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제도·전달체계 개편, 보장성 강화 일방 추진 한계
|건강보험 통합 10년, 의미와 과제|지난 3월 건보공단 정형근 이사장의 '총액계약제 2012년 도입 발언'은 보건의료계를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2000년 건강보험 통합은 한국의료제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기반이 됐으며, 보험료 징수의 형평성을 확대하는 등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메디칼타임즈>는 건강보험 통합 10년의 성과를 되짚어보고, 건강보험이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 <글 싣는 순서>--------
① 건강보험 통합 이후 10년
② 통합 이후 멈춰진 한국의료
③ 한국의료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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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등은 정형근 이사장이 '월권'을 행하고 있다며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맹비난했고 지역의사회들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규탄대열에 동참했다.
건보공단과 의료계의 공방이 잠잠해질 쯤 이번엔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들이 '총액계약제'를 들고 나왔다. 이들은 2012년부터 총액계약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안을 제안하고, 올해 수가협상 과정부터 총액계약제 이슈를 공론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복지부는 이와 별도로 시범사업이 진행중인 신포괄수가제를 공공병원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 논의가 더 이상 수면아래 있기는 힘든 상황이다.
"진료비 지불제도 일방 추진은 어렵다"
의료계가 '총액계약제' 발언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그만큼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의 필요성이 현실화됐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늘어나는 의료비를 조속히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한다면 전체 의료시스템은 크나큰 위기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건강연대 김창보 정책부위원장은 "지금 이대로 간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2009년 30조원에서 2014년 50조, 2020년에는 1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라면서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문제가 된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 방법.
정형근 이사장과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들은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것이고 의료공급자들은 정부가 건강보험 국고 미지원분부터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으론 적정수준의 건강보험료 인상과 의료전달체계의 확립만이 급증하는 진료비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복지부 관계자도 "총액계약제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면서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들"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이 추가로 부담할테니 보장성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이라는 화두도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출범한 '모든 병원비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그 중심이다. 이들은 국민이 1인 평균 '1만 1천원'의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최대 90%까지 확대하자는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실적 한계가 있음에도 이 운동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건강보험료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추가부담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양보한 만큼 정부와 기업도 추가로 지출하라는 것.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를 풀어가자는 주장이다.
하나로 운동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적정화하고, 대신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주장은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도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건강보험은 뚜렷한 저부담-저급여 구조"라면서 "건강보험료를 7% 수준까지 인상해 현행 56-57%의 건보급여율을 70%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향후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합의모델로 건강보험 큰 틀 변화 모색"
결국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이나 보장성 강화 모두 현재로서는 정부, 의료공급자, 시민사회, 국민의 양보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추진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큰 틀에서 공감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가장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의료공급자와 시민사회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으로 대표되는 의료산업화 혹은 민영화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반면 일차의료 강화 혹은 활성화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특히 의사협회는 최근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도입보다는 일차의료를 활성화하고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차대한 시점"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건강보험의 붕괴가 개별주체들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큰 공감대가 이미 있는 만큼, 이를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조율해 제도를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을 따름이다. 물론 정부의 역할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들은 '건강보험 대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 산하에 기구를 설치하고, 정부, 의료공급자, 보험자, 시민사회 등이 폭넓게 참여해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창보 정책부위원장은 "건강보험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몇 개의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면서 "건강보험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정부, 보험자, 의료공급자, 건강보험의 주진인 국민이 참여해 '건강보험 대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