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사회 이태연 부회장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이 9월 25일로 시행됐다. 일주일의 반 이상을 수술실에서 지내고 있는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참담한 심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감시받는' 수술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수술실은 외과의사에게 있어서, 환자 치료에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공간이다. 동시에 잠재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등 환자의 치료와 안전이 최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피부 또는 점막을 절개하는 외과적 치료행위가 필요한 수술에 CCTV 설치는 의료진의 집중력 저하를 초래하고, 과도한 긴장을 유발하여 의료행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환자의 회복을 위해 능동적‧적극적이어야 할 수술이 의료진의 방어적‧소극적인 대처를 통해, 종국에는 환자에게 심각한 위협을 끼칠 수 있고 결국 환자의 건강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대리수술 방지를 위해서라면 굳이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법안 통과 당시부터 누누이 설명한 바 있다. 한 사람의 진료를 위한 의료행위에는 초진기록지부터 시작하여 경과기록지, 투약일지, 간호일지, 수술기록지, 마취기록지 등등 모든 것을 기록하여, 이미 기록과 증거물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이러한 기록들조차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면, CCTV를 설치한다 한들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일부 극소수 환자들의 의구심 해소를 위해, 대다수의 환자들에게 더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일이다.
둘째, '외과 기피 현상'을 가속화하여 필수의료를 몰락시킬 것이다.
최근에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심장 기형 수술에서 결과가 좋지 않자 제기된 소송에서 수 억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지는 등, 의료 분쟁 소송은 급격히 증가하는 한편, 배상액수 또한 늘어나고 있다.
저수가로 점철된 외과계에서, 그 수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더욱 늘어남으로써, 안 그래도 버티기 힘든 외과의들이 점점 더 수술장을 떠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점점 더 악화되는 외과계 환경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는 현실에서 수술실 내 CCTV 시행은 그야말로 '외과계의 종말론'을 앞당기는 격인 것이다.
셋째, '의료진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기본권 침해'이다.
지난 2021년 세계의사회의 서한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수술과 투약 등의 의료행위는 신뢰와 믿음에 기반을 두는 것으로 이것을 보장하기 위한 프라이버시 보호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CTV 시행은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 등에 대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직업수행의 자유, 초상권 등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우리 의료인들 역시,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직업수행을 보호받아야 한다.
특히, 수술실 CCTV 설치는 의사의 환자 비밀 유지 의무와 환자의 개인 의료 정보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의사의 환자 비밀 유지 의무는 의료법에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의사의 법적 의무 사항이며, 의사는 의과대학에서부터 환자 비밀 유지를 의사의 최우선적인 보편적 직무윤리로 교육받고 있다.
또한, CCTV 영상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해당 영상 정보 유출 가능성이 상존함에 따라 환자의 비밀 또한 보장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얼마 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함께 헌법재판소에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의료법 개정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와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하였다.
부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