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진료 강요말라" "잘못된 처방 환수 당연"

고신정
발행날짜: 2009-04-29 06:50:41
  • 의-정, 과잉처방 해석 달라…소모적 논쟁 탈피해야

|긴급진단=원외처방약제비 환수|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가 과잉원외처방약제비 환수법안 상임위 의결을 6월 이후로 연기하면서 정부와 의료계간 극단적인 갈등을 잠시 피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법안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원외처방약제비 환수의 근거가 되는 요양급여기준이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긴급점검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제도개선 찔끔찔끔, 속타는 의료기관
(하)급여인정 '바늘구멍'…정부 의지 의문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은 (국민건강보험법) 제39조제2항 및 제3항에 따른 약제지급의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사항에 대하여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고 진료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요양급여 또는 제39조제3항에 따른 비급여로 할 수 있다."

23일 법안소위에서 의결된 건보법 개정안에 신규로 포함된 규정이다. 의미를 요약하자면 급여기준을 넘어선 경우라도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약제비 환수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는 현행 급여기준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나, 이 조문만으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물론 의학적 타당성에 의거해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체계가 현재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정부의 말대로 원외처방약제비의 환수가 무조건적으로 의사의 처방권을 제한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급여기준에 의거한 '규격진료'를 강요한다는 의사들의 반론이 더 큰 힘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일방적 삭감으로 규격진료 강요 vs 이유있는 심사

현재 이른바 '과잉처방전'을 바라보는 의료계와 정부의 시각차는 극명하다.

한쪽은 최선의 의학적 판단에 의한 것이므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과잉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 다른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잉처방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맞서고 있는 것.

현 체계에서 의료기관에서 나온 처방전은 일차적으로 심평원의 심사를 통해 걸러진다. 심평원 이 과정에서 부적정처방여부를 일단 점검하게 되고, 사례에 따라서는 진료심사평가위원회에서 의학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의료계는 이 부분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급여기준이라는 잣대로 무차별적인 삭감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사례별 심사의 경우에도 마치 상당한 예외를 인정해주고 있는 것 같지만 전산심사가 확대되면서 규격화된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결국 이의신청을 내야 꼼꼼히 봐준다는 얘기인데, 병원에서 모든 사례에 대해 이의제기할 여력이 있겠느냐"면서 "환자사례별로 논문, 학회의견을 모아 일일이 이의제기를 하느니, 그냥 포기하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심평원측은 간과할 수 없는 과잉처방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 경우 적정진료-적정비용의 실현을 위해 비용을 조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심사실 관계자는 "8가지 상병에 16가지 의약품을 동시처방한 사례가 있는가하면 같은 날 같은 병원 내과에서 30일치 약을, 또 다른과에서 60일치 약을 동시에 처방받은 경우도 있다"면서 "이 같은 경우는 누가봐도 처방을 잘못 낸 것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이 상식적으로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과잉처방이라는 것이 실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과잉진료의 차원은 별도의 문제로 보더라도 적정진료-적정비용의 원칙에서 잘못된 처방에 대해서는 심사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급여인정 '바늘구멍'" vs "의지만 있다면 바꿀 수 있다"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차는 현 급여기준 개선체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급여기준개선 TF의 성과에 대해서도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심평원이 운영 중인 급여기준 개선 창구는 △급여기준 신문고 △학회 등을 통한 급여기준 개선건의 △약제 등 임의비급여 양성화 제도 등 크게 3가지.

심평원은 이들 채널을 통해 1년에 200여건 가량의 급여기준 개선건의를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계는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병협 관계자는 "의학적 타당성을 진정받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내놔도 퇴짜맞기 일쑤"라면서 "더욱이 처리기간도 너무 길어 기다리다 환자들 숨넘어갈 판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이번 복지부 급여기준TF에서도 병원협회가 제안한 71개 과제 중 단 4건만이 급여, 비급여 인정을 받았다"면서 "너무 낡고 현실감이 떨어져 안 바꾸고는 못배길 것들만 몇 가지 건드리고서는, 그것이 무슨 합리적인 개선이냐"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는 심평원에서도 할말이 많다. 심평원 약제급여기준부 관계자는 "원외처방 소송관련 자료를 보면 대부분이 동일효능 중복투여나 금기투여에 해당된다"면서 "전적으로 불합리한 기준 때문에 과잉처방이 일어난다는 것은 억지논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과잉원외처방의 경우 항생제 등 일반화된 약들이 대부분으로, 급여기준 자체도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수준"이라면서 덧붙였다.

급여기준 TF와 관련해서도 방향성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복지부 급여기준TF의 경우 일단 불인정으로 묶여있던 것을 개선, 의학적 판단에 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준다는데 의미가 있었다"면서 "협회에서 제안된 개선안들은 급여확대쪽의 제안이 많았고, 이에 보험재정과 연계해 추후 면밀히 검토하자는 측면에서 보류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급여기준 합리화 우선" vs "약제비 환수법 필수적"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론도 제각각이다.

의료계는 급여기준을 합리화한 뒤 과잉처방 환수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 반대로 정부측은 급증하는 약제비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제한으로 환수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양측은 법안심의 내내 이 같은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팽팽히 맞섰고, 법안심의가 일단락된 현재에도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상황이다. 환수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만만찮은 진통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를 기회로 삼아, 양측이 발전적인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사-삭감, 급여기준 개선의 문제는 동 법안의 의결여부를 떠나 복지부와 의료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므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논의의 틀을 짤 필요가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면을 보자면 한정된 재원을 가진 정부로서는 지출증가로 이어지는 급여기준 개선을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것이고, 의료계로서는 파이를 늘릴 수 있는 급여권 확대를 요구하는 모양새"라면서 "양측이 국민들을 설득해 건강보험의 규모를 키운다면 급여기준 현실화-보장성 확대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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