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 변화 후유증 우려감 팽배…"모두가 피해자"
|기획특집|의학전문대학원 5년 무엇을 남겼나의사양성학제가 사실상 의과대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정책실패에 대한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제도 도입 5년만에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의사양성학제를 대학 자율에 맡기자 26개 의전원 중 20곳 이상이 의대 복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책 실패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가져온 변화와 후유증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의사양성학제를 모색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상) 존폐위기 의전원 의대 U턴 가속화
(중) 잃어버린 5년…거센 비난 목소리
(하) 거듭되는 시행착오 이제는 끝내야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준비해온 수험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으며 졸업생들 또한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내보이고 있다.
졸업생, 수험생 불안감 팽배…혼란의 소용돌이
지방의전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A씨. A씨는 현재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최근 모교가 의대 복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A전공의는 13일 "사실 지금이야 의전원 졸업생이라고 해도 동문으로 인정하겠지만 이렇게 의전원이 없어지고 나면 먼 훗날에는 이방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지금도 의전원에 대한 편견이 심한데 아예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지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물론 지금도 의전원 입학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왠지 시대가 만든 모르모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후배들의 상실감이 더 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의사양성학제를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발표가 나고 의전원들이 복귀를 가시화하자 졸업생들과 수험생들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의전원 진학을 위해 대학과 전공의 선택한 학생들은 실험적인 정책으로 인생이 뒤바뀌고 있다며 극심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서울의 한 의전원 입시학원에서 수학중인 한아름씨. 한 씨는 올해 서울 명문대학의 생물학 계열에 입학했다. 바늘구멍인 의대를 뚫기 보다는 의전원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한 씨는 "서울권 주요 의대를 목표로 했지만 생각보다 수능 점수가 나오지 않아 의전원으로 방향을 돌렸다"며 "하지만 서울의전원, 연세의전원이 의대로 돌아가니 목표를 잃은 기분"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어쩔 수 없이 의전원 입시와 편입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며 "차라리 이럴줄 알았으며 지방권 의대를 입학하는 것이 나았을텐데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냐"고 전했다.
프라임엠디 유준철 원장은 "우선 2015년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지금 입시를 준비중인 학생들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상당수 학생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선 교과부가 편입학 정원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게끔 조치한 만큼 많은 학생들이 편입에 눈을 돌릴 것으로 본다"며 "결국 또 다른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만 생긴 꼴"이라고 덧붙였다.
쏟아지는 비판…"의대도 의전원도 피해자"
의사양성학제가 불과 몇년만에 급격히 변화하면서 각 대학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의대로 복귀하는 대학들은 불과 5년만에 돌아갈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엄청난 기회비용을 소비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의대로 복귀하는 B의전원 원장은 "학제라는 것은 대학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교과부가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대학들을 끌고 가면서 의사양성학제에 엄청난 혼란을 몰고 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의전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또한 의대로 복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느냐"며 "그 노력을 인재 양성에 쏟았다면 훨씬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전원을 유지하는 대학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불과 5년만에 제도를 손바닥 뒤집듯 전환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냐는 지적이다.
C의전원 부학장은 "교과부가 우유부단하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의사양성학제가 누더기가 됐다"며 "그동안 성실히 의전원을 발전시키며 노력해온 대학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차라리 제도를 도입하지 말던지 아니면 의전원 전환을 강제화해 학제를 일원화했어야 한다"며 "정부를 믿고 충실히 소임을 다하던 대학들만 바보가 된 꼴"이라고 한탄했다.
"무리한 제도 도입이 비극 불렀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과부는 왜 훤히 보이는 이같은 후유증과 비판을 감수하고 의사양성학제를 대학 자율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을까.
전문가들은 큰 틀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제도만을 차용한 것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정책부터 끌고 나가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학전문대학원은 다양한 전공을 이수한 학사들에게 의학교육의 기회를 부여해 다방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의사를 키운다는 목표로 도입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었을때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우선 대다수 의전원생들이 임상의사를 희망하면서 우수한 의과학자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퇴색됐다.
또한 학부과정을 의전원 입시를 위한 준비기간으로 여기면서 이공계 학과가 입시반으로 변질되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군복무를 마친 학부생들의 입학으로 군의관 부족사태가 나타났고 등록금이 1천만원을 넘기면서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렇듯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의대 복귀를 주장하는 대학들의 주장은 점점 더 힘을 얻었고 교과부가 결국 백기를 들고 의사양성학제 선택권을 대학에 넘겨주면서 수백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경북의전원 채성철 원장은 "제도의 의미와 순기능을 보면 의전원도 상당히 메리트가 있는 제도"라며 "하지만 국내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제도를 도입한 것이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의사를 안정된 고소득 전문직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의전원에 와서 우수한 의과학자가 되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기초의학에 대한 지원과 의과학자들의 안정된 진로를 마련하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