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 고비 넘어 성공 신화 "치료성적으로 말하겠다"
|특별기획| 진료 페러다임 변화와 걸림돌서울아산병원 암센터가 통합진료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의약분업 이후 의료기관들은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친절경영, 원스톱진료 등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환자들은 ‘3시간 대기, 3분 진료’로 고통받고 있으며 병원에 대한 불신도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진료분야가 점점 세분화되면서 의사도, 환자도 고립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새로운 대안진료가 무엇인지 집중취재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3세대 환자 중심의 진료 상륙
<중>의료의 질 발목잡는 건강보험
<하>불가능 딛고 세계 최고를 향해
이정신 진료부원장은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암센터 건물을 짓고, 병상을 늘리고, 수술을 많이 하는 게 아니다. 길게는 10년 후 미국을 능가하는 치료성적을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치료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해야 하는데 통합진료가 해법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소신이다.
서울아산병원 통합진료의 뿌리는 1989년 개원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폐암을 치료하는 호흡기내과와 종양내과, 흉부외과는 주2회 컨퍼런스를 정례화했다. 그러다가 교수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 3개과가 다 같이 외래진료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환자들이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여러 날에 걸쳐 내원하는데 따른 불편을 해소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의료진들은 진료과간 벽을 허물고 신뢰를 쌓아갔으며, 결국 일을 냈다.
다급한 암환자들이 굳이 3개과를 왔다 갔다 하게 하지 말고 한꺼번에 외래진료를 해서 앞으로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답을 주면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고, 교수들이 의기투합하면서 통합진료의 싹을 틔웠다.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가 참여하는 식도암팀도 1993년부터 이런 과정을 거쳐 통합진료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2005년 경 통합진료를 공론화했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임상교수는 외래진료 뿐만 아니라 수술도 해야 하고, 연구, 교육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3~5명이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모이기가 힘들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1인 단독진료에 익숙하고, 엄연히 진료과와 진료영역이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통합진료를 하라는 것은 이런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통합진료에 대한 거부 반응은 일부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2005년 강남성모병원 가톨릭암센터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의료원의 암센터 소장들을 초청, 향후 암센터 운영방향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당시 모 대학병원 암센터 소장은 장기별 통합진료를 도입하고 싶지만 의료진들의 거부감이 만만치 않아 쉽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각 장기별로 통합진료를 하려고 했더니 교수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면서 “서먹서먹한 분위기부터 바꾸자는 뜻에서 의료진들에게 팀별 술자리를 마련하라고 했더니 술은 가끔 마시는데 통합진료는 안되더라”고 털어놨다.
결국 이 대학병원은 지금도 통합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상당수 대형병원들이 통합진료를 구상했지만 시행할 엄두조차 못내는 것은 그만큼 과별 단독진료의 벽을 허물기가 쉽지 않고, 이를 받아들일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일부 반발이 일자 서울아산병원은 2006년 자율적인 통합진료 시범사업에 들어가기로 했고, 폐암, 대장암 등 5개 통합진료팀이 꾸려졌다.
시행 초기 불협화음도 적지 않았다.
여러 과 교수들이 모이다보니 치료방침을 정하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했고, 심지어 통합진료실을 박차고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여기에다 어렵게 시간을 내 통합진료를 해도 1명의 진찰료만 인정되는 등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치료성적으로 인정받을 것"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수들은 상대방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코디네이터들이 원활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잘해 나가자 통합진료는 제자리를 잡아나갔다.
박승일(흉부외과) 교수는 “통합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내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통합진료를 할 수가 없고, 상대방의 의견과 치료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의료환경에서 통합진료는 불가능해”라는 생각이 “어 되네”로 바뀌자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진료지원과로 일컬어지는 영상의학과 교수들까지 통합진료팀에 합류해 진단이 정확하게 내려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김종훈(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통합진료는 환자들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지만 의사도 같이 치료하면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 위험도 덜 수 있고 편하다”면서 “국내에서 우리만큼 팀 진료가 잘 되는 곳도 없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5개로 시작한 통합진료팀은 현재 대장암 5개팀, 폐암 2개팀, 비뇨기암 2개팀으로 각각 늘어났고, 식도암팀, 유방암팀, GIST팀도 자리를 잡았다.
통합진료는 R&D로 이어졌다. 정기적으로 치료결과를 스크린하면서 잘못된 방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공동 데이트베이스를 구축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도 통합진료에서 형성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암환자들이 통합진료에 감사를 표하고, 무한 신뢰를 보내 준 것은 의사, 코디네이터, 행정팀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었다.
암센터 통합진료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정신 진료부원장은 “병원 구성원들이 열정을 갖고 무언가 이루고, 새롭게 개척하자는 정신이 통합진료를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암센터는 앞으로 폐암팀과 식도암팀을 한 팀 더 늘리고, 내년 서관 리모델링이 끝나면 두경부암팀과 부인암팀이 통합진료에 합류하는 등 팀진료를 보다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정신 부원장은 “통합진료는 집행부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게 절대 아니다"면서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검사부서, 코디네이터, 간호부, 의료기사, 행정부서 등이 모두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우리가 가진 것은 세계 최고의 암센터를 만들자는 열정”이라면서 “이를 위해 통합진료를 선택했고 5년, 10년 후 치료성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