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침 개정으로 2746개 치료재료 포괄 항목 묶여
글로벌·대기업들 지불 형평성 지적…국내사들 주판알
올해 신포괄수가제 지침이 개정되면서 2746개에 달하는 치료재료가 포괄 항목에 신규 편입되면서 이에 대한 득실을 두고 의료기기 기업들이 쉼없이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작스럽게 포괄 항목에 묶인 글로벌 기업들과 대기업들은 지불 형평성 등을 지적하고 나선 반면 국내사들은 점유율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 파장…의료기기 기업들 혼비백산
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으로 포괄항목이 급작스럽게 늘어나면서 의료기기 기업들이 긴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신포괄수가제는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의 혼합 형태로 2009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을 시작으로 전국 98개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는 수가제도다.
의료진의 행위는 물론 약제와 치료재료 모두를 포괄 항목과 비포괄 항목으로 구분해 포괄 항목은 포괄수가제에 묶어 지불하고 비포괄 항목은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하는 하이브리드 형태.
이번 지침 개정으로 의료기기 산업계가 들썩거리는 이유는 바로 비포괄항목에 해당하던 치료재료가 대거 포괄항목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구분 기준이 2단위에서 6단위로 확대되고 규정에 1인당 소요비용이 포함되면서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행위별 수가제로 치료재료 비용을 다 받을 수 있던 항목들이 포괄 항목으로 묶인 셈이다.
또한 과거 10만원 이상이면 무조건 비포괄 항목으로 분류되던 것과 달리 개정안에서는 20만원 이하는 포괄수가로 일괄 포함하고 나머지 20만원 이상 항목도 기준을 제시해야 비포괄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청구 자체가 막힌 치료재료들도 생겨났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지난해에 비해 약 2746개 치료재료가 비포괄에서 포괄 항목에 편입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부 의료기기 기업들이 대거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이로 인해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이나 대기업들은 이러한 지침 개정이 혁신 의료기기나 신의료기술 등이 사장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또한 의료기기산업협회 등도 이와 뜻을 같이 하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황효정 포괄수가 위원장(메드트로닉 이사)은 "과거 행위별 수가제가 적용되던 치료재료가 포괄 항목으로 포함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당연히 원가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어떤 제품을 쓰던 같은 돈을 받는다면 누가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재료를 쓰겠느냐"고 되물었다.
특히 이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유사 항목 동일 분류 원칙이다. 치료재료 중에서 포괄 항목에 포함되는 기기가 많을 경우 규격이나 재질, 형태, 기능과 무관하게 포괄로 편입되는 셈.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대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지정훈 수가개선 분과장(스트라이커 상무)은 "품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비합리적 구분으로 모두 포괄로 편입시킨다면 지불적정성을 저하시키는 동시에 형평성도 어긋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품목별 성능이나 임상적 유용성에 따라 보험 상한가가 엄밀하게 차이가 있는데도 이를 모두 포괄로 묶을 경우 우수한 제품이 오히려 시장에서 외면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또한 20만원을 초과하는 '흡수성 체내용 지혈용품'은 치료재료로 포괄로 들어가는 반면 동일한 기능의 약제는 비포괄로 나눠지는 지불형평성 문제도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 상대적 기회 강조…득실 계산 분주
하지만 모든 의료기기 기업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부 기업들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득실 계산에 나선 상황.
국내 치료재료 제조 기업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국 및 동남아에서 재료를 수입하는 기업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과거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에 치여 납품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들의 어려움을 기회로 보고 있는 셈이다.
국내 A기업 임원은 "솔직히 말해 기술력과 R&D, 판매망 등에서 글로벌 인프라를 지닌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극히 일부 품목들을 제외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막대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하지만 오로지 기본기와 가격만으로 승부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신포괄수가제로 글로벌 기업들이 포괄항목에서 발을 빼게 된다면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는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신포괄수가제 지침 개정으로 결국 가격대가 높은 윗 단부터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면 승부를 걸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진이나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치료재료 구매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국내 B기업 입원은 "과거 초음파 등이 급여권으로 들어왔을때도 순식간에 국내 제품과 중국 제품들의 점유율이 늘어난 바 있다"며 "고기능 고비용 제품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포괄 항목의 증가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질)만 보장된다면 누가 원가를 최대한으로 낮춰 물건을 댈 수 있는가에 대한 싸움이 된다"며 "이 방법을 찾아내는 기업이 새롭게 시장을 먹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내다봤다.
의료진들 또한 같은 의견을 내고 있다. 포괄수가제에 편입된 항목에 대해 최고의 치료재료를 쓸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 정부 또한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예상하고 항목을 정했다는 주장이 많다.
C대학병원 교수는 "포괄수가제 항목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의료진 입장에서 원가 절감의 압박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며 "정책 가산 수가가 있다 해도 행위별 수가제 프로세스를 그대로 따라가는 의료진과 의료기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포괄수가제 확대가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에게는 분명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같은 돈을 준 뒤 아이스크림 하나 사고 나머지는 당신 것이라 한다면 하겐다즈를 사겠느냐 수박맛바를 사겠느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