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회 젊은의사편]전달체계 해결책? '사회적 계단'
"의사 증원보다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손질부터" 한목소리
"의료전달체계가 박살 났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의료를, 필요한 정도로 해야 한다."
20~30대 젊은의사들은 비급여의 급여화로 불리는 일명 문재인 케어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다 못했다 '박살'났다고 진단했다.
메디칼타임즈가 '새정부에 바란다'를 주제로 개최한 특별 좌담회 [젊은의사편]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 대한공보의협의회 신정환 회장, 메디컬매버릭스 모채영 회장이 참여했다.
2020년 의사증원 등의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총파업까지 단행했던 젊은의사들은 그날의 충격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고,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외면하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동맹휴학, 국시 거부 등을 진행했던 의대생들의 이탈은 특히 컸다.
모 회장은 "파업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의대생의 충격은 컸고, 박탈감도 많이 느꼈다"라며 "의료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국, 일본 등으로의 이탈 조짐도 많이 보이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남자 의대생의 경우에는 군대도 36개월 이상을 복무해야 하는 군의관, 공보의로 가는 것보다 현역이나 카투사를 지원하는 비율이 확실히 늘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2020년 당시 신 회장은 성형외과 전공의로서 파업 최일선에 있었고, 여 회장도 파업에 동참했던 만큼 모 회장의 말에 공감하며 새 정부가 제도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문재인 케어를 겪으면서 의료전달체계는 제대로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정립되는 게 곧 이들의 미래와 직결되는 만큼 모든 대화는 '전달체계'로 끝났다.
신 회장은 "비급여의 급여화는 기형적인 비급여 구조, 의료이용량 증가라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책이었다"라며 "의료이용량 증가는 의료전달체계를 박살 냈다. 필요한 사람이 의료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여 회장 역시 "국민이 받아들이기에 의료서비스가 나아졌는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라며 "MRI, 초음파 급여화로 환자가 내야 할 비용이 적어졌지만 다른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재정을 투입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보장성 강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문재인 케어의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없다고 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여 회장은 "정부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확대됐다고 하지만 응급실을 찾는 환자를 보면 대다수가 비용 걱정을 한다"라며 "정부가 내세우는 통계치와 환자와 의료진의 체감 정도는 굉장히 다르다"라고 비판했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공보의 생활을 하고 있는 신 회장도 의료소외지역 중소병원의 현실을 공유했다.
그는 "의료급여 1종 환자 중 진짜 위중한 환자도 있지만 경증으로 매일같이 병원을 도장 찍듯이 찾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라며 "보장성 강화 정책이 그들의 의료이용을 더 높이는 결과라면 문제가 있다. 중증 환자, 꼭 필요한 환자에게 보장성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모 회장 역시 "중증과 경증 환자가 같은 혜택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특히 경증 환자에서 도덕적 해이가 많이 발생한다. 보장성 정책을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살 난 전달체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젊은의사들은 정권이 바뀐 데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지금이 무너진 전달체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적기라고 봤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의료를, 필요한 정도로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운 해결책은 우선 비용 통제로 경증 환자의 상급종병 진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경증 환자를 보면 안된다"라고 잘라 말하며 "의사마다 볼 수 있는 경증 환자 숫자를 제한하고, 중증도 이하 질환 진료비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 회장은 같은 맥락에서 병원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적 계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가 경증으로 상급종병을 찾지 않거나, 상급종병이 경증 환자를 돌려보낼 수 있는 일종의 유인책이 있어야 하는데 전무하다"라며 "현재 병원들의 수익 창출 구조는 환자가 많이 와야 하는 것이다. 병원이 환자를 돌려보내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돌려보낸다는 것에 대한 국민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젊은 의사들은 새 정부는 '대국민' 계몽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여 회장은 "사회적 틀을 깨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에서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들어오는 환자를 막을 수 없지만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계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 회장은 "상종이라고 다 똑같은 상종이 아니다. 의료비의 40% 이상이 서울 소재 상종으로 가고 있다"라며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인식이 제일 큰 문제다. 정부와 정치인이 나서서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해야 해결될 것 같다"고 전했다.
현 정부가 꺼냈던 의사인력 증원 역시 전달체계를 바로잡은 이후에나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신 회장은 "의사인력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 효율적 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본질"이라며 "수도권이나 광역시는 병의원이 많은데 도서지역은 인력이 부족하다. 국가는 지역에 의료 인력이 머무를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의대 하나, 병원 하나 더 짓고 의무 근무를 시킨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 회장도 "결국 전달체계가 문제다. 전달체계를 바로잡고 나서 의사인력이 문제 된다면 더 뽑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망가져 있다"라며 "독이 깨졌는데 물을 붓겠다고 하니 젊은의사들은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현 정부에서 특히나 젊은의사 세계에서 '공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 젊은의사들이 생각하는 공정은 뭘까.
신 회장은 "학연, 지연, 혈연관계없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라며 "의료혜택 역시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인한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아야 한다. 무분별한 의료가 행해지는 것은 의료계의 공정한 모습이 아니다. 환자와 의사의 공동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어느 정도의 감시, 제도적 제한도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전공의와 공보의 사회 선결 과제는?
전공의와 공보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조직이 있는 만큼 시급히 해결이 필요한 현안이 있기 마련. 실제 대전협은 대통령 선거 당시 각 후보 캠프에 ▲전공의 수련 국가지원 ▲감염병 사태에서 수련환경 보장 ▲전달체계 해소 및 입원전담전문의 활성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여 회장은 "전공의가 존재하는 자체가 올바른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시스템적 문제를 개선할 의지를 갖고 논의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진료보조인력 얘기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력이 없다고 하면서 대형병원은 여기저기 병원을 만들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라며 "해당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최소한의 논의해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신 회장은 공보의 복무 기간과 섬과 병원에서 일하는 공보의 처우 개선 문제를 꼽았다.
그는 "공보의는 복무 기간이 36개월에 기초군사훈련 기간까지 더하고 있다(현역은 18개월). 공보의 숫자고 소수이고 이들이 없으면 지역의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인데 노동법 측면에서 부당하다"라며 "공보의 제도에 대한 개념 자체를 노동법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섬과 병원 공보의는 의료취약지에 있다 보니까 노동력이 거의 착취 수준"이라며 "24시간 콜 대기는 기본이고 초과근무도 한 달에 30시간(초과근무수당 요구 기준)은 훌쩍 넘는다. 노동법에 어긋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들의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