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준 LK파트너스 변호사
우리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모든 의료기관을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하면서 “요양급여”를 지급 받기 위한 각종의 까다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진료까지도 그 적응 기준을 국가가 정하고 있다.
의사가 “나는 보험 필요 없으니 비급여로 진료하고 알아서 진료비 받을게” 라고 선언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법과 제도가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늘 “삭감”, “환수”, “부당청구” 등의 말에 민감하다.
이런 엄격한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지탱하는 각종 장치 중 소위 끝판왕 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현지조사”를 꼽을 수 있다. 자문변호사로서 현장에 있다가 우연히 조사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진심으로 검찰 압수·수색보다 위압적인 느낌이었다.
사실상 강제로 자료를 제출받은 후 청구내역과 대조하고,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 등으로 조사가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의료인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이미 알고 나왔다”는 느낌의 기획조사를 받게 되면 사실상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마지막에 서명을 요구하는 확인서는 화룡정점이다. 서명을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안하겠다는 명분도 딱히 없고, 서명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은근한 압박이 들어온다.
현지조사의 법적 근거와 관행 등
의료법 제61조는 “보건복지부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관계 공무원을 시켜 그 업무 상황, 시설 또는 진료기록부ㆍ조산기록부ㆍ간호기록부 등 관계 서류를 검사하게 하거나 관계인에게서 진술을 들어 사실을 확인받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라고 규정하여 복지부와 보건소에 조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에 대하여 필요한 자료의 제출이나 의견의 진술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편, 복지부 고시 ‘요양급여의 적정성평가 및 요양급여비용의 가감지급 기준’에 따르면 심평원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현지조사, 행정조사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심평원이 아니라 보건복지부라는 점이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조사는 “행정기관이 정책을 결정하거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현장조사, 문서열람, 시료채취 등을 하거나 조사대상자에게 보고요구, 자료제출요구 및 출석, 진술요구를 행하는 활동”을 말하는데, 심평원은 행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심평원이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를 위해 병원에 자료제출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독자적인 현지조사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심평원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전문인력을 지원받아 현지조사반을 구성하되, 조사반은 보건복지부 조사담당자를 반장으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현지조사반을 구성할 때에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형식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법한 관행과 하급심 판례의 제동
런데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현장에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상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뒤늦게 서류를 확인해 보면 ‘현지조사 명령서’, ‘현장조사서’ 등의 서류에 공무원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장에서 보건복지부의 조사를 받았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행정조사기본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의 이름만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다. 영업정지 처분 등 관련 사건을 수임했을 때, 이런 절차적인 문제점, 영장주의 위배, 강요된 확인서, 조사 기간의 부당성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원은 기계적으로 사실관계 판단에 치중해 왔다. 예를 들어서 이 환자가 실제 이 치료를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간호사가 실제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이런 쟁점 말이다.
그런데 최근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하급심에서 유의미한 판결 선고가 있었다. 현지조사의 주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되어야 하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직원은 그 조사를 지원하는 정도의 지위에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확인해준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19구합70520 업무정지처분 취소 등 청구 사건).
위 판결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i) 의료급여 기관에 대한 현지조사 권한은 보건복지부에 있고, 소속공무원이 실제로 현지조사를 집행해야 한다. ii)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 권한을 심평원에 위탁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법률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iii) 의료급여법은 심평원이 검사업무를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독자적인 조사권한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iv) 보건복지부가 특정 현장조사에 관하여 업무를 개별적으로 위탁하는 것도 법률적 근거가 없다.
위와 같은 판단 하에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복건복지부 공무원이 전혀 참여하지 않고 심평원 과장, 대리로 이루어진 조사원들이 시행한 조사는 위법하고,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병원에 했던 영업정지처분을 취소했다.
시사점 및 대응 방안
이번 하급심 판례가 앞으로의 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적어도 위법한 관행에 경종을 울릴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판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이상, 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 명령서에 이름만 들어가는 수준에서 탈피하여 법률상 조사주체로서 현지조사에 실질적으로 임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공무원이 제시하는 현지조사 명령서에 기재되어 있는 조사범위와 기간, 제출 자료 등을 신중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수준에서 과도한 자료를 제공하거나 조사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갑작스러운 조사에 당황하여 침착하게 행동하기 어렵겠지만, 조사명령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대략적인 흐름을 예측해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이런 절차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여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많이 강조하는 말이라 다들 알고 있겠지만, 확인서에 서명은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사실 변호사로서 생각하기에 확인서 서명 요구는 현장에서 조사대상자가 혼비백산해 있는 틈을 타 사실상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기에 없어져야 할 관행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조사에서는 말미에 확인서 날인을 요구하고 있으니, 만약 본인이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사실까지 확인서에 기재되어 있다면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은 한도에서 서명을 거절하고 필요최소한의 한도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다음부터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실체적인 처분사유들, 즉 환자의 실제 내원 일수는 언제인지, 특정 진료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비급여진료를 하고 이중청구한 것은 아닌지 등의 위반 사실관계를 다투고 입증하는 전략 수립을 비롯하여, 위 판례가 언급한 행정조사 권한 등 현지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절차적인 위법성을 따지는 것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다. 관련 자료들을 얼마나 담당변호사에게 잘 공유하고 협조하느냐에 따라 환수 금액 등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법률과 규칙에 따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불가피하게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에는 본인이 저지른 잘못 이상으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똑똑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오승준 변호사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ro_law
의사가 “나는 보험 필요 없으니 비급여로 진료하고 알아서 진료비 받을게” 라고 선언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법과 제도가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늘 “삭감”, “환수”, “부당청구” 등의 말에 민감하다.
이런 엄격한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지탱하는 각종 장치 중 소위 끝판왕 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현지조사”를 꼽을 수 있다. 자문변호사로서 현장에 있다가 우연히 조사 과정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진심으로 검찰 압수·수색보다 위압적인 느낌이었다.
사실상 강제로 자료를 제출받은 후 청구내역과 대조하고,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 등으로 조사가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의료인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이미 알고 나왔다”는 느낌의 기획조사를 받게 되면 사실상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마지막에 서명을 요구하는 확인서는 화룡정점이다. 서명을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안하겠다는 명분도 딱히 없고, 서명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은근한 압박이 들어온다.
현지조사의 법적 근거와 관행 등
의료법 제61조는 “보건복지부장관,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관계 공무원을 시켜 그 업무 상황, 시설 또는 진료기록부ㆍ조산기록부ㆍ간호기록부 등 관계 서류를 검사하게 하거나 관계인에게서 진술을 들어 사실을 확인받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라고 규정하여 복지부와 보건소에 조사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에 대하여 필요한 자료의 제출이나 의견의 진술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편, 복지부 고시 ‘요양급여의 적정성평가 및 요양급여비용의 가감지급 기준’에 따르면 심평원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현지조사, 행정조사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심평원이 아니라 보건복지부라는 점이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조사는 “행정기관이 정책을 결정하거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현장조사, 문서열람, 시료채취 등을 하거나 조사대상자에게 보고요구, 자료제출요구 및 출석, 진술요구를 행하는 활동”을 말하는데, 심평원은 행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심평원이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를 위해 병원에 자료제출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독자적인 현지조사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심평원 및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전문인력을 지원받아 현지조사반을 구성하되, 조사반은 보건복지부 조사담당자를 반장으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현지조사반을 구성할 때에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형식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법한 관행과 하급심 판례의 제동
런데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현장에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상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뒤늦게 서류를 확인해 보면 ‘현지조사 명령서’, ‘현장조사서’ 등의 서류에 공무원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장에서 보건복지부의 조사를 받았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행정조사기본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의 이름만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다. 영업정지 처분 등 관련 사건을 수임했을 때, 이런 절차적인 문제점, 영장주의 위배, 강요된 확인서, 조사 기간의 부당성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원은 기계적으로 사실관계 판단에 치중해 왔다. 예를 들어서 이 환자가 실제 이 치료를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간호사가 실제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이런 쟁점 말이다.
그런데 최근 선고된 서울행정법원 하급심에서 유의미한 판결 선고가 있었다. 현지조사의 주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되어야 하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직원은 그 조사를 지원하는 정도의 지위에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확인해준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19구합70520 업무정지처분 취소 등 청구 사건).
위 판결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i) 의료급여 기관에 대한 현지조사 권한은 보건복지부에 있고, 소속공무원이 실제로 현지조사를 집행해야 한다. ii)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 권한을 심평원에 위탁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법률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iii) 의료급여법은 심평원이 검사업무를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독자적인 조사권한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iv) 보건복지부가 특정 현장조사에 관하여 업무를 개별적으로 위탁하는 것도 법률적 근거가 없다.
위와 같은 판단 하에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복건복지부 공무원이 전혀 참여하지 않고 심평원 과장, 대리로 이루어진 조사원들이 시행한 조사는 위법하고, 그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병원에 했던 영업정지처분을 취소했다.
시사점 및 대응 방안
이번 하급심 판례가 앞으로의 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적어도 위법한 관행에 경종을 울릴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판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이상, 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 명령서에 이름만 들어가는 수준에서 탈피하여 법률상 조사주체로서 현지조사에 실질적으로 임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공무원이 제시하는 현지조사 명령서에 기재되어 있는 조사범위와 기간, 제출 자료 등을 신중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수준에서 과도한 자료를 제공하거나 조사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갑작스러운 조사에 당황하여 침착하게 행동하기 어렵겠지만, 조사명령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대략적인 흐름을 예측해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이런 절차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연락하여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많이 강조하는 말이라 다들 알고 있겠지만, 확인서에 서명은 정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사실 변호사로서 생각하기에 확인서 서명 요구는 현장에서 조사대상자가 혼비백산해 있는 틈을 타 사실상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기에 없어져야 할 관행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조사에서는 말미에 확인서 날인을 요구하고 있으니, 만약 본인이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사실까지 확인서에 기재되어 있다면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은 한도에서 서명을 거절하고 필요최소한의 한도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다음부터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실체적인 처분사유들, 즉 환자의 실제 내원 일수는 언제인지, 특정 진료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비급여진료를 하고 이중청구한 것은 아닌지 등의 위반 사실관계를 다투고 입증하는 전략 수립을 비롯하여, 위 판례가 언급한 행정조사 권한 등 현지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절차적인 위법성을 따지는 것은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다. 관련 자료들을 얼마나 담당변호사에게 잘 공유하고 협조하느냐에 따라 환수 금액 등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법률과 규칙에 따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불가피하게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에는 본인이 저지른 잘못 이상으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똑똑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오승준 변호사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ro_l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