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라운지]마취통증의학회 김성협 기획이사(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외부 평가로 자기 객관화·전략 고도화·…거버넌스 구축 모범 사례될 것"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실험에 나섰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 학회의 인지도 강화 등에 있어 '외부 시선'을 수용하겠다는 것.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학회의 인지도 제고부터 재무 건전성, 정책 반영 전략까지 종합적인 진단을 받았다.
대형 병원 중심의 학회 구조와 내부 자율성에 의존하던 의료계 풍토에서, 학회가 스스로를 외부의 냉정한 시선에 맡겼다는 점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이미지를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학회의 정체성과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필수의료'의 존재를 사회에 각인시키겠다는 목표가 컨설팅 업체의 문을 두드린 동기가 됐다.
마취통증의학회 김성협 기획이사(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를 만나 이번 실험의 동기와 목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마취과 전문의는 공기와 같은 존재"
이번 행보는 자기 진단이다. 학회 내부의 논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외부 전문가의 시선으로 객관화하고, 학회 운영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기 위함이라는 것.
김성협 이사는 "마취통증의학은 수술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가장 근본적인 전문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은 낮다"며 "정부가 필수의료 확충을 외치며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를 지원하지만, 그 뒤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마취과의 존재는 늘 당연시 한다"고 했다.

그는 "중요한 역할이 정책과 사회 인식에서 늘 그림자 취급받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며 "외부 컨설팅을 통해 학회의 위치를 냉정히 평가받고, 향후 정책적·홍보적 전략의 근거를 쌓아 보자는 판단 아래 전영태 회장이 지시로 이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술실에서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고, 그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다시 깨우는 일은 단순한 수면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 유지의 경계를 관리하는 고도의 전문 영역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마취과 의사가 뭘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김 이사는 "우스갯소리로 마취과 의사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며 "공기는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숨 쉴 수 없지만, 이를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다.
■"홍보 전략, 재무 구조까지 의견 경청"
외부 컨설팅의 주요 영역은 학회 홍보 전략, 정책 참여 체계, 재무 구조 진단까지 이어졌다.
김 이사는 "컨설팅 프로젝트는 올해 초 킥오프 미팅을 시작으로 회원 설문조사, SWOT 분석, 타 학회 벤치마킹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며 "최종 결과물은 오는 12월 보고서 형태로 나오고 평의원회를 통해 피드백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컨설팅의 핵심은 자립과 소통으로 요약된다"며 "학회 재정의 상당 부분이 제약사 후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독립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재정 구조 전환과, 투명한 예산 관리 체계를 갖추자는 제안이 도출됐다"고 밝혔다.
이어 "또 하나의 축은 대국민 인식 개선으로 환자는 물론 국민들도 수술 중 마취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 홍보대사 도입, 방송 및 온라인 플랫폼 출연 등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대안으로 모색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의는 '세대별 인식 차이'를 객관적으로 드러냈다는 점. 김성협 이사는 "컨설팅 업체는 2019년 학회의 미션과 비전을 처음 수립할 때 함께했던 곳으로, 당시 회원 인식 조사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며 "새로운 설문 결과를 당시와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당시에는 학회의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번 조사에서도 여전히 '위상은 커졌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반응이 반복됐다"며 "세대별로 인식 차이가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시니어들은 과거에 비해 학회의 존재감이 크게 강화됐다고 느끼는 반면, 젊은 세대는 이미 잘 구축된 학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화의 폭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의 간극은 향후 학회의 정책 방향, 학술대회 구성, 회원 참여 전략 등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컨설팅 결과는 학회 운영의 실질적 거버넌스 구축의 근간이라는 뜻이다.
■"학회 거버넌스 모범 사례 보일 것"
김 이사는 "설문이나 분석 결과가 다소 뻔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구성원의 의견을 수집하고 설문을 통해 분석하기 때문에 학회 운영에 있어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며 "특히 재무 구조 개선이나 회비 운영 등 민감한 사안은 내부 논의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워 설득의 근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방향이 변하고 일방적인 탑다운 방식이라, 거버넌스 구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본학회는 근거 기반의 운영 원칙과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세우려 한다는 점에서 이번 컨설팅은 학회 거버넌스 확립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외과계와 협력해 수술 전후 환자 관리 과정에서 마취통증의학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수가 창출' 작업에도 나설 전망이다.
김 이사는 "현재 대부분의 환자는 수술 전 외과 의사만 만나지만, 실제로는 마취통증의학과가 수술 전·중·후 모든 단계에서 환자 안전을 관리한다"며 "이 과정을 가이드라인 형태로 정리해 향후 이를 기반으로 수가를 신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마취통증의학이 단순히 수술을 돕는 조력자가 아니라, 환자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전문 영역임을 제도적으로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외과와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임상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