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희 전 식약처 임상심사위원
이 칼럼이 필자의 마지막 칼럼이어서 무엇을 다룰까 고민을 많이 했다.
짧은 1년간의 지방의료원 경험을 통해 지방의료원의 문제를 정리해 보기도 했지만 그게 마지막 칼럼이기는 싫었다. 그러던 차에 필자는 ‘악귀’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이유는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읽고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획의도를 복붙하면 이렇다.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는 산영을 통해 여전히 청춘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해상이 성장하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보려 한다’. 제목과는 영 연결이 안되는 기획의도를 보며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의 ‘사냥개들’ 이라는 드라마 요약본을 보게 되었는데, 건우와 우진 두 젋은이와 진짜 어른 최사장님을 보면서 이런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칼럼으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또 한 명의 어른으로서의 나에게 격려가 되는 글을 쓰기로 했다!
필자가 지난 2년여간 칼럼을 쓰면서 느낀 건 칼럼을 쓴다고 사회의 부조리가 조금이라도 바뀌지는 않는다는 절망이었다. 식약처는 최근 위해성관리계획의 보고시점을 본래 6개월~1년이던 것을 3년까지 연장해준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GVP(good vigilance practice)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식약처로 인해 우리나라의 의약품 안전관리정책은 GVP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의 시판 후 안전관리가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는 팬데믹 기간 긴급승인한 코로나백신의 제조회사에 요청한 위해성관리계획을 보면 알 수 있을텐데 전혀 공개가 되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위해성관리계획을 요청하니 않으니 당연히 위해성관리계획의 보고서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있을 것이며, 그러니 위해성관리계획의 보고서 제출기한을 연장시켜 준다는 황당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어떠한가? 백신부작용 인과관계 평가를 개떡같이 하여 피해자들에게 피눈물나게 한 피해보상전문위원회의 위원장에게는 건국훈장을 주고, 본인들이 자체적으로 백신부작용 인과관계를 연구할 능력이 없어서 외주를 준 백신안전성위원회의 연구결과조차 WHO가 인정하지 않으니 인정하지 않겠다는 추태를 부리고 있으며, 백신부작용에 대해 여야합의한 특별법안을 예산이 많이 든다고 거부하고 있는데, 문제는 추정 예산조차 제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필수의료시스템의 붕괴는 사실상 잘못된 의전원 의대교육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점이 큰데, 이에 대한 성찰은 하지 않고, 오히려 의예과 교육을 없애겠다는 의대교수님들이나, 간호사 등 함께 일하는 의료진들에 대한 배려와 포용 없이 공격만 하는 의사들이나 전체 의료시스템은 어떻게 되든지 자기 병원만 살면 된다고 의료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거대병원들의 횡포 등을 보면 우리나라 의료계에 진정한 어른은 없는 것 같다.
결국 사회의 부조리는 지속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소망이 있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멋있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아과는 망했다고 다들 얘기하지만 소아과 전공을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있고, 가장 삶의 질이 낮은 필수의료인 흉부외과/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있다.
3교대를 하며 과중하게 많은 환자들을 돌보며 그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지 않음에도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간호사들이 있다. 20여년 전이나 급여가 별 차이가 없고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 정말 많은 고생을 했지만 전혀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그 수고가 알려지지도 않은, 그럼에도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소소하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소망스러운 임상병리사들이 검사실에는 있다.
이들을 응원하며 낭만닥터 김사부의 대사로 필자의 마지막 칼럼을 갈음하고자 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 진심을 알아줄 수는 없어. 그 정도로 우리한테 뭐 관심 있지도 않고.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뭐 그거 일일히 설명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우리는 우리가 그냥 해온 대로, 살아온 대로 누가 뭐라건 묵묵히 쭉 가. 묵묵히 산다고 그거 절대로 사라질 거 아니거든. 진짜로 의미 있는 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알지?’
P.S. 그동안 필자에게 칼럼을 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 메디칼타임즈와 필자의 부족한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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