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 비급여보고 덤핑 현상 이미 벌어졌다"

발행날짜: 2023-01-30 05:10:00 수정: 2023-02-01 15:47:32
  • 신인철 대한치과의사협회 비급여대책위원장
    "의료데이터 활용으로 경영이익 꾀하는 산업계 경계해야"

정부는 지난해 비급여 가격 보고 대상 기관을 '의원급'으로 확대했다. 일선 개원가는 가격 경쟁을 조장해 의료의 질을 떨어트린다며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비급여 가격 공개에 크게 반대한 집단이 또 있는데, 치과계가 그 주인공이다.

치과계에서는 비급여 가격 공개 제도를 활용한 저가 경쟁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치과계는 비급여 가격을 공개하고 비급여 내역을 보고토록 하는 의료법이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치과계 의원의 절반은 아예 가격 입력을 하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일선 개원가가 합심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것. 비급여 가격을 입력하지 않으면 최대 200만원이라는 '과태료' 처분이 따를 수 있지만 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의료계가 비급여 보고 제도 '반대'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보고율은 90%가 훌쩍 넘는 현실과는 사뭇 비교되는 모습이다.

치협 신인철 비급여대책위원장

치협은 비급여 가격 공개 제도가 의원급으로 확대됨과 동시에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신인철 부회장이 대책위원장을 맡고 자문변호사 등 16명의 임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대책위는 비급여 보고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로드맵을 마련했다.

신 위원장은 "치과는 만 65세 이상에게 최대 2개까지는 임플란트가 급여로 가능한데 급여는 130만원 수준"이라며 "정부가 표준화에 따라 책정한 수가일 텐데 시장에서는 비급여로 38만원의 임플란트가 등장했다. 환자 입장에서 정부가 책정한 130여만원의 수가가 적정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임플란트 가격이 38만원이면 치과의사 한 명이 3000여개의 임플란트를 했을 때 수익을 볼 수 있는 비용"이라며 "일부 치과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공개된 평균 가격을 올려놓고 정부보다 더 싼 가격이라며 광고로 활용할 정도다. 이미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고, 의료의 질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치협은 비급여 보고 제도를 담은 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보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5월 비급여 진료비의 보고 및 공개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조항의 위헌성을 들여다보기 위한 공개 변론을 열기도 했다. 공개 변론 후 치협은 헌법학자와 대형 로펌의 의견을 담아 추가 의견서를 냈다.

신 위원장은 "비급여 가격 공개는 저수가 덤핑을 조장해 환자 피해 발생과 의료시장의 적정 진료비를 교란한다"라며 "의료 단체 사이 단결이 필요한 시점이고 이해관계 조율의 구심점 역할을 치협에서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대책위를 꾸렸다"고 말했다.

이어 "일선 회원에게 헌법소원 참여 사실을 적극 알리고 의료계 단체와 함께 헌재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비급여 보고 저지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 자료 제출 거부에 동참을 호소했다"라며 "비급여 가격 공개 방식이 폐해를 치과 의원들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제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 참여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치협, 소비자 설득도 집중 "헌재 판결 이후로 논의 미뤄야"

치협은 비급여 보고 의무화를 헌재 판결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치협은 단순히 정부를 향해 제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아니다. 비급여 가격을 확인하는 당사자인 환자, 소비자와도 직접 만나 제도의 부당함을 설파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 표준화를 위해 비급여 통제가 중요하겠지만 비급여 가격 공개로 인한 저수가 덤핑 문제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소비자 단체를 만나 제도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보고 제도 반대는 치협뿐만 아니라 범 의료계가 연대하고 있다. 치협을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한의사협회가 한목소리로 제도에 반대하고 있는 것.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관련 행정예고를 강행, 40일이 넘는 의견수렴 기한을 가졌고 그마저도 지난 25일자로 끝났다.

치협은 적어도 헌재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비급여 보고 의무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도 같은 내용으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신 위원장은 "국가 기관이 권력을 이용해 국민의 민감정보를 임의로 수집해 가공, 활용하고 나아가 매매 및 민간업체에게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에 위배된다"라며 "헌법재판관 임기가 3월이면 끝나기 전에 이전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한참 뒤로 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지부 입장에서도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절차를 진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라면서도 "위헌 판결이 나오면 정부도 제도 시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일단 헌재 판결 전까지는 모든 비급여 관련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치협은 비급여 정보 공개는 의료산업화를 위한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고 정부 주도의 의료산업화 견제를 위해 타 전문 직역 단체와 '플랫폼 연대'도 구축했다. 의협과 치협 외에 대한변호사협회, 대한건축사협회가 이름을 올렸다. 비급여 정보도 일종의 '빅데이터'로 이를 민간 기업에 열어주면 덤핑과 의료의 질 저하는 자명하다는 게 치협 등 의료단체의 생각이다.

신인철 위원장은 "비급여 보고 문제는 단순히 의사, 치과의사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라며 "보건의료 데이터 활성화 및 활용을 통해 경영이익을 꾀하는 산업계의 이해관계와 공공성이 충돌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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