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의사보면 '격세지감'.."초심 잃지 말고 노력하길"
|특별기획|=전국 의대 수석졸업자에게 물었다A대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최근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려다 평소 성실하게 수련에 임한 전공의를 병동 복도에서 마주쳤다.
졸업시즌이다. 6년간 교육과정을 마친 의대 졸업생들이 새내기 의사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인턴으로, 개원의로, 타 직종으로 진출할 이들은 자신의 미래와 의료계 현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메디칼타임즈>는 수석졸업자들의 꿈과 견해를 묻고, 선배의사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일면을 들여다 보고, 의료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해봤다.<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상>인기과 선호, 전문직 걸맞는 대우 기대
<중>존경받는 의사, 전공의 수련 당당하게
<하>선배의사들 격세지감 ‘같은 듯, 다른 듯’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는 전공의가 안스러웠던 그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을 던졌다가 험한 일(?)을 당했다.
'우리가 수련 받을 땐 지도교수가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망설일 정도로 수직적인 관계가 강했지. 그런데 그 전공의는 약속이 있다며 머뭇거리지 않고 지나가더라고. 황당하기도 하고 민망했던 적이 있지"
오래전 전공의 과정을 밟았던 한 원로도 요즈음 새내기들을 보며 달라진 세태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바로 윗 선배가 과장 선생님보다 무서웠어. 제일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니까. 윗 선배 눈에 잘못 보이면 그날로 당직실 퇴출이었지. 그때만 해도 무릎꿇고 빌어서라도 일을 배우려는 시대였어. 요즈음에는 서로 그냥 둬 버리지 뭐…"
의대를 졸업한지 많게는 40년이 지난 선배 의사들의 눈에 비친 신세대 의사들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특히 최근 <메디칼타임즈>가 의대 수석졸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접한 나이 지긋한 선배 의사들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의사불신 책임통감 "미안하고 안타깝다"
선배 의사들은 무엇보다 새내기 의사 대부분이 '의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고 답한 것에 대해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로 의대를 졸업한지 꼭 40년이 된 산부인과의사회 최영렬 회장. 그는 "과거 의사와 환자간 굳건했던 신뢰관계를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지 못한 점이 가장 안타깝다"며 "선배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40년전 졸업식의 설레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1967년 졸업 당시만 해도 의사는 사회적으로 존경과 감사, 신뢰의 대상이었다"면서 "이제 환자들을 직접 만난다는 기쁨과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으로 의사의 첫 발을 내딛었었다"고 회상했다.
실제 진료현장의 분위기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예전에는 환자들이 의사를 전적으로 믿고 따랐기 때문에 무한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며 "지금은 의사에 대한 신뢰가 많이 추락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1979년 의대를 졸업한 안과개원의협의회 나현 총무이사 역시 과거와 현재의 의사상에 대해 묻자 "격세지감"이란 말부터 던졌다.
의사, 병원에 대한 불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환자가 의사의 수술경험, 능력 등을 평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
나 이사는 "의료공급자의 급속한 증가, 정책 및 국민인식 변화 등으로 의료인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며 "근래 들어서는 정부, 언론, 시민단체로부터 끊임없이 견제와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공의·교수 선호 '세대공감'-전공과목 선택 '세대차'
예나 지금이나 의대 졸업후 전공의 과정을 거쳐 교수로 남고 싶어하는 꿈은 비슷했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환경에 대한 인식차이는 확연하다. 선배 의사들이 '인내형'이었다면 새내기 의사들은 '개선 요구형'이라 칭할만하다.
메디칼타임즈가 올해 의대 수석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공의노조에 대해 80% 이상이 찬성했고, 70% 이상이 노조 가입의사를 피력했다.
그만큼 수련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B대학병원 교수는 "그냥 참자 참자 하는 것은 그야말로 옛날 방식"이라면서 "전공의노조에 찬성하는 것만 보더라도 후배들의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배들의 요구에 선배들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며 "특히 수련환경 개선 부분은 수년전부터 계속적으로 거론되어온 것인 만큼 확실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못박았다.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김성훈 수련교육부장도 "수련환경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열악한 게 사실"이라며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 개선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아울러 새내기 의사들의 전공과목 선호경향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게 선배의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과거 선배의사들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과목을 선호했다면, 이젠 내과나 안과·피부과 등 비급여 진료과가 인기과로 자리를 굳혀가는 추세.
이에 대해 선배의사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영렬 회장은 "과거에는 외과나 산부인과를 가장 선호했고, 병원마다 환자들이 넘쳐났는데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보험과와 비보험과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보험과 쏠림현상은 의료시장 측면에서 볼 때 막을 수 없는 흐름이지만, 필수과목 기피현상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선·후배의사들이 함께 뜻을 모아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할 때"라고 덧붙였다.
"권위의식은 구시대 전유물...스스로 권리 찾아야"
선배의사들은 시대가 아무리 달라졌다 하더라도 의사라면 당연히 갖춰야할 덕목과 소양을 게을리해선 안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현 이사는 "새내기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책임, 사명감을 잊지 말고, 국민과 의료계간 불신해소에 앞장서 달라"고 주문했다.
최영렬 회장은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 비판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맞서되 환자들을 대할 때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사의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었다.
성균관의대 어환 학장은 "권리는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훗날 반드시 원하던 길, 원하는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