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4차 산업 혁명과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의료기기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맞춰 정부도 범부처 사업단을 마련하는 등 정책적 뒷받침에 나섰고 수조원대 예산이 산업계로 흐르면서 국내 의료기기 산업도 바야흐로 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이지 실제 산업 현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만은 않은 분위기다. 특히 이미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제조기업들의 표정은 시큰둥하기까지 하다.
막대한 모태펀드가 돌고 각 정부 부처마다 앞다퉈 산업 육성책을 내고 있는 상황이 이들은 달갑지 않은 것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그들 또한 지금의 분위기에 공식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 보면 막상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가득하다. 그들이 호소하는 감정은 괴리감과 소외감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물론 보건복지부 등 각 부처마다 산업 육성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제는 대동소이하다. 이른바 혁신 기술에 대한 실증사업 지원이다.
범부처 사업단 또한 마찬가지 길을 걷고 있다. 의료기기 국산화와 이를 위한 실증 및 검증 지원이 핵심 사업이다.
이들이 괴리감과 소외감을 표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서야 R&D에 들어가는 기술과 기기에 대해서는 이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본인들의 돈과 노력으로 이미 만들어 놓은 기술과 기기는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예산이 투입되면 결국 스타트업 홍수만 만들어낼 뿐 실질적인 목표인 의료기기 국산화와 세계 시장 진출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다. 자신들이 멈춰 있는 지점에서 모두가 만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예산을 투입해 아무리 좋은 기술과 기기를 만들어 낸다 해도 결국 판로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이들이 지금 정부의 지원책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실태를 보면 이들의 지적이 막연한 하소연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기 산업 규모에서 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밑돌고 있다.
이것도 그나마 의원급에서 사용하는 치료재료 등의 비율이 높을 뿐이지 대학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넘어가보면 국산 기기의 비율은 한자리수까지 줄어든다. 10개 중 9개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내수 시장에서조차 국산 기기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은 언감생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조원의 예산을 단순히 기술 개발에 쏟을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국산 기기를 쓸 수 있도록 구매 인센티브 제도 등의 판로 개척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에 100% 힘을 실어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막상 사용자, 즉 의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들은 국산 의료기기 기업에 대한 인프라 신뢰도를 얘기하고 있다. 믿고 쓸 수 있느냐는 의문.
제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부터 구매 과정, 이후 즉각적 애프터 서비스, 나아가 업그레이드 등의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잡혀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국산 기업들의 경우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다는 지적이다.
제품을 구매했는데 AS가 되지 않거나 몇 일씩 미뤄지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판매 기업이 폐업해 아예 기기 자체를 버려야 하는 상황을 겪었다는 의사도 있다. 특히 일부 의사들은 아예 그런 제품이 있는지를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마케팅과 디테일의 부재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막연하게 4차 산업 혁명과 의료기기 국산화를 기치로 내걸기 전에 이러한 실태와 각자의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제 갈길을 가는 상황에서 국산 의료기기 활성화는 요원하다. 더욱이 내수 시장조차 삐걱대는 상황에 세계 진출은 신기루일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범 정부 조직과 국산 의료기기 제조 기업, 나아가 사용자인 의사들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곧 출범하는 차기 정부의 숙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