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학회와 급여 기준 위한 전문가 자문위 개최 예고
전문가들 "국내 급여기준 저조한 생존율 저하 요인"
유독 저조한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생존율을 두고 전문가들이 '급여기준'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옆나라 일본의 절반에 불과한 3년 생존율을 볼 때 차이를 약제의 원활한 사용 여부가 극명한 차이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학회가 급여 기준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현 급여 기준의 문제점 및 최근 연구를 통해 개선 방향에 대해 점검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폐동맥 고혈압 급여 기준과 관련해 전문가자문위원회 소집을 예고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생존율 차이 만든 배경은? "해외와 다른 급여기준"
<하>약 있는데 쓰지 못한다…합리적인 급여기준은?
국내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3년 생존율은 일본 대비 약 절반에 불과해 관련 학회들의 원인 규명 작업 및 급여기준 개선 요청이 빗발쳐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
2019년부터 국회 토론회 등 국내의 저조한 폐동맥 고혈압 환자 생존율을 두고 공론화가 진행돼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자문위 소집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실제로 일본과 한국의 3년 생존율은 96% 대 56%다. 국내에서 폐동맥 고혈압으로 진단받으면 3년안에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산다는 뜻.
5년 생존율을 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의 5년 생존율이 74%인 반면 한국은 46%에 그친다. 대상 국가를 넓혀도 비슷하다. 유럽의 5년 생존율은 75.9%, 대만은 72.5%로 한국의 생존율 보다 앞서있다.
왜 유독 한국인에게만 폐동맥 고혈압이 가혹한 걸까.
▲나빠져야만 사용할 수 있다…멀고 먼 약제 병용
폐동맥 고혈압 환자에겐 주로 약물을 사용, 증세의 악화를 막는 치료가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각 나라간 의료수준, 환자 특성, 보험 제도 등의 차이를 감안할 때 생존율의 차이를 만든 건 현행 급여기준이라 입을 모은다.
장혁재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일본은 센터를 통해 환자가 등록을 마치면 치료 약제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며 "반면 국내는 상태가 나빠져야지만 3제 약제 사용 등 적극적인 약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기부터 관리하면 생존율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국내 급여기준은 일상 생활에서 호흡 곤란이 발생하는 단계부터 적극적인 병용요법이 가능하다"며 "이같은 원인이 생존율 차이를 만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폐동맥 고혈압 관련 병용 급여기준 현황은 다음과 같다.
2제 요법은 단독요법으로 3개월 이상 투여 후 임상적 반응(①∼④항 소견 중 최소 1개와 ⑤∼⑨항 중 최소 1개를 모두 만족)이 충분하지 않을 때, 3제 요법은 2제 요법으로 3개월 이상 투여 후 임상적 반응이 충분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지표 기준은 ①우심실부전의 임상적 증거 있음 ②증상진행의 속도 빠름 ③실신 있음 ④WHO 기능분류 IV단계 ⑤6분 보행거리 300m 미만 ⑥운동부하심폐검사 최대 산소 소모<12mL/min/kg ⑦BNP/NT-proBNP 300/1800 이상 ⑧심초음파검사소견 Pericardial effusion 또는 TAPSE<1.5cm ⑨혈류역학검사지표 RAP>15mmHg 또는 CI≤2.0L/mim/m2다.
위 지표 기준을 적용하면 3개월마다 단계적으로 증상이 나빠진 후에야 단독→2제→3제요법으로 순차적인 약제 적용이 가능하다. 3년의 생존율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6개월을 기다린 후 3제 약제 사용이 가능하다는 건 환자들에게 가혹한 조건일 수 있다.
이와 관련 윤영진 한국 폐동맥 고혈압 환우회 회장은 "2017년에 원발성 폐동맥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며 "당시에 다리 부종, 숨가쁨, 피곤함의 증상을 느꼈지만 진단이 어려운 질병 특성상 발병 후 진단 받기까지 3년 이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증상을 완화하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치료를 하려면 여러 약을 복용해야한다"며 "하지만 현재는 약 하나부터 시작해서 정부에서 정한 기준점 이상으로 병이 악화돼야 추가 약제를 더 복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진단을 받기 까지 오진을 경험하게 되고 오진의 기간 동안 병을 키우게 되니 약을 먹기 시작할 때는 이미 병이 꽤 진행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는게 그의 판단.
윤 회장은 "현재 제도상으로는 1개 약제로 최소 3개월, 병이 더 악화가 되면 다시 2개 약제로 3개월, 그래도 악화가 되면 3개 약제로 약을 늘리도록 돼 있다"며 "국내 급여기준은 약제를 추가하려면 병이 더 악화돼야 하는 희한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해외 사례처럼 의료진이 객관적 자료와 임상적 판단을 통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돼햐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도 단독요법의 투여 기간(3개월)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2제 병용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해당 기준은 우심도자를 통해 폐동맥 고혈압이 확진되고, WHO 기능분류 단계 Ⅳ에 해당하면서, ▲6분 보행거리(6MWD) 165m 미만 ▲운동부하심폐검사 Peak VO2<11ml/min/kg(<35% pred.) ▲VE/VCO2 slope≥45 ▲BNP>300ng/l, NT-proBNP>1400ng ▲Imaging(echocardiography, CMR imaging) RA area>26㎠ ▲혈류역학검사지표 RAP>14mmHg, CI<2.0 l/mim/m2, SvO2<60% 지표 중 한 개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초기부터 2제 요법의 사용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이지만 임상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왜일까.
▲초기부터 2제 사용? "삭감 이슈에 방어진료"
박재형 충남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문헌적으로는 2제 약제 사용이 가능하지만 이를 임상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가장 큰 제한점은 위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가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진들은 2제 병용에서의 삭감을 우려한다"며 "기준을 맞추기 어렵지만 추후 증세 악화가 예상되는 환자들에게 병용을 먼저 시도했다가 삭감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준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삭감 처리가 되는데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 시도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삭감 후 약제를 끊으면 환자들은 증세 악화를 경험하고 심지어 사망하는 사례도 나온다"고 비판했다.
추가 약제인 마시텐탄의 경우 하루 약제비는 4만원선. 한달 기준 120만원의 약제비가 소요된다. 삭감 처리될 때 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 손실을 따지면 의료진은 적극적인 처방 대신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박 교수는 "본인의 경우 병용 진단 기준에 약간 못미치는 경우 일단 처방을 하지만 삭감되면 이의 신청서를 내고 그 기간 동안 약을 끊을 수밖에 없다"며 "일본 사례를 참고해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면 초기 약제 사용에 제한을 두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용 지표로 설정된 기준 역시 이상하긴 마찬가지"라며 "BNP 기준 300 이상, NT-proBNP 기준 1800이면 고위험군이기 병용요법이 목표로 하는 저위험도를 달성하기 위해선 이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BNP와 NT-proBNP가 임상연구에서뿐만 아니라 폐고혈압 일상진료에 널리 사용되는 유일한 지표다. BNP/NT-proBNP 수치는 심근 기능장애와 관련이 있으며 진단시점과 추적 관찰 평가중에 측정한 수치 모두 예후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유럽 치료 가이드라인 및 대한심장학회·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가 참여해 만든 2020년 폐고혈압 진료지침은 BNP/NTproBNP 기준을 300/1400 이상을 중간위험도로, 50~300/300~1400을 고위험도로 분류하고 있다. 현행 300/1800으로 설정된 BNP/NTproBNP 기준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뜻.
300/1800 기준을 적용해 약제를 추가할 땐 이미 '너무 늦은' 상태이기 때문에 병용요법이 시작돼도 적극적인 초기 치료와 비교할 때 예후의 개선 범위가 제한적이다.
병용이 어렵자 자비로 약제를 추가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 실데나필의 경우 폐동맥 고혈압에도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데나필은 PDE5i 제제중 유일하게 2020년 11월 폐동맥 고혈압 치료 목적으로 승인(용량 20 mg 하루 3회 투약)됐지만 다수의 환자들이 자력 부담하는 실정이다. 타 약제 대비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박재형 교수는 "최근 국내 환자의 생존율이 다소 올라갔다는 보고가 있다"며 "실상은 의료진들이 3제 복용이 필요한 경우 실데나필 성분을 자비로 부담해 복용하라고 조언하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통계로는 환자들이 2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환자들이 자비로 실데나필을 추가 복용하는 경우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며 "이런 통계 착시를 두고 보건당국이 현재 급여 지침으로도 충분하다고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영우 가천의대 심장내과 교수가 진행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 기반 2004~2018년 폐동맥 고혈압 치료 현황 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약제중 단일제 비중이 71%, 2제가 24%, 3제 병용이 5%에 그친다.
장영우 교수는 "국내에서 2제, 3제 비중이 늘었지만 여전히 일본에 비해 아직도 낮은 수치"라며 "일본처럼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선 폐동맥 고혈압으로 진단되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복합 약제 처방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폐동맥 고혈압이 2000명 안팎에 불과한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재정에 끼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박재형 교수는 "감기를 직접 치료하는 약제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제비를 보험 처리해준다"며 "감기에 들어가는 국민 전체의 재정 부담을 생각하면 폐동맥 고혈압은 전체 약제비에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윤영진 한국 폐동맥 고혈압 환우회 회장은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제를 병용함으로써 얻는 사회 경제적인 이득이 비용보다 더 많다"며 "미국이나 일본의 생존율 수치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우회 입장에서는 없는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기준을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해 달라는 것"이라며 "1700명에 불과한 희귀질환 유병률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우려하는 건강보험 재정에 끼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