생님들. 우리는 모두 의료인이다.
"코드블루 해제, 코드블루 해제"
사람의 생과 사가 손끝에 달려있다니. 어쩌면 신은 우리 의료인들에게 많은 걸 시험하시고 싶었나보다.
전공의가 끝나고 대학병원에 남아 펠로우를 하고, 교수까지 한다는 건 어지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외래 환자 뿐만 아니라,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회진을 가야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학생 교육, 전공의 교육, 연구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 제일은 이 환자에게 대학병원 교수란 마지막 의사라는 점이다. 최후의 보루. 내가 아니면 이 환자는 살 수가 없다.
"충남 천안 S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 80대 사망환자 유가족에게 집단 폭행당해"
아침에 일어나 기사를 보았을 때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천안, S대학병원? 올 한 해 실습을 돈 우리 병원? 내 꿈과 추억이 한 가득 깃들여있는 이 곳?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기사를 마저 읽어갔다. 눈물이 그저 흐르는 건 교수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을까,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기사 댓글을 읽어보니 더 가관이었다. 의사 편에 들어 언론 조작을 하는 것은 아닌지, 왜 의사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이 돼있지 않은지. 많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뒤에도 폭행당하는 의료인의 안위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 의료인의 과실을 어떻게든 찾아내보려고 하는 시선으로 다가왔다.
근래에 의료인 폭행 사건은 뉴스나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한 일이었다. 작년에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당시에 사건 원인은 머릿속에 폭탄칩이 설치됐다는 피의자의 피해망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에 '임세원법'이라는 이름으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의료인 폭행 사건은 여전히 화두에 있으며, 의료인들 또한 마음 속 깊숙하게 혹여나 내가 피해자는 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자리 잡혀 있다.
실습을 도는 동안 우리 피케이*들은 가장 가까이서 교수님들 뒤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배웠다. 수술방, 외래, 회진, 정말 열심히도 흰 색 가운을 입고 졸졸 병아리마냥 따라다녔다.
*피케이 : 의과대학 6년 교육과정 중에 본과 3, 4학년은 직접 병원에서 실습을 도는데, 이걸 pk라고 부른다. 독일어 Polyklinic의 약자라고 한다.
가장 가까이서 느껴본 바로는 교수라는 직은 환자에 대한 사랑 없이는 절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어려운 의학용어를 알기 쉬운 일상 표현으로 바꿔서 설명해주고, 보호자를 격려해주고, 다른 의료인들의 눈과 손이 된다. 빠진 처방이 있으면 추가해주시고, 놓친 검사가 있으면 왜 필요한지 다시 설명해준다.
지식과 기술이 녹슬지 않도록 매일 교과서와 논문을 다시 찾아본다. 그래도 혹여나 놓친 부분이 있을까 다시 반복해서 환자 차트와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처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은 그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가진 힘을 다하신 다음에도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면, 그 때는 부디, 신께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길 바란다.
하지만 의대 교육을 받는 6년 동안 단 한 번도 우리는 우리의 몸을 스스로 지키는 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 매일 매일 사람을 고치는 법, 살리는 법에 대해서 공부했으면서, 정작 우리는 우리를 지키는 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다니.
그러면 정작 우리 의료인들은 누가 지켜주고 살려주는 것인가.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하고 싶다. 사랑하는 내 동료들이, 우리를 이끌어주는 선배님들이, 새로운 희망이 될 우리 후배들이, 모두 건강한 환경에서 의술에 정진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