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많이 써준다는데 뭉치돈·골프접대가 문제냐"

고신정
발행날짜: 2009-05-27 06:50:06
  • '시사기획 쌈', 제약사-병·의원 리베이트 행태 고발

#i1#"친한 의사들끼리 술먹으러 가면 세미나식으로 해서 회식비와 술값을 대준다. 원장님,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은 다해준다고 보면 된다. 골프접대? 약 많이 써준다면 골프접대가 문제겠나"

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이 병·의원과 제약사간 리베이트 제공행태를 고발하고 나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KBS '시사기획 쌈'은 26일 밤 '접대, 그 은밀한 거래' 편을 방영했다.

제작진은 이날 방송에서 제약업계와 병의원간 리베이트 및 접대 실태를 제보자들로부터 입수한 자료와 접대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했다.

실제 방송에서 한 중견 제약사 영업사원이었다는 한 제보자는 술자리를 통해 의사들과 친분을 쌓은 뒤 본격적인 '리베이트 비율(%)'을 논의, 금품제공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라고 고발했다.

그는 "접대로 신뢰를 쌓으면 본격적으로 리베이트 비율에 대한 얘기를 한다. 세번, 네번 정도 찾아가면 '너희는 몇 %를 주냐'고 대놓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약을) 이정도 쓰면 (리베이트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얼마정도 된다는 것을 수치로 적어준다. 보통 (약값의) 20%, 25%, 30%, 많게는 40%, 50% 정도가 제공된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영업사원은 "세미나 빙자한 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진다"면서 "개중에 양심있는 의사들의 경우 돈에 상관없이 영업사원의 성실함 등을 보고 약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 그런 경우는 5%도 안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중견제약사, 병·의원 1700곳에 월 3억원 수준 리베이트 제공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한 제약사의 이른바 '리베이트 내부문건'이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이에 따르면 이 제약사는 전국 1700곳의 병원, 의사들에게 약을 쓰는 조건으로 약 납품가격의 20~50% 리베이트로 제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각 병원별로 처방한 약 종류 및 내용, 월별로 제공한 리베이트 금액이 엑셀파일로 A4 수백페이지 분량에 달했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

리베이트는 약을 쓰기 전 미리 만원권 돈뭉치로 병원들에 전달되고 있었으며 실제 한 병원의 경우 1년동안 3600만원을 처방하는 조건으로 약값의 30%인 1080만원을 현금으로 선지급 받은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리베이트로 제공된 금액은 매달 3억원 정도로, 문건에 따르면 매달 2000만원이 넘는 돈을 리베이트로 받아간 곳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명단에 있는 병원들도 제약사의 지원을 받는 것이 관행이라는 점을 시인했다.

한 병원장은 "사례비나 운영비조로 영업이익을 쪼개주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줬는데…그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공보의도 리베이트 수수…공정위 조사도 소용없어

또 방송에서는 대형병원의 키닥터나 개원의들 뿐 아니라 지역 보건소의 공중보건의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리베이트가 제공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내부문건에서 지역보건소에도 리베이트를 제공한 기록이 포착된 것.

한 지역 공보의는 "약값의 20%를 전후로 해 현금 또는 상품권을 제공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받는 분들은, (리베이트를) 안받으면 영업사원 호주머니로 들어갈 돈이라면서 돈을 받아도 크게 양심의 가책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방송은 한 제약 영업사원의 말을 인용해, 제약업계의 자정결의대회와 공정위 수사 이후에도 리베이트 접대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직원은 "개선된 점은 없다"면서 "공정위에서 거론되고 있으니 회사에서 이번달에 (지급 될)부분을 다음달 혹은 그 다음달에 집행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제작진은 "리베이트 비용은 결국 약값에 반영돼 소비자 피해로 귀결된다"면서 기업들이 윤리성 제고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말로 방송을 마무리했다.

의료계 "고시가제 전환 등 제도개선이 우선…고발만이 능사 아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시시때때로 터져나오는 리베이트 보도, 또 그때마다 재현되고 있는 일방적인 매도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해법을 제시해왔음에도 정부가 뒷짐을 지고 앉아, 언론의 매타작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

의사협회 좌훈정 공보이사는 "정부나 언론에서는 마치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부도덕한 것처럼 몰고 가고 있는데, 사실상 복지부가 리베이트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복지부가 제약사간 자율경쟁을 제한하는 실거래가 상환제를 고집,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는 것.

실제 실거래가 상환제는 의약품 실거래가를 신고한대로 상환해주는 방식으로, 병원이 약을 싸게 사도 그에 따른 이득을 얻을 수 없는 구조다. 때문에 제약사들은 일종의 가격경쟁 수단으로서 약값을 상한액 이하로 납품하고 그 차액을 리베이트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고시가제 전환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 의료계는 고시가제 전환시 제약사간 가격경쟁으로 약제비도 절감되고 리베이트도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좌 이사는 "정부 또한 실거래가 상환제를 포기하는 것만이 리베이트를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제약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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