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보고서 발표에 의료계 불편 "보장성 강화 반대 명분"
"보장성 강화 과정에서 쌓은 정부와 의료계 신뢰 깨는 보고서"
"의사들이 보장성 강화를 반대할 좋은 명분을 줬다. 현 정권에서 보장성 확대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감사원이 28일 공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 결과 보고서를 접한 의료계는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전 정권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전형적인 꼬투리 잡기"라는 원색적인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부터 5~6개월 동안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산하기관인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정기감사를 실시했다. 이후 감사원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한 감사 내용이 일부 노출되면서 '문재인 케어' 타깃 감사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로도 반년이 더 지나서야 건강보험 재정관리에 대한 감사원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비급여의 급여화로 점철되는 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허점에 대한 지적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의 9건, 통보 25건 등 총 34건의 감사 결과를 최종 확정했는데 보장성 확대에 따른 손실보상이 의료계에 과다하게 이뤄진 데다 비급여의 급여화 이후 심사도 부실했다는 게 골자였다. 행위별수가제 한계를 지적하며 '묶음 수가'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감사원 보고서를 기다렸다는 듯 여당도 건보재정 방만 운영을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문케어 항목을 손실보상 과다 추계와 허술한 급여 심사로 무분별하게 확장시키고 그것을 성과로 부풀리려는 행태가 괘씸하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그는 "국민이 납부한 피 같은 보험료를 방만하게 쓰다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의료계 손실보상 과다 지출?
감사원은 비급여의 급여화에 따라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보상을 의료계에 너무 많이 했다고 지적하며 이해관계 단체인 의학회 자료를 검증도 없이 근거로 활용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바꿔 말하면 보장성 강화 정책 과정에서 의료계에 너무 많이 퍼줬다는 것.
사실 손실보상 개념은 박근혜 정부 당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의 급여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비급여를 급여권으로 들어오게 했을 때 발생하는 의료기관 손실에 대해 당시 정부는 '전액' 보전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손실보전 일환으로 탄생한 게 '의료질평가 지원금'이기도 하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이전 정부의 비급여의 급여화 보장성 강화 방안도 그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차이점은 문재인 정부는 의료계의 '저수가' 현실을 인정하고 '적정수가'를 약속했다는 점이다.
저수가 현실 속에서 비급여를 급여권으로 들어오게 했을 때 의료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손실보상'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10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것. 애초에 비급여 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과소와 과다의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이뤄진 손실보상이 과다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한 의사단체 보험이사는 "의료계는 학습된 경험으로 비급여를 급여권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경향이 크다. 수가가 관행가보다 낮아질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라며 "비급여는 관행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자료 확보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운을 뗐다.
그의 말처럼 비급여를 급여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설득과 대화 과정이 필수다. 일선 현장에서 비급여는 가격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적정 수가를 정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계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볼 수 있다.
이 이사는 "급여화를 위한 재정 규모를 파악하려면 의료계 자문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며 "건보공단이 표본자료로 수가를 산출하기에는 실제 의료현장과 간극이 컸다. 최근 급여화가 이뤄진 척추MRI만 봐도 의사 단체가 제시하는 비급여 규모와 건보공단이 산출한 것의 차는 상당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원이 손실보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짚지는 않았지만 예시로 든 내용을 보면 절차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라며 "감사원이 과거의 정책 진행 및 결정 과정에서의 오류를 짚어내는 조직이기는 하지만 정무적인 부분까지 모두 부정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예비급여 심사 부실?
감사원은 초음파와 MRI 급여화 과정에서 들어온 예비급여에 대한 심사도 부실했다고 지적하며 심사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요구했다.
예비급여는 단어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지 박근혜 정부 당시 선별급여와 같은 개념이다. 환자의 본인부담률에 차등을 두는 게 다른 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의학적 타당성과 경제성 효과 등을 고려해 본인부담률을 30~90%로 다양화하고 있다.
정부는 예비급여에 대해서는 진료비 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파악이 불가능했던 비급여를 예비급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다.
다만, 모니터링과 평가를 실시해 예비급여라도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 심사기준을 마련해 통제 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대표적인 게 뇌·뇌혈관 MRI 급여화다. 복지부는 2018년 10월 급여화 이후 약 1년간 급여 청구 현황을 모니터링한 후 과다 지출 현상을 포착, 급여기준을 조정했다. 신경학적 검사 이상 여부 등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률을 다르게 적용하기로 한 것.
그럼에도 감사원은 예비급여 형태로 급여화 한 항목에 대한 전문심사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의사단체 보험이사는 "의학적 적정성이 다소 부족한 것은 예비급여 형태로 급여권에 들여와 환자 접근성을 높였다"라며 "선별급여, 예비급여를 도입한 목적은 환자 선택권 보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운을 뗐다.
또 "비급여에서 급여화가 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가격을 통제받는 것이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모든 행위가 노출됨에도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것이다"이라며 "(감사원 결과는)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 하는 것을 막는 것과 같다. 예비급여 도입 취지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감사원의 건강보험 재정관리 감사 논란이 나올 때마다 복지부는 누적 적립금이 지난해 말 기준 20조2000억원으로 건보 재정이 안정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다 손실보상에 대한 사후조치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한 진료과의사회 임원은 "감사 결과를 받아든 복지부와 심평원은 급여기준 설정 및 심사 과정에서 위축, 경직될 수밖에 없다"라며 "보장성 강화 자체가 국민을 위한 것인데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 관계를 깨놓은 보고서가 나온 셈"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보장성 강화는 시대적 흐름인데 이렇게 되면 보장성 강화에 적극 협조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