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눈앞에 두고 무면허 의료행위 고민해야하는 현실
의료진들 "상당수 대학병원 이미 응급구조사가 심전도 중"
# B대학병원에서 20년 넘게 근무해온 응급구조사 김씨는 오늘도 급성심근경색으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눈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심전도 검사를 해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보내고 싶지만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검사는 현행 응급의료법상 위법이기 때문이다. 응급실 근무 인턴 2명이 70여명이 넘는 환자의 심전도, 채혈, 소변줄, 콧줄, 주사투여, 관장 등을 도맡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사실을 김씨는 잘 알고 있다. 임상병리사에게도 호출해보지만 그들은 외래 환자를 검사할 뿐 응급실 호출에는 답이없다. 김씨는 혈압이 떨어지면서 곧 심정지를 일으킬 것 같은 환자를 보면서 오늘도 눈을 질끈 감고 심전도 검사 버튼을 누른다.
최첨단 의료기술이 쏟아지는 2023년 3월, 모 대학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이는 정부가 응급의료법상 응급구조사에게 심전도 검사를 제한하고 있는데 따른 부작용이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의료현장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손질해 응급구조사에게도 심전도 검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법상 1급 응급구조사는 ▲기도 유지▲정맥로 확보▲인공호흡기 이용 호흡 유지▲약물 투여▲구강 내 이물질 제거▲기도 유지▲기본 심폐소생술▲산소투여▲사지 및 척추 고정▲지혈 및 창상 처치▲심박, 체온, 혈압 측정▲혈압 유지▲규칙적 심박동 유도▲천식 기관지확장제 흡입 등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에 심전도 측정과 더불어 ▲심정지·아나필락시스 쇼크 시 에피네프린 투여 ▲정맥로 확보 시 정맥혈 채혈 ▲응급 분만 시 탯줄 결찰 및 절단 추가 등 19종으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확대했다. 환자 이송과 응급실 접점에 있는 응급구조사에게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엔 임상병리사협회가 응급구조사에게 심전도 검사를 시키는 병원을 고소하겠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임상병리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응급실 내 심전도 측정 및 채혈할 수 있는 임상병리사가 부족한 경우에는 충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조정안을 요구했다. 임상병리사의 응급실 채용 의무화를 요구한 것. 업권 사수하기에 나선 임상병리사협회는 복지부 앞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 등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철폐를 위한 고강도 투쟁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복지부 박향 공공정책관은 앞서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임상병리사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단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응급실에선 오늘도 1분 1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눈앞에 두고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B대학병원 응급구조사 이모 씨는 "코로나19 환자는 외래 심전도실 임상병리사가 검사를 거부해 응급구조사가 검사를 실시했다"며 "외래나 병동에서도 환자 상태가 안좋아 응급실로 내려오는 경우는 응급구조사가 검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응급구조사는 "코로나19 당시 응급실 내 검사실 업무가 많아 임상병리사가 파견 나왔다가 2개월만에 업무과부하로 사직 의사를 밝히면서 결국 다시 검사실로 돌아간 사례가 있다"며 "인턴도 즉시 검사가 어렵고, 임상병리사의 응급실 검사를 요청하는 것은 더욱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지방의 국립대병원 한 보직자는 "국립대병원조차도 응급실 내 임상병리사를 배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업무가 넘쳐나는 인턴에게 심전도 검사까지 맡기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모두들 쉬쉬하고 있지만 이마 상당수 대학병원에서 응급구조사가 심전도검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언제까지 무면허 의료행위를 자행하도록 놔둬야겠나. 의료현실에 맡게 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