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이원정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의대 증원 정책의 가장 첫 번째 대상은 '의대생', 그리고 이 정책을 통해 영향을 가장 최전선에서 받게 될 주인공들은 의대생을 나아가 전공의, 그리고 전문의까지, 즉, 결국엔 '의사' 집단 전체이다.
의료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주체인 의사들, 특히 그중에서도 전공의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증원 정책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의해 자신들의 존속과 미래에 대한 어떤 보장도 갖지 못한 채 불안에 떨며, 더 이상 의료를 행하기 위해 필요한 본인들의 가치체계를 생성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저항하며 투쟁을 시작한지도 벌써 반년이 되어간다.
결국, 정부가 근본적인 의료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내놓은 정책은 의료체계를 망가뜨리고, 환자를 보살펴야 하는 의사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하였기에 결국 나아가 환자와 의사, 그 어느 누구의 생존권도 보장하지 못하였다. 의료사회가 완전히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사회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며 바란 결과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절대로 당면하지 않았을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올바른 의료사회에 대한 바른 고찰을 낳을 수 있도록, 이 단체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체행동이란, 둘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벌이는 행위를 말한다. 단체행동은, 개인의 행동보다 큰 파급력을 가질 때가 많기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와 같은 단체행동의 중요성을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늘 개인주의를 추구하고 본인들끼리 경쟁하기 바빴던 의대생들 혹은 전공의들이 단체 내에서 힘을 합쳐 꽤 오랜 시간 동안 한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것은, 어쩌면 생소한 상황이다.
그만큼 이 정책으로 인해, 밤낮으로 자지 않고 식사도 거르며 환자들 곁을 지키는 의사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의료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자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취지가 아무리 옳고 그 의지가 강할지라도, 완벽한 단체행동은 없다. 누군가는 공동체에 등을 돌리며 자신의 의견대로 행하기 마련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소신이라는 이름 하에, 되돌아가고 있는 전공의들, 그리고 파업하는 전공의들의 의견에 동참하지 않는 전문의, 교수들이 존재한다.
단체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그들은,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기에, 아픈 환자들을 버려두고 병원을 떠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세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눈앞의 가치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 의료계를 눈물을 머금고 떠난 전공의들이, 결코 환자를 생각하지 않아서 이와 같은 투쟁을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질보다 양을 추구해버린 증원 정책 탓에 결국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무작위로 배출될 의사들 때문에 환자에게 알맞은 의료가 행해지지 않는 병원, 그리고 의사 한명 한명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아 환자들에게 온전히 바쳐야 할 집중이 불안으로 뒤덮여 환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병원을 염려하는 것이다.
나 하나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단체행동에서 이탈한 의사들은 의료사회 전체의 더 올바른 방향을 위해 결의를 내린 공동체의 진심을 사려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닐까. "지금 우리는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홍재우 사직 전공의가 3월 10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된 대한외과의사회 춘계학술대회 기념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밝힌 입장이다.
사실 환자의 생명 보장에 대해 얘기하면서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전공의들이나 투쟁하고 있는 전공의들을 무시해버리는 전문의들은 자신의 당장의 일자리 사수, 자리 보존을 위해 의사 공동체의 '옳은'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의료사회가 서서히 멍들어 가는 이 사태가 지속되는 원인은 사실 정부에 맞서고 있는 의사들이 아니라, 의사 집단의 공동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남의 일마냥 치부해버리는 이탈자들일 것이다.
이탈자들이 이러한 단체행동을 가벼이 여겨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이 이를 '옳고 그름'이 아닌 '좋고 나쁨'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일 것인데,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발을 자신의 자리를 내걸고 하는 이러한 단체행동이 '좋지 않고 나쁘다'라는 그들의 가치 판단은, 환자나 의료사회가 아닌, 본인의 안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의사들 다수가 입을 모아 '옳다'라고 생각하는 가치가 몇명의 이탈로 인해 수많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수많은 피해 감수, 그리고 어려운 생계를 뒤로한 투쟁이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간 영혼이 갈려 나갈 만큼 힘든 의대 생활과 전공의 생활에서도 보람을 찾고 버텼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증원 정책으로 병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생계마저 놓고 이 투쟁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전공의의 결단과 더 나은 의료를 위해 힘쓰는 그들의 열정을 동료 전공의들과 선배 전문의들이 헛되이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