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파로 신장신경 차단…수축기 혈압 평균 10mmHg↓
유럽고혈압학회도 지침 권고…신의료기술평가 결과 관심
신장의 교감 신경을 고주파(RF)로 차단해 혈압을 장기적으로 낮추는 신경차단술이 대규모 임상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면서 고혈압 관리의 새로운 선택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고혈압 약을 아무리 먹어도 효과가 없거나 다양한 이유로 약물 복용 자체가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옵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경차단술이 과연 국내 환자들에게도 새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약물 불응성 고혈압 대안 떠오른 신장신경차단술
18일 의학계에 따르면 약물 없이 의료기기를 통해 혈압을 감소시키는 신장신경차단술(renal denervation, RDN)이 고혈압 관리의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혈압은 말 그대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혈압이 기준치보다 높아지는 질환으로 국내에서도 2022년 환자가 1230만명에 달할 만큼 유병률이 급상승하며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행히 칼슘채널차단제나 ACE, ARB 억제제, 베타차단제 등 다양한 고혈압 약물들이 개발되며 효과적인 약물 요법이 정립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계가 분명한 것도 사실.
실제로 대한고혈압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 중 약물 요법과 생활 습관 교정 등으로 정상 혈압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나머지 44%의 환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두된 것이 바로 신장신경차단술, 일명 RDN이다. 약물이 아닌 의료기기를 통한 시술로 혈압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RDN은 교감신경을 통해 혈압을 조절하는 신장의 기능에서 착안된 시술이다. 신장의 교감신경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효과적으로 혈압을 낮출 수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를 위해 의료기기 기업들은 고주파(RF)와 초음파(US) 등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현재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바로 고주파를 활용한 시술이다.
메드트로닉의 의료기기인 심플리시티 스파이럴(Symplicity Spyral™)이 현재 RDN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유다.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은 대퇴부 동맥을 통해 신장으로 이어지는 동맥에 다중 전극(multi-electrode) 카테터를 삽입한 뒤 고주파 에너지를 쏴 신장신경의 교감 신경을 차단해 혈압을 상시적으로 감소시키는 기전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현재 RDN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 데이터는 대부분이 메드트로닉이 만들어가고 있다. 10년 넘게 대규모 장기 임상을 통해 꾸준히 데이터를 쌓고 있기 때문이다.
심플리시티 스파이럴 시장 주도…2만 5천명 대상 임상 근거
이 임상은 크게 HTN-OFF MED, SPYRAL HTN-ON MED, GSR(Global SYMPLICITY Registry)-DEFINE 등 세가지가 주축이다.
매년 미국심장학회, 유럽심장학회, 유럽심혈관중재술학회 등의 주요 세선을 장식하고 있는 연구로 RDN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임상 참여자수만 2만 5천명에 달한다.
일단 SPYRAL HTN-OFF MED는 고혈압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군과 가짜 시술(sham-controlled), 대조군을 1대 1로 무작위 배정해 진행한 임상이다.
미국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ACC)에서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을 통한 RDN 시술 후 3개월 시점에서 치료군의 진료실 수축기 혈압(OSBP)이 9.2mmHg 감소, 24시간 외래 수축기 혈압(ABPM)이 4.7 mmHg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은 1, 2차 유효성 평가 변수를 모두 충족했으며 두 변수 모두에서 대조군 대비 99.9%에 달하는 이상의 우위 가능성(probability of superiority)을 증명했다.
SPYRAL HTN-ON MED는 이뇨제나 칼슘채널 차단제, ACE, ARB 억제제, 베타 차단제 등 최대 3개의 고혈압 약물을 복용중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으로 마찬가지로 미국심장학회(ACC)와 유럽심혈관중재술학회(EuroPCR)에서 결과가 공개되며 주목받았다.
최대 3제까지 고혈압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만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마찬가지로 치료군과 가짜 시술군, 대조군을 무작위 배정해 진행한 임상.
연구 결과 RDN 시술을 받은 환자는 외래 수축기 혈압이 6.5mmHg 감소했으며 야간의 경우 이 감소폭이 6.7mmHg로 더 커졌다. 대조군은 3.0mmHg에 불과했다. 3제 요법으로 약을 먹은 환자보다 감소폭이 월등하게 높았다는 의미다.
GSR-DEFINE은 약물 사용 유무에 관계없이 좀 더 광범위한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RDN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살펴본 연구다.
총 2746명 중 18%는 0~3제, 82%는 4제 이상을 처방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로 3년 시점에서 진료실 수축기 혈압은 16.7mmHg이 떨어졌고 외래 수축기 혈압도 9.1mmHg나 감소했다.
특히 관찰한 환자들 대부분 복용하는 약물 수가 줄었거나(31%) 변화가 없었고(47%) 이러한 혈압 감소 효과는 고령, 당뇨, 심방세동, 심부전, 뇌졸중 등 환자의 상태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더욱이 3년간의 추적 관찰 결과 1년차에서는 평균 감소폭이 13.7mmHg, 2년차에는 15.0mmHg, 3년차 16.4mmHg을 기록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혈압 감소 효과가 커지는 결과가 나왔다.
최장 3년간 지속적인 감소 효과로 평균 10mmHg 이상 혈압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
수축기 혈압을 10mmHg 낮추면 주요 심혈관 질환(MACE) 위험이 20%, 관상동맥 질환 위험이 17%, 심부전 위험이 28%, 뇌졸중 위험이 27%, 사망 위험이 13% 감소한다는(JAMA Cardiol. 2018 Jul 1;3(7):572-581) 점에서 합병증 관리를 위한 확실한 유효성을 입증한 셈이다.
미 FDA 승인으로 전 세계에서 상용화…국내 도입 기대감 상승
이 세 연구를 기반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11월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을 허가했고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를 활용한 시술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 3제나 4제 병용 요법으로도 혈압이 잡히지 않은 환자들의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셈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각 학회들도 앞다퉈 RDN을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키는 추세다.
유럽고혈압학회(ESH)가 2023년도에 발표한 최신 가이드라인에서 RDN을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에 대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옵션'으로 평가하고 권고 수준을 높였고 유럽심장학회(ECC)도 올해 가이드라인에 새롭게 RDN을 추가했다.
실제로 RDN의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도 충분히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본 10년 이상의 장기 연구인 SPYRAL HTN-OFF 및 HTN-ON MED에 의해서다.
이 연구에서 RDN으로 치료받은 환자 중 시술 후 중요한 이상반응(mAE)가 나타난 환자는 단 한명에 불과했고 안전성 평가 지표를 모두 충족했다.
이로 인해 과연 국내에서도 고혈압 환자들이 RDN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현재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에 대해 한국보건의료원이 신의료기술평가를 진행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다른 치료법이 있는 상태에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나왔다는 점에서 기대할만 하다는 의견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채인호 교수는 "3제, 4제 병용요법을 시행해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가 많다"며 "이러한 환자는 사실상 더 이상의 치료 옵션이 없어 합병증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가운데 RDN이라는 새로운 무기의 등장은 고위험 고혈압 환자 관리에 큰 희망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러한 RDN 시술이 단 한번의 시술만으로 장기적인 혈압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비단 약물 불응성 고혈압 환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보조요법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채인호 교수는 "다양한 임상 연구를 통해 RDN, 특히 심플리시티 스파이럴이 1회 시술만으로 장기적으로 꾸준히 혈압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약물로 관리되지 않는 환자를 넘어 다양한 치료 전략에 효과적인 보조 옵션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