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대한의학회 정지태 회장
의학자로서의 소통과 토론 강조…"근거 중심 한 목소리 내야"
"학자이기 때문에 의견과 주장은 늘 충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것은 건전한 토론이 기반이 돼야죠. 갈등과 분열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의학회가, 의학자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려 합니다."
코로나 대유행이 지속된지 2년. 오미크론 변이로 이제 3년째로 이어지는 코로나 시대로 전 세계는 수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의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각 학회의 학술대회 개최 형태가 완전히 변화했고 전공의 수련 또한 마찬가지다. 유례없는 속도로 변화가 찾아왔고 그 안에서의 혼란은 여전하다.
그렇기에 그 변화의 한 가운데서 중심을 잡으며 방향성을 찾아가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보다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이 변화의 중심이 감염병 사태라는 점에서 의사, 특히 의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겁기만 하다.
그만큼 국내 최고 권위의 의학 단체인 대한의학회를 이끌고 있는 정지태 회장은 그 무거운 책임감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뉴 노멀 "모든 것이 변했고 변해야 산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 한 가운데서 의학회를 맡은 그는 과연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다소 무거운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명확했다. '생존'.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코로나 사태가 적어도 1~2년은 더 지속된다고 봅니다. 사실상 인류를 향한 대규모 재해라는 점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지요. 결국 여기서 살아남는 국가가, 산업이, 사람이 결국 차세대를 이끌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여기에 모든 아이디어를 모아야 합니다. 학자도, 학회도, 전공의도, 나아가 국가도 말이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광의의 답변인듯 하다. 그래서 더 범위를 좁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학회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이에 대해 정지태 회장은 끝없는 변화를 강조했다. 학회 또한 살아남기 위해 꾸준하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 과거의 방식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지난 2년간 시도해온 방법들을 가다듬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정지태 회장은 "현재 각 학회의 학술대회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하이브리드 세가지 방식 모두를 차용하고 있다"며 "각 학회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 생존법을 찾아 변화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 초기만 해도 온라인 학회에 대한 거부감과 우려가 컸지만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여기서 도출된 재정적 문제 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의 폭을 넓히며 생존을 고민해야 하고 의학회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해법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의학회는 적극적으로 하이브리드 학회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또한 수익자 부담으로 학회를 운영하며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중에 있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학술대회 또한 뉴 노멀 시대를 맞이한 만큼 이에 맞춰 과거의 패턴을 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운영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셈이다.
정 회장은 "이미 앞서가는 학회들은 메타버스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학술대회를 고민하고 있고 의학회 또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들을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온라인 학술대회가 재정적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학회들도 재정 건전성 차원에서 등록비를 올리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이 과정에서 학술적 내용이 풍성하고 우수한 학회와 그렇지 않은 학회들간에 격차도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제도적 유연성 필요"
코로나가 불러온 또 다른 변화는 역시 4차 산업 혁명,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개막이다. 비대면이 대세로 굳어지면서 의료 또한 디지털에 기반한 뉴 노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대한의학회 또한 국내 최고 학술단체로서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개발과 검증, 자문을 자처하며 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
실제로 의학회는 올해 이진우 부회장(연세의대)을 필두로 혁신의료기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범 정부적 의료기기 산업 육성 조직인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 개발 사업단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과 MOU를 맺고 적극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의 검증과 자문에 나서고 있다.
의학회 내에 100여개 학회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추천 받아 TF 형식으로 각 그룹의 성격에 맞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 의료기기 기업과 1대 1로 매칭시켜 개발 단계부터 자문을 진행하며 방향성을 함께 잡아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정지태 회장의 지적이다.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의 유연한 대처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지태 회장은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전문 분야에 대해 의학적으로 검증과 자문을 진행할 수 있는 단체는 의학회가 유일하다"며 "하지만 마치 의학회를 연구용역비를 주는 용역 기관처럼 여기며 관리, 감독하고 지적하는 행위가 지속되고 있어 학회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4차 산업 혁명을 얘기하면서 정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20세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4차 산업에 대한 발전을 위해 전문가 단체가 해야할 역할을 찾아 의학회가 팔을 걷고 자문에 나선 것인데 마치 용역을 준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의학회에 대한 모욕"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전달하고 새해 의학회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계획이다.
실제로 기업들에게 필요한 검증과 자문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의학회의 권위와 전문성을 확실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정 회장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전문가 단체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정립하기 어렵다"며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학술적으로 채워주기 위한 의학회의 역할을 다시 한번 정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의학계 안에서의 분열 아쉬움 "의학회가 중심 잡겠다"
또한 그는 코로나로 인해 극단적으로 분열되고 있는 의료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한 전문가 단체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개탄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라는 초유의 사태속에서 오히려 전문가 단체의 역할이 축소되고 더욱이 대선 정국과 맞닿으면서 의료계의 의견이 분열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정지태 회장은 "코로나 위기속에서도 일부 의사들이 근거가 미약한 주장들을 이어가고 있고 여기에 대선 정국이 열리면서 각 당에 속한 전문가들 또한 상반된 의견들을 내놓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근거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이 의학자이자 의사인데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학자로서 얼마든지 서로 다른 의견과 주장으로 치열한 토론을 벌일 수 있지만 건전한 토론 방식을 벗어나 비방과 비난 등으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지적.
또한 이로 인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내놓는 의견들이 제대로 국민들이나 정부에 전달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는 의견이다.
정 회장은 "치열하게 토론을 펼치더라도 결국에는 의사, 의학자들이 내놓는 결론은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며 "그래야 코로나 등으로 인한 혼란을 막을 수 있고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 또한 생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로 인해 의학회 또한 대한의사협회가 구성한 위원회에 학술 단체로서 속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으며 마땅히 다른 단체와 의사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창구를 통일화해야 한다고 본다"며 "주장과 의견들이 분열되다 보니 오히려 대표성을 가진 의협의 위원회가 내놓은 제언들이 인용되지 않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그는 내년에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을 준비중에 있다. 대한의학회가 주관하는 종합 학술대회가 바로 그것.
의료계나 의학계가 주최하는 학술대회가 많이 열리고 있지만 대부분 해당 전문과목의 이슈를 다루고 있는 만큼 정말 의사라면, 의학자라면 모두가 모여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을 열겠다는 포부다.
정지태 회장은 "내년에 의료 정책을 큰 줄기로 하는 대규모 의학회 학술대회를 준비중에 있다"며 "서로 다른 곳에 앉아서 마치 의료계의 대표하듯 각자의 주장을 쏟아내지 말고 이 자리에 모여서 마음껏 논쟁과 토론을 벌여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를 통해 적어도 이 자리에서 만큼은 수많은 논쟁 거리를 정리하고 의료계의 공통된 목소리를 정립해 보자는 의미"라며 "어느 단체건, 어디에 속해있건 의사라면, 의학자라면 참여할 수 있도록 완전히 열린 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의학계의 원로로서 이러한 갈등과 분열을 바로 잡기 위한 상호간의 소통과 이해도 당부했다. 이 가운데서 의학회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정 회장은 "서로 자신들의 의견만 주장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코로나로 인해 전에 없던 정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만큼 이에 맞춰 과거 갈등과 분열을 접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유연한 사고로 틀을 깨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