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강요받는 의국…임상과장 '외줄타기'

안창욱
발행날짜: 2010-02-18 06:50:59
  • 병원 고작 수십만원 지원 "제약사에 손 벌릴 수 밖에"

[긴급진단] 대학병원, 리베이트 근절 가능한가

보건복지부가 최근 의약품 거래 투명화 및 리베이트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제약업계가 비상이 걸렸고, 의료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장 올해 10월부터 의약품을 상한가보다 낮게 구매한 의료기관들은 일정한 인센티브를 부여받지만 리베이트를 수수하다 적발된 의사들은 형사처벌과 함께 면허정지 기간도 확대된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대학병원의 의국 운영 시스템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쥐꼬리만 한 지원, 총대 메는 과장들
(하) 의국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대학병원
지난해 8월 서울의 모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3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마취통증의학과 50주년 행사를 하면서 제약사와 의료기기업체로부터 3500만원 어치의 찬조물품, 현금을 지원받은 혐의가 포착된 것이다.

경찰은 해당 업체와 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대해 압수수색까지 할 정도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이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광주지역 대학병원 교수, 종합병원 전문의 등 10명도 의약품을 처방하는 댓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거나 불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적발된 일부 임상과장들은 의국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몇 십만원 의국비로는 비서 월급도 못준다"

A대학병원 임상과장은 17일 “나는 리베이트를 받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면서 “원한다면 얼마를 받는지, 어디에 사용했는지 떳떳이 공개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 지원하는 의국 운영비라고 해봐야 한 달에 몇 십만원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면서 “그 돈으로는 비서 월급도 줄 수 없다”고 털어놨다.

대부분의 대학병원 의국이 이런 현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무슨 돈으로 논문 쓰고, 전공의들 학회 참석비를 지원하느냐. 병원이 공식 지원하는 의국 운영비로는 전공의 야식비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라면서 “의국 운영을 위해 제약사나 의료기기업체로부터 지원받는 것을 리베이트라고 한다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는 “결국 임상과장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가는 것 아니냐. 총대를 메기로 했으니 열심히 책임을 다할 뿐”이라면서 “선배들도 그랬고, 우리 후배들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수가 체계를 완전히 새롭게 짜고, 대학병원의 이런 구조적 문제를 다 뒤엎지 않는다면 모든 게 미봉책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알아서 운영비 조달해야 하는 대학병원 의국

메디칼타임즈가 일부 대학병원을 조사한 결과 의국 운영비는 몇 십만원에서 많아야 몇 백만원 남짓인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의국비를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대학병원, C대학병원은 해당 과 선택진료 수입 일부를 의국 운영비로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의국은 운영비 범위 안에서 각종 행사, 학술 모임, 잡비, 학회 참석비, 회식비 등을 지출해야 한다. 이들 병원은 의국 비서 월급도 의국에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D대학병원은 교수 1인당 의국 운영비를 책정, 월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의국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E대학병원 임상과장은 “병원에서 지원하는 의국비로는 도저히 의국이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과장이 자비로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약사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례가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F대학병원 외과계 과장은 “병원에서 선택진료비 일부를 의국 운영비로 주는데 돈이 얼마되지 않는다”면서 “병원 지원비로 의국이 운영된다면 교수들이 리베이트로 적발돼 뉴스에 나오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과 차원의 학술행사를 열더라도 병원의 지원이 거의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제약사 등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국의 현실이 이렇다보니 해외학회 참석비까지 지원하는 일부 대학병원들은 이들 임상과장 입장에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대학병원 임상과장들의 아찔한 외줄타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보건복지가족부는 17일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10월부터 정부가 정한 의약품 상한가보다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낮게 구매하면, 그 차액의 70%를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이 상한가가 1000원인 약을 900원에 구매하면 차액 100원 중 70원을 인센티브로 받게 된다. 리베이트를 양성화하겠다는 의미다.

그 대신에 리베이트 받은 의사나 약사에 대해서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면허정지 기간도 2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저수가구조가 음성적 거래 관행화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가 시행되면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지만 의료기관들은 의약품 저가구매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자 대학병원들이 의국 지원비로 적정선으로 현실화하지 않으면 리베이트가 더욱 음성화되고, 불가피하게 처벌 받는 의사들도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만만치 않다.

E대학병원 임상과장은 “정부가 정책을 밀어붙이면 음성적인 후원금이 더 만연할 수도 있다”면서 “의약품 저가구매 인센티브를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겠지만 의국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지원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같은 대학병원 의국 운영 구조는 정부의 저수가정책에 기인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G의대 교수는 “그간 정부는 수가를 현실화하지 않고, 약값이나 비급여로 손실을 보존하도록 용인해 왔고, 그러다보니 대학병원들은 교육과 수련비용 등을 음성적으로 조달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제약사 후원 문제를 병원이나 의사 개인의 문제로 바라볼 게 아니라 적정 수가,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선진국처럼 국가에서 의사 교육비를 지원하는 정책도 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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