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칼럼| 2005년은 의사 위기의 해

박경철
발행날짜: 2005-01-03 09:29:09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8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출발한 '종속이론'이 한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발 도상국의 진보적 지식인 들에게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다.

종속이론의 대표적인 발전 이론가였던 로스토는 '종속이론'을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러분은 땅바닥을 기고 있지만, 이왕 기는 거 열심히 기라. 기는 데 익숙해지면 점차 속도가 붙을 거고, 속도가 빨라지면, 저기 비행기 보이지?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여러분도 땅바닥에서 둥실 떠올라 이륙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우리 선진국의 대열에 함께 서서, 그동안 참고 참으며 부풀린 빵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로스토의 ‘이륙이론’이라고 부른다.

또 종속이론의 문제설정을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가장 먼저 이론적으로 제시한 사람으로 라틴아메리카 경제학자 앙드레 군더 프랑크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지구상에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와 ,발전될 나라만이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면서, 제3세계에 대한 선진국, 아니 제국주의 나라들의 투자는 발전을 가져온 게 아니라 반대로 ‘저발전의 발전’만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저발전(underdevelopment)이란 아직 발전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발전할 어떤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고, 발전과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저발전의 발전이란 발전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 땅바닥을 아무리 빨리 긴들, 혹은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빨리 달린들 그게 비행기처럼 ‘뜰 수는’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제 삼세계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종속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결국에는 같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거래는 힘의 격차만큼이나 불공정하고 부당한 거래가 지속되기 때문에 후진국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선진국을 따라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선진국에 착취당하면서 항상 거꾸로 발전하게된다"

필자가 생뚱맞게 한물간 종속이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이렇다.

현재 작금의 의료계는 두개의 커다란 흐름으로 재편성되고 있다.

첫째는 민간의료, 특히 기존 의사들중에서 자금력이 뒷받침되고 시장을 선점한 의사들과, 외국인 투자지역에 내국인 진료가 허용되고 이것을 발판으로 장기적으로 영리법인 허용으로 이어질 것에 대비한 포석을 하고 있는 기업자본을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화이다.

둘째는 현행 국립의료원을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재편성하고, 국립중앙 의료원 산하에 국립의료원, 국립 암센터, 국립 장기이식센타, 국립한방병원, 국립응급의료센터 등을 중심 섹터로 두고, 그 아래에 전국의 지방공사 의료원을 중간 허리로, 마지막 세포단위로 전국 보건소와 보건지소를 두는 공공의료의 큰 줄기이다.

이중에서 첫번째 섹터는 현행 의사자본과, 혹은 의사자본과 연합한 기업자본, 그리고 기업자본의 세가지 자본이 민간의료를 이끌어 가게된다.

특히 민간의료의 중심축이 되는 영리법인과 이들 자본은 바존의 논리를 앞세워 현행의 기존 의료질서를 통째로 흔들어 놓고, 의료시장 전체를 일대 재편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경우 현재 대부분의 중소의사자본 (중소형병원과 개인클리닉)은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의 규제와 시장의 압박으로 서서히 지리멸렬 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공공의료의 확대는 지방공사의료원과 보건소 도시형 보건지소의 대폭적인 확장으로 이어지고, 이 경우 민간자본의 고급의료와 경쟁을 하지못하는 의사자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될 공산이 크다.

지방공사 의료원이 중소형 병원들과, 보건소 보건지소들이 개인클리닉들과 경쟁관계에 놓이고, 민간의료에 고부가가치 시장을 빼앗긴 중소형 의사자본들은 보건소와 보건지소와의 싸움에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부의 1차 예산만 4조원이 투입될 경우, 시군구 단위의 어떤 병원도 공공의료 시스템을 이기기 힘들어질 뿐 아니라, 특히 가격경쟁력에서 뒤진 중소형 의사자본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으로 몰릴 공산이 크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것이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자영업자들은 거대자본의 물결에 휩슬려 거의 질식 상태에 있다.

동네마다 들어선 할인점은 슈퍼를, 골목마다 들어선 편의점은 구멍가게를 도산시키고, 그나마 '제살 뜯어먹기'식으로 틈새시장으로 등장한 5000원짜리 치킨, 2000원짜리 삼겹살 체인점과 같은 박리다매형의 업종들마저, 결국에는 동종 전략을 구사하는 저가형끼리의 경쟁으로 박리다매에서 박리소매로 스스로를 몰살시키고 있다.

결국, 이러한 시장질서의 재편과정은 형행 우리나라 경제구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출주도형의 기형적인 경제체제는 중소기업의 육성보다는 대기업위주의 정책이 중심이 되고, 대기업 위주의 정책은, 생산성을 명분으로 한 생산기지 이전으로 대대적인 일자리 감소를 유발하였으며, 이것은 결국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자영업자의 양산을 몰고 왔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졸업정원제 이후로 과도한 의사의 양산은 무수한 개원의를 양산했고, 이것은 현재 의사 사회의 목을 조르는 아킬레스건이다, 개원가의 포화는 봉직의들의 희소가치를 떨어뜨려 의사가 자본에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고, 이점은 추후에 의료의 공익성이라는 측면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결국 서두에 말한 종속이론의 '코어 - 핵심'와 '페리페리 - 주변부'를 여기에 대입해보면, 결국 코아는 거대자본이. 페리페리는 의사사회가 해당하고, 이러한 종속적 경향의 강화는 의사사회의 경쟁력 약화와 의료가 수익논리에 매몰되는 상황을 필연적으로 초래 할 것이다.

때문에 2005년부터는 우리 의사들이 특단의 의지로 이 문제를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이래의 한국의료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2005년은 정부의 공공의료정책 강화와, 민간자본의 의료시장 본격 진입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며, 상대적으로 우리 의사 사회는 강력한 시련이 시작되는 한해가 될 것이다.

위기는 연탄가스처럼 소리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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