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의근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젊은 환자, 감염 고위험군에겐 S-ICD '대안'
삽입형 제세동기의 나이는 벌써 마흔 살이 넘었다. 1980년 세계 첫 ICD 임플란트 시술 성공 이후 40년 넘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세동기=ICD'라는 공식이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제세동기 분야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혈관과 심장 안에 전극선을 꽂아야 하는 경정맥형 제세동기(TransVenous-ICD, TV-ICD)의 단점을 극복한 피하 삽입형 제세동기(Subcutaneous ICD, S-ICD)가 급여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무게추가 기운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미국심장협회·미국심장학회가 감염 및 만성질환 등 고위험 환자군에 S-ICD 사용을 권고한 데 이어 TV-ICD와 비교한 연구들도 차세대 제세동기 사용 확대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수 십년간 필드 테스트를 거친 기존 세대 기기와 비교해도 안정적인 작동은 비슷한 반면 감염 위험은 크게 감소시켰다는 점에서 일부 환자를 제외하곤 S-ICD가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신 기술 및 최고의 의료진으로 무장한 서울대병원에선 제세동기의 세대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최의근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를 만나 S-ICD 관련 최신 연구 동향 및 임상 현장에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ICD의 종류 및 필요한 환자군은?
삽입형 제세동기를 ICD라고 부른다. 약물 치료에도 심기능이 떨어지는 환자, 심장 돌연사에서 소생했거나 돌연사 위험이 큰 환자에게 주로 삽입하지만 보험 기준이 상향되면서 돌연사 예방 목적으로 삽입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사실 돌연사의 예방용으로 거의 유일한 방법이 제세동기다. 삽입형 제세동기를 신구 형태로 나눠보면 기존의 경정맥형 제세동기 TV-ICD와 피하 삽입형 제세동기 S-ICD로 나눌 수 있다.
먼저 TV-ICD는 혈관과 심장 안에 전극선을 꽂아야 한다. 이 전극선이 심장의 전기 신호를 읽기도 하고 반대로 전기 충격을 줘 응급 상황에서 심장의 기능을 원활히 하도록 하기도 한다. 혈관과 심장 안에 전극선이 들어가기 때문에 심장박동 기능을 갖추고 있다. 박동 기능이 필요한 환자에겐 TV-ICD 삽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S-ICD는 비교적 최신의 기술이다. 심장과 혈관을 직접 접촉하지 않는 방식의 제세동기는 보스톤사이언티픽이 개발한 엠블럼이 유일하다. S-ICD는 말 그대로 피하에 삽입하기 때문에 전극선이 심장 밖에 위치한다. 전극선이 심장 안에 들어갈 때 생길 수 있는 감염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TV-ICD의 경우 감염이 발생하면 전극을 분리, 제거하는 재시술이 필요한데 S-ICD는 그런 위험 부담이 적다.
▲TV-ICD와 S-ICD의 시술 비율은?
S-ICD가 국내에서 보험 적용이 된 것은 2019년부터다. 비교적 최신 기술이라고 해도 임상 현장에서 모든 시술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기술의 안전성 및 효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동 기능이 포함된 TV-ICD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군도 존재한다.
현재 서울대병원을 기준으로 보면 TV-ICD와 S-ICD의 시술 비율은 8:2 정도다. 예전에 비하면 S-ICD의 시술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이면서 환자들의 인식이나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S-ICD는 환자 스크리닝을 통해 적합한 환자군을 선별해 삽입하고 있다.
▲S-ICD가 더 적합한 환자군이 있는지?
S-ICD의 특징은 피하에 삽입하기 때문에 전극 관련 합병증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데 있다. 젊은 부정맥 환자들이 시술하게 되면 오랜기간 ICD를 삽입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젊은 환자에게 TV-ICD를 삽입하면 전극선이 혈관 안에서 오랜기간 잔류하면서 감염이나 전극선 부러짐과 같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겪을 확률이 올라간다. 기기 오작동 시에도 제거 시술이 필요한데 전극선이 혈관에 유착된 경우 전극선 제거만으로도 단순 작업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젊은 환자에게는 S-ICD가 우선 권고되는 주요 이유다.
혈액 투석 환자들도 S-ICD가 우선 고려된다. 투석을 위해 한쪽 혈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심장/혈관에 전극선을 삽입하는 방식을 활용했다가 감염이 발생하면 투석용 혈관 확보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그런 분들도 역시 S-ICD를 먼저 고려한다.
물론 S-ICD가 만능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심박을 조율해 부정맥을 없애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TV-ICD는 박동기 기능을 가지고 있어 서맥을 가진 부정맥 환자는 TV-ICD가 더 적합하다. 서맥성 부정맥 환자는 시술 대상자의 약 20~30%를 차지하는 것 같다. 이들을 제외하곤 S-ICD 시술이 가능하다.
▲S-ICD 시술 가능 인구와 실제 시술 비율이 차이가 난다. 원인은?
시술 대상자 중 서맥성 부정맥 환자를 제외한 70~80%는 S-ICD 시술이 가능하지만 이는 이론적인 수치다. 실제 시술 비율은 TV-ICD, S-ICD가 8:2다. 신기술이 나오고 임상 현장에서 확산되는 데까지는 시간의 검증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 환자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는데 해외에서는 기존 기술과 헤드 투 헤드로 비교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연구들이 축적돼야 비로소 '세대 교체' 과정이 완수된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S-ICD의 시술 비율은 20%에 그치지만 이것이 최대 80%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의 제세동기 삽입에 대한 선호도, 인식 자체가 해외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국내의 박동기 삽입 건수는 일본의 약 1/7에 그친다. 말레이시아의 ICD 보험 기준이 국내 보다 훨씬 엄격한데도 삽입 건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제세동기 삽입에 대해선 국내 환자들의 선호도가 떨어지거나 보수적인 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인식 개선만 빨리 된다면 삽입 건수의 증가뿐 아니라 S-ICD로의 신구 교체도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TV-ICD와 S-ICD의 치료에 대해 비교한 연구인 PRAETORIAN 하위분석(Sub-analysis)에서는 S-ICD와 TV-ICD 간 임상적 효과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 결과에 대한 의미는?
PRAETORIAN 임상은 S-ICD와 TV-ICD를 일대일로 무작위 배정해 두 그룹 간에 합병증 발생률과 부적절한 전기충격 발생률을 비교해보는 것이 목적인 연구다.
약 800명의 대상자를 모집해 52개월 추적관찰한 결과 S-ICD와 TV-ICD 간 전기충격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으며, 적절한 충격의 총 횟수 역시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두 그룹 간의 치료 효과는 유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연구를 보통 '비열등성'을 입증했다고 하는데 쉽게 생각하면 필드 테스트에서 수 십년간 안전성을 입증받은 기존 기기와 신기술인 S-ICD가 기기 작동면에서 최소한 동등한 정도의 능력을 확보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임상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에겐 S-ICD는 기존 기기만큼 안전하기 때문에 신뢰하고 시술할만하다는 징표와 같다.
▲PRAETORIAN 연구는 해외 환자를 대상자로 했다. 국내 임상 현장에서 시술하면서 느낀 임상 결과(Real World Data)와 비슷한지?
물론이다. 서울대병원도 S-ICD 삽입술이 이뤄진 이후부터 계속 환자들을 추적관찰하고 있다. TV-ICD 삽입 환자에서 보통 1년에 10% 정도 쇼크(전기충격)이 들어가는데 S-ICD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인다. 기기 작동 면에서 유사하고 합병증은 확실히 줄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삶의 질이나 미용적인 측면에서의 판단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S-ICD가 기존 기기보다 크고 옆구리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불편을 염려하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 시술해 본 결과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진 않았다. 여성분들의 경우 TV-ICD는 가슴팍에 삽입 흉터가 비칠 수 있다는 불만이 있었던 반면 S-ICD는 삽입 부위가 속옷으로 가려져 젊은 여성 환자에게 선호도가 더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