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희 전 식약처 임상심사위원
최근 식약처가 의약품의 시판 후 안전관리 제도 중 재심사 제도를 폐지하고 위해성관리계획으로 통합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낡고 딱딱한 재심사 제도를 폐지하고 위해성관리계획으로 통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방향이지만 문제는 과연 식약처가 위해성관리계획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위해성관리계획(RMP, risk management plan)은 약물감시(pharmacovigilance)의 paradigm shift 를 일으킨 GVP(good vigilance practice)의 핵심개념 중 하나이다. 이전의 약물감시는 이상반응을 수집해서 그 정보를 알리는데 있었다. 그런데 GVP는 약이 인체에 투여되는 임상시험 이전 단계부터 예측 가능한 이상반응을 검토해 이상반응의 검출 및 조치를 계획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의약품의 전주기에 걸쳐 적용되는 매우 dynamic한 약물감시 개념이다. 유럽에서 2010년경 시작된 GVP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2015년 도입됐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에 GVP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
예를 들어 GVP 제도에는 임상시험 중 발생하는 이상반응을 검토해 위험신호, 즉 signal을 검출해 조치를 조기에 마련하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임상시험 중 발생하는 이상반응을 정리한 DSUR(Development Safety Update Report) 검토가 매우 중요하다. 식약처는 2010년경 외주 용역 연구를 통해 국내에도 DSUR 도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에도 DSUR 제출을 의무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필자가 식약처에 들어가 이 사실을 알고 식약처의 임상제도과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 등에게 왜 DSUR 검토를 하지 않는가 강력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안전성 정보를 전혀 검토하지 않던 식약처는 올해 초 DSUR 검토를 대한의학회에 일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얼마나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하는 무책임한 처사인지에 대해서 필자가 2022.1.24. 칼럼(식약처 신속에 미쳐 정신줄 놓다 feat.대한의학회)에서 다룬 바 있다.
또 시판 후 안전성 관리 중 가장 중요한 자료는 PSUR(Periodic Safety Update Report)인데, 마찬가지로 식약처는 이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었다. FDA와 EMA가 PSUR 검토를 통해 새로운 부작용 신호를 검출해 그에 대한 대처 계획까지 기술한 상세한 보고서가 올라오면 우리나라 식약처는 그저 copy & paste를 해올 뿐이었다. 이 얼마나 후진적인 행정인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거기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 위해성관리계획은 신약의 허가 전, 허가 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를 임상시험 자료, 동물시험 자료, 실험실적 자료 등을 총망라해 검토한 후 최대한 미리 예방, 검출하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 규제기관과 개발사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세우는 계획이다. 유럽의 경우 EMA의 PRAC(Pharmacovigilance Risk Assessment Committee) 위원회의 전문가들이 개발사의 전문가들과 함께 RMP에 대해 허가 전 수개월 전부터 여러 차례의 미팅을 거쳐 논의해 RMP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신약은 허가 후에도 안전성 정보를 위한 추가 임상시험을 요청받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셀트리온도 바이오시밀러 렘시마의 유럽 허가 때 추가 임상시험을 요청받아서 시행한 바 있는데, 그 임상시험은 우리나라의 재심사, 즉 PMS(Post Market Surveillance) 성격의 연구였다.
이와 같이 위해성관리계획의 검토 및 수립을 위해서는 의사들 중에서도 이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따로 training 받은 전문가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식약처에 들어가서 보니 위해성관리계획을 심사관들이 검토하고 있었다. 심사관들은 주로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인문과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위해성관리계획을 검토할 수 있겠는가? 의학용어를 해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필자는 그들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며, 전문성의 차이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에 필자가 식약처의 의약품안전관리국장에게 위해성관리계획에 반드시 의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요청을 했으나 역시나 답이 없었다.
그런데 임상시험 중 안전성 관리, 시판 후 안정성 관리, 위해성관리계획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재심사를 폐지하고 위해성관리계획으로 통합하겠다니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식약처 또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누가 과연 위해성관리계획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식약처가 위해성관리계획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이런 대책을 내놓았다면 필자는 강력히 요청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접종받은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 식약처는 과연 어떤 위해성관리계획을 수립, 요청했으며 모니터링했는지. 조건부허가를 받은 코로나 백신에 대한 위해성관리계획조차 제대로 수립하지 않은 식약처가 과연 어떤 약의 위해성관리계획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식약처는 반드시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제발 그 놈의 제약산업발전을 위한다는 더러운 명분 하에 더 이상 우리나라 의약품 안전을 망치지 말기 바란다. 위해성관리계획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면 재심사라도 남겨두어야 시판 후 안전관리의 명맥이라도 이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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