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의 눈에 비친 의사회

이충한
발행날짜: 2009-03-02 11:49:43
  • 이충한 고신의대 외과학 교수

2000년 9월의 어느날

2000년 9월 쌀쌀한 가을바람이 머릿결에 스치던 날, 의과대학 외과교수인 나는 쉰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삭발을 감행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정부의 준비 안 된 의약분업 시행에 맞서 전 의료계가 총궐기를 하고 있던 상황으로 의료계의 항쟁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의과대학교수들은 의료계의 항쟁에 대해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교수들도 동료의사들의 항쟁에 동참하도록 하기위해 제자들이 꿇어 앉아 눈물을 흘리는 앞에서 자발적으로 삭발과 무기한 단식 농성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가 그렇게 반대하였던 준비 안 된 의약분업은 정부의 원안대로 정착되었고 정부와 맞섰던 의사들은 정부의 보복성 탄압에 짓눌려서 의료계는 오히려 위축되고 끌려가면서 의사들은 나날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면에 의사회는 10년 전 반짝 투쟁이후 아무런 성과 없이 과거의 무능과 비효율적인 모습으로 되돌아 가버려 삭발과 단식까지 감행하였던 의대교수인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의사단체를 이렇게 무능한 조직으로 되돌리고 말았는가?

10년간 투쟁했다는 의사회 조직의 허상

의사 조직의 낮은 사회성과 낮은 정책능력, 그리고 조직적이지 못한 지도자의 무능이 우리가 총체적인 난국에 처한 근본적인 이유이다. 무능한 단체는 회원들의 관심을 절대 모을 수 없다. 현재 의사회를 바라보고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가지고 있는 회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조건 따라오라고 한다고 따라오는 것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투쟁만 외친다고 회원들이 투쟁에 동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10년이나 대정부 투쟁을 해왔다고 말하지만 내막을 보면 투쟁의 기본인 조직력이나 정책능력은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개원의사 중심의 의사회 조직이 의대교수나 병원의사 그리고 전공의들의 동참을 불러내지 못하고 공감대조차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같은 동료의사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이론무장과 조직력으로 어떻게 일반시민들을 설득하며 대정부 투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날아가는 사회 속에 기어가는 의사회

사회는 갈수록 점점 더 전문화 되고 있으며 집단화 되고 또한 세력화 되어 가고 있다. 우리 의사 조직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정권이 우파성향으로 바뀌어도 의료계에게 유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정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늘어가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이 집권하건 핵심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와 국민 의료수혜 확대이다. 즉, 지출은 줄이고 의료혜택은 무한대로 늘이고 싶은 것이 정부인데, 그것은 정권이 좌파성향이건 우파성향이건 관계없이 모든 정권의 숙원이다. 그리고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는 의료비억제라는 명제를 안고 있어 수가 현실화를 바라는 우리 의료계를 위한 정권은 영원히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좌파정권이 물러나고 들어선 실용정부에서조차 2045년까지 고령화가 지속되어 의료비 지출이 지금보다 13배 이상 늘어난다고 하는 고민에 봉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의료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병의원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도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어 법인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 병원의 입원실과 업무가 중복되는 의원급 입원실도 의료비 부담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되어 의원에서는 입원실을 전면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사회주의적인 의료정책들이 실용정부에서 조차 거론되는 이유는 건강보험재정 안정화와 동시에 의료수혜 확대라는 명재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의료수가를 잡아야 하고 의료를 사회주의적 제도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사의 진료권 수호라는 주장을 하지만 진료권이 정부의 기도에 의하여 만신창이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의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건강보험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 되어버렸다. 이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전문화, 집단화, 세력화 되어 날아가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우파정권의 친 의료계 정책이 나오기를 학수고대만 하고 있을 것인지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1) 지도자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의사단체는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180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 지도자가 변해야하고, 조직이 달라져야 하며, 급하게 달려오느라 미처 갖추지 못했던 필수적인 조직력과 정책능력을 지금부터라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는 회원들보다 한발 먼저 미리 생각하고 움직여서 회원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회원들을 동원하는 투쟁은 피치 못할 상황에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조직력과 정책적으로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응해야 한다. 지도자는 또한 미래를 멀리 내다 봐야 한다. 얄팍한 술수보다 10년이나 20년 뒤에 우리에게 닥칠 또 다른 위기와 기회를 미리 읽으려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 의료시장 개방과 영리법인 허용 문제 그리고 단일 건강보험제도의 붕괴 이후 닥칠 엄청난 변화에 대해 보다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내다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도자는 개인적인 야망과 목적을 성취하는데 우선하기 보다는 전체 회원의 열망과 희망을 실현하는 것에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온전하게 보존하면서 이름만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재 의사회의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의대교수가 만약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 강의실과 연구실을 과감하게 벋어나야 하고 개원의가 지도자가 되려면 병원 운영을 잊고 자신을 의사회에 완전히 던져야 한다. 감투에 눈이 먼 지도자는 반대로 회원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성취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2) 지도자는 회원들에게 확실한 방향을 제시할줄 알아야 한다.

지도자는 회원들에게 언제나 왜(Why)? 라는 의문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는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회원들을 이끌어야 한다. 회원들이 왜(Why)? 라는 명제에 대해 공감하면 지도자가 무엇(What)?을 언제(When)?, 어떻게(How)?, 할 것인지 결정하면 바로 조직력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만약 지도자가 피치 못해 투쟁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전에 회원들에게 왜(Why)?라는 명제에 대한 공감대를 부지런히 형성한 조직과 전혀 공감대를 만들지 못한 조직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3) 정부의 의료정책 변화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① 상설 수가대책위원회

의사회가 정부의 의료제도 결정 과정에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의료정책 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후문방격의 뒷북치기 대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수가문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의사회가 모두 “수가대책위원회”를 상설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1년 동안 쉼 없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대비하여 가을 수가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수확을 얻어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료수가 문제는 의사회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해마다 정해진 날짜에 수가계약을 하건만 의사회는 매년 건강보험공단의 수에 당하였고 의사들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매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나는 이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② 의료정책연구 장학제도

의사회 차원으로 특수목적의 장학제도가 필요하다. 이 장학금은 의료정책을 연구한 사람이 해당분야의 일을 종사할 때 지원하는 방식으로 규정하여 정부의 의료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정책전문 우군을 많이 양산해야 한다. 의사회가 미래를 위한 투자로 장학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활동하는 의료정책 전문가들에 대한 의사회 차원의 교류와 지원책도 필요하다.
의료정책 연구소, 의학회, 대학의 의료정책을 연구과정 등을 매개로 많은 학자와 관료들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가 의료정책전문가들과 소원하였던 것은 우리의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였던 탓이다.

③ 의대정원 감축

인구증가율은 뒷걸음을 치는데 40개가 넘는 의과대학에서 연간 3천명이 훨씬 넘는 의사들을 배출하니 의사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대의 교육인력과 시설이 부족하여 많은 대학에서 파행적인 커리큘럼을 운용하는 상황에 여러 대학에서 의대설립을 원하고 있고 금년 초에 또 다시 6개 대학이 의과대학을 신설하겠다고 공표하고 나섰다. 만약 의과대학이 수급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이해관계에 엮여서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하게 되면 의사들의 미래는 거의 절망적이다.
의사회는 의대난립이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대신설의 문제는 의대를 신설하여 의사수를 늘이기보다 기존 의과대학의 교육에 내실을 기하여 의사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쪽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의학전문대학원제도로 전환하면서 의대정원이 10%씩 감소하게 되는데 이런 효과도 신설 의과대학 한군데만 설립되면 의대정원 감축이 무용지물이 된다.


④ 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

의사회는 고령화 사회에 적합한 의료방향이 무엇인지 연구하여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는 필연적으로 건강보험재정과 의료수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사회 사무국을 전문화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 변화로 인해 쏟아지는 회원들의 요구에 적절하게 부응해야 한다. 외형적인 회의와 모임을 지양하고 내실 있는 조직을 구축하여 회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⑤ 불법의료행위 근절 대책

의사보조 인력들이 독립적으로 의료행위를 하려는 시도들을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한방에서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불법의료행위는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의사보조 인력의 의료행위나 불법의료행위들은 국민들의 편의성과 낮은 수가운용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추진되고 있는데 그런 정책변화의 전면에는 정치인이나 의료정책 전문가들이 포진되어 의사보조단체를 돕고 있다. 그런 정치적인 구도에서 의사들이 효율적으로 막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우리들이 그들과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전문성”이다. 누가 의사보다 의료행위를 더 잘 알 것이며 누가 의사보다 의료기기를 잘 다룰 것인가? 정부가 의료보조 인력들에게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열어 주었다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에 대해 의대교수 등 학자들이 나사서 정부에 경고하고 시민단체에 설득하여 막아야한다. 국민건강을 배제한 채 정치적인 그리고 조직적인 로비에 의하여 추진되는 시책들이 국민건강에 큰 위해가 된다는 점을 학술적으로 전문성을 앞세워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동안 개원가에서 바쁜 일손 때문에 할 수 없이 의사의 지도하에 한 가지 두 가지 의사보조 인력들에게 일을 맡긴 것이 오늘날 보조인력들이 독립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단초가 되었다는 점은 의사회가 나서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다.

회원의 권익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참 지도자가 필요하다

의사회원 출신으로 과거 국회의원을 지내셨던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의사들과 가까이 하면 지역주민들의 표가 날아간다. 그래서 나는 의료관련 입법안에는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엄연한 우리나라 정치의 현실이다. 표가 깎이더라도 의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의사출신 국회의원이 단 한명이라도 나온다면 회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작금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의사권익을 보호하는 정치인이 과연 나올 수 있는가? 의구심을 회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의사회원들로부터 표를 구하려 온갖 노력을 다하겠지만 국회의원이 되고나면 의사들과 가까이 할 수조차 없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를 하려면 정당으로 가야하고 봉사활동을 하려면 봉사단체로 가야한다. 물론 의사회 지도자는 회원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정치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고 봉사활동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주객이 전도되어 개인의 정치적 목적이나 봉사활동을 위해 의사회와 의사회원의 권익을 이용하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것은 의사들의 미래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사회 지도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의사회원과 의사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하고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의사회를 이끌게 되면 개원의, 교수, 병원의사, 전공의, 공직의 할 것 없이 전 직역의 회원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여들게 되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다보면 서로를 신뢰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지도자만이 무너져버린 의사들의 자존심을 세우고 일어버린 우리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

지도자가 어떤 직역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도자가 본질적으로 어떤 능력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현재 의사들이 처한 열약한 환경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지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개원의, 대학교수, 병원의사, 전공의 등 여러 직역을 모두 아울러 조직력을 갖출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라도 직접 행하는 실천이다. 개인적인 영달을 노리는 지도자는 말부터 먼저 떠벌여 놓고 일이 성사도 되기 전에 뭔가 큰일을 한 듯이 부풀리며 과장하여 회원들을 현혹한다. 반면에 진심으로 회원을 위하는 지도자는 말보다 몇 십 배 힘든 실천을 통해 회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얻으려 노력할 것이다. 건전한 조직에서는 개인적인 영달이나 소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오염된 인물이 지도자가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부정으로 오염된 조직은 가끔 절대로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10년 전 쉰 살의 나이로 삭발하고 무기한 단식까지 하였던 교수가 애정과 걱정과 회한의 눈으로 의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부디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지금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이 되어 회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의사들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해주었으면 하고 의사회원의 한사람으로 간절하게 기원해 본다.

*이 칼럼은 메디칼타임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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