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진료 등 역할 재정립 필요-한국형 모델개발 시급
|긴급진단:하|최근 내과전문의 회원수가 1만명을 돌파하며 전체 의사의 10%를 넘어서고 있다. 국내 최대 학회로 자부되어 온 내과학회가 분과전문의 시행 후 수 년 전부터 회원들의 무관심으로 겉옷만 걸쳐 입은 투명인간의 모습으로 점차 쇠퇴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과와 소아과도 세부전문의제도를 위한 분과학회를 활성화시키며 학문과 진료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어 내과의 수순을 밟은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내과학 분과전문의제도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통해 한국 의학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과 모델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지난 5월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대한신장학회 춘계학술대회에는 1700여명의 회원이 참석해 추계학술대회 못지않은 성황을 이뤘다.
이중 700여명은 각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투석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대거 참석해 내과와 소아과 전문의 외에 직종을 타파한 학문적 열정과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분위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암학회의 경우도 내과를 비롯하여 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등 종양 관련 모든 전문의들이 총 망라되어 학술대회시 다양한 영역의 연제가 발표되고 있다.
이처럼 내과학회 분과학회로 불리는 대부분의 학회들은 소속만 자학회이지 실제적으로 내과를 능가하는 영향력과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내과학회의 소속을 이탈한 또 다른 군락을 형성한 채 대학병원간, 개원의와 봉직의간 유대관계와 영향력으로 학문적 발전을 빠르게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술지만으로 충분...내과학회 존재에 회의적
상당수 교수들은 내과학회의 쇠퇴는 정해진 수순이자 바꿀 수 없는 흐름이라며 내과학회의 고사를 주장하는 분위기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미국은 내과학회 학술지만 발행할 뿐 우리나라와 같이 매년 공식적인 학술대회가 없다”고 전제하고 “분과학회와 동일한 연자로, 동일한 주제하에 학술대회를 가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현 내과학회의 폐쇄를 주창했다.
또 다른 교수도 “개원의를 희망한다해도 내과 의사 대부분이 분과전문의를 선택하지 전문의에 국한하지 않는다”며 “수 년 전부터 제기되어 온 내과학회와 분과학회 문제는 요원히 풀 수 없는 평행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내과학회 존재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내과학회는 사라질 수 없는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내과학회의 의미를 내과라는 진료적 개념에서 접근해 학문적 세분화와 달리하는 시각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내과의 사전적 개념은 ‘내장의 여러 기관에 생긴 질병을 외과적 수술을 하지 않고 약이나 물리적 요법에 의해 치료하는 것’으로 진료분야 중 가장 광범위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의사의 종합적인 판단력이 요구된다.
선진국 ‘통합내과’ 트랙 적용...환자 만족도 제고
일례로, 신부전증으로 입원한 환자가 고혈압과 협심증을 동반하고 간과 뇌 등도 문제가 있어 분과전문의와 해당 진료과에 검사를 의뢰해 상반된 치료결과가 나왔다면 주치의인 신장내과 전문의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지력을 지녔는가라는 것이다.
이같은 물음에 유수 대학병원 교수들도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한 시니어 교수는 “내과 영역을 통칭하는 의사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자문하거나 타 교수들에게 물으면 솔직히 확실한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하고 “학문적으로 영역을 세분화시켜 나가는 현 상황은 당연한 결과이나 이를 진료까지 접목시켜 나가는 것을 의사와 환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된다”며 분과전문의제도의 명암을 토로했다.
선진국은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왔을까.
분과전문의를 우선적으로 도입한 미국의 경우, 10여년 전 한국의 현 모습과 동일한 상황에서 내과학 교수진의 트랙을 정하는 대학병원의 개선책이 제시돼 문제점을 희석시켰다는 것.
내과학 교수가 6000여명이 넘는 하버드의대 등 주요대학 병원들은 각 분과별 진료파트와 함께 이를 총괄할 수 있는 교수를 구분해 환자의 진료서비스와 만족도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일부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동경대병원을 비롯한 유수병원에서 ‘통합내과’를 신설해 분과와 다른 별개 형태로 내과분야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이같은 모습은 학술로 탄생해 모든 권한을 행사중인 분과학회를 ‘학술’이라는 원점으로 복귀시키고 내과학회는 학술을 제외한 ‘교육과 진료’로 전환시킨다는 모자 학회간 역할 분담론도 담고 있다.
타과 분과학회 가속화...내과 회생 시급
하지만 내과의 통합진료 운영을 전제로 한 한국형 모델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한 대학병원에 수 백에서 수 천명에 이르는 내과 교수가 있다면 이를 나눠 학문적 연구와 치료를 위한 교수제도를 시행할 수 있으나, 많아야 80~100명에 머무는 국내 대학병원의 실정에서는 '이상'일 뿐이라는 것.
일각에서는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 대학병원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해 소기의 성과를 이룬다면 한국형 모델을 정립하는데 새로운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더욱이 내과학 외에도 외과, 소아과 등도 분과전문의제도 시행을 위한 학회 운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차 속빈 강정으로 변해가는 내과학을 시급히 회생시켜 의학계의 모범적인 학회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내과학회 김준명 총무이사(세브란스병원)는 “내과학회가 9개 분과, 12개 산하학회를 지니고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인원과 실질적인 움직임은 위축되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분과학회보다 개원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심포지엄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개원가나 타 학회 등과의 불협화음 제거에 매진해온 내과학회는 현재, 역할보다 위상 재정립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지금부터 내과 의사와 국민을 위한 단체로 탈바꿈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