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 숨통 조이기...1차 진료영역 파괴<2>

정인옥
발행날짜: 2005-10-20 07:37:40
  • 준비안된 전문병원 시범사업 갈등 유발, 교통정리 시급

|특별기획|전문병원, 어떻게 안착할 것인가

정부가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전문병원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특화된 진료와 협진시스템 구축, 꾸준한 연구기반 확충 등으로 전문병원들이 입지를 탄탄히 하고 있지만 제도 도입을 둘러싼 의료계 내부 갈등도 적지 않다. 전문병원이 정착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전문병원의 빛과 그늘
2.의료계의 우려와 논쟁
3.상생의 조건과 과제
실속없는 전문병원 표기
보건복지부가 전문병원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개원가를 중심으로 반대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현재 상당수 전문병원들은 특정 질환(전문과목) 이외에 진료수입을 늘리기 위해 진료과목을 확대하는 추세다.

전문병원 특성에 맞는 진료만 할 경우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게 이들 병원의 주장이다.

화상전문 베스티안병원은 치과를 개설해 턱 성형을 실시하고 있으며, 심장질환전문 세종병원은 비만클리닉과 대체의학클리닉을, 대장질환전문 한솔병원은 비만센터를, 관절전문 현대병원은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다.

베스티안병원 관계자는 “화상질환자는 사망률이 높고 환자 스스로 진료를 거부하는 일도 허다해 전문 의료기관이 거의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전문병원을 유지하려면 비보험과를 개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세종병원 역시 “심장질환자만 다루면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며 “현 의료수가의 문제와 함께 정부 지원이 없기 때문에 전문병원이 특정질환만 고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개원가와 1차진료 영역 중복

이와 함께 전문병원들은 병원 건물에 ‘○○질환’ 또는 ‘○○과’ 전문병원이라는 것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문병원 관계자는 “전문병원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홍보해야 하는데 복지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더욱이 전문병원 지정병원임에도 불구하고 특정질환이나 특정전문과목을 표기할 수 없어 홍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개원가에서는 전문병원의 특정질환 표방을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문병원들이 진료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병원까지 표방하도록 하면 동네의원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서울 강남의 A의원 김모 원장은 “화상질환과 같은 특정질환을 전문병원으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장항문처럼 1차의료기관에서 다루는 질병을 전문화하는 것은 사실상 개원가와 경쟁구도를 형성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천의 한 개원의도 “개원가가 살아남기 위해 특수클리닉을 개설하는 상황에서 전문병원이 1차진료 영역까지 파고들면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의사협회 역시 전문병원의 특정질환 명칭표기에 반대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전문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보편적으로 시술할 수 있는데 굳이 특정질환 명칭을 표기하려는 것은 해당병원을 홍보해 주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는 의원급에서 다룰 수 없는 질병을 3차병원 수준의 전문적인 진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i4#인센티브만 있고 백화점 규제는 없다

결국 전문병원과 개원가의 갈등은 진료영역이 중복된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복지부가 전문병원 시범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교통정리를 했더라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의협은 전문병원제도가 동네의원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협은 “중소병원을 활성화하는 것은 좋지만 전문병원제도의 기준도 확립하지 않은 채 시행하면 지금과 같이 백화점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이는 동네의원과 진료영역이 겹쳐 사실상 개원가를 죽이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5월 전문병원 시범사업계획을 통해 앞으로 전문병원에 대해 전공의 배정, 특정질환(과목) 표방 허용, 개방형병원 활성화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불필요한 진료과목 개설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전문병원들은 현재의 진료과목을 그대로 유지하게 됐고, 여기에다 ‘복지부 지정 ○○질환 전문병원’을 표방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α’로 보장받게 된 셈이다.

전문병원 시범사업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개원가의 반발이 있었지만 복지부가 이를 무시하다가 불필요한 갈등을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전문병원과 개원가가 상호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병원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대신 ‘백화점식 진료’를 차단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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