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 병원 약점 잡아 '규격진료 각서' 요구

안창욱
발행날짜: 2009-07-04 06:50:55
  • 입원 억제, 진료비 최소화 압력…"횡포 갈수록 기승"

“교통사고환자가 내원하면 가급적 입원을 억제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겠다.”

손해보험사들이 교통사고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에 대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진료할 것을 요구하는 행태가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의 A의료기관 원장은 3일 메디칼타임즈에 모보험사가 서명을 요구한 ‘실무이행각서’를 FAX로 보내왔다.

실무이행각서에 따르면 갑(의료기관)은 을(손보사) 보험 가입자의 평균입원율(54%) 수준을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교통사고 환자 2명 중 1명은 입원시키지 말고 통원치료를 하라는 것이다.

또 의료기관이 특수방사선촬영을 할 때에는 손보사로부터 사고차량의 견적을 확인하고, 환자의 자각적, 타각적 증상을 면밀하게 검토해 소견서를 발급한 후 치료 목적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하라고 주문했다.

입원환자가 외출한 것을 적발하면 당일 입원치료비 전액을 삭감하고, 적발 다음날 퇴원 시키라는 대목도 있다.

타 의료기관으로부터 초진진료 기간이 만료한 환자가 내원할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재입원을 억제하라는 조항도 있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은 환자 1인당 합의금이 최소화되도록 노력을 경주하고, 치료 목적이 아닌 합의금을 이유로 분쟁을 일삼거나 민원을 유발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할 것도 명시했다.

이런 환자가 있으면 의료기관이 알아서 퇴원시키라는 압력이다.

손보사는 의료기관이 이들 실무이행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합당한 조치를 받아야 한다는 경고도 담았다.

교통사고환자가 입원하면 손보사가 가급적 합의금을 적게 줄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 협조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의료기관 원장은 “왜 병원이 보험사를 위해 합의금이 최소화되도록 협조해야 하느냐”면서 “이런 요구는 명백히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손보사들은 교통사고환자가 입원 중 외출 하거나, 진료확인서가 사실과 다르거나, 환자를 구급차로 이송하면서 간호사가 동승하지 않는 등 병원에 불리한 증거를 축적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3년치 진료비의 10~30%를 반환할 것을 요구한다는 게 제보자의 설명이다.

그는 “손보사들은 SIU(보험사기방지센터) 직원으로 하여금 수시로 병원을 감시하고, 병원에 불리한 증거자료가 3년치 쌓이면 허위청구를 했다면서 자사 보험사에서 나간 진료비의 30%를 내 놓으라고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사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간호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몰래 외출하면 어쩔 수 없고, 새벽 시간 구급차를 보내는데 어떻게 간호사를 동승시키느냐”면서 “손보사들은 병원의 이런 약점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손보사들은 허위청구 자료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진료비 반환을 거부하면 고발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러니까 병원들은 겁을 먹고 대충 합의를 하게 마련”이라면서 “합의를 보면서 이런 실무이행각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8년간 의료기관을 운영하면서 수 차례 이런 식으로 진료비 일부를 반납하고 각서에 서명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몇 년간 교통사고환자를 진료해 본 정형외과나 외과, 신경외과 치고 이런 식으로 당해보지 않은 의료기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규격진료를 요구하고, 털어서 먼지 안나는 병원 없다는 식으로 협박을 일삼는 손보사의 행태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어 의협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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