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현지인·한인 모두 의료에 목말랐다"

장종원
발행날짜: 2011-10-06 06:50:51
  • 경기도의료봉사단 2박 4일간 마닐라서 의료봉사 구슬땀

|경기도의료봉사단 필리핀 의료봉사 동행기|

필리핀 국민에게 '의료'는 동네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부담 없이 방문하는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의료'와는 확연히 달랐다.

경기도의사회, 약사회, 한의사회 등이 속한 경기도의료봉사단 15명은 지난달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소위 황금연휴였다. 개천절까지 낀 이 절호의 '쉬고 놀' 시간을 포기할 뿐 아니라 자비까지 들여 이틀간 병원, 약국 문을 닫아야 소화가 가능한 일정이었다.

출발하는 날 인천국제공항 역시 그러했다. 오전 8시 15분 비행기였음에도 연휴를 맞아 해외로 여행가는 사람들로 공항은 가득 찼고, 의약품과 기구들로 구성된 봉사단의 짐은 많은 골프가방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의 의료봉사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적어도 수도인데 웬만한 의료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현지 교민들 "병원비 무서워서 병원 못가요"

하지만 이런 의문과 이질감은 첫날 의료봉사 활동부터 사라졌다. 필리핀 사람들에겐 의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었고, 한국 의사의 손길은 간절한 것이었다.

특히 의료봉사단이 방문하기 직전 필리핀은 태풍으로 초토화돼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3일간의 짧은 진료 일정동안 보다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서 마닐라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의료봉사단의 첫 일정은 필리핀 그린힐스(Greenhills) 지역에서의 교민 진료였다. 현지 교회에서 진행된 의료봉사에는 100여명이 안과, 정형외과,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등의 진료를 받았다.

그나마 경제적 사정이 낫다고 생각하는 교민에게 필리핀 의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높은 진료비용과 함께 필리핀 의사에 대한 불신 등으로 교민들은 현지 의료기관을 대부분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한 교민은 "감기만 걸려도 한화로 10만원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교민들은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서 "한국에서 사온 의약품을 먹고 버티거나, 참았다 한국에 들어갈 때 병원에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 뎅기열로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한 교민이 한국 돈 200만원에 가까운 진료비를 냈다고 소개했다.

이날 봉사에 참여한 정형외과 현재요 원장은 "이 곳 교민들이 기본적으로 의사의 설명만 들어도 충분히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현지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다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봉사는 종합 건강상담에 가까웠다. 교민들은 그간 목말랐던 의사와 의료에 대한 갈증을 경기도의료봉사단을 통해 해소하는 것 같았다.


몰려드는 환자들…위기 속에 빛난 '외과'

둘째 날은 마닐라 인근의 한센인 마을 캘쿤 시티(Calloocan City)에서 시작됐다.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지역이었고, 필리핀 현지인 대상 첫 진료이기도 했다.

의료봉사가 진행될 마을 중심 체육관에 도착한 의료봉사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료시작 몇 시간 전부터 입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이다.

족히 1000명은 충분해 보였다 의사 5명으로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환자였고, 그랬기에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점심도 이미 도시락으로 때울 준비를 해왔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극단적인 나라로 국민의 80%가 극빈층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날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필리핀 주민들은 의사를 평생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윤종태 원장(이비인후과)은 "환자들이 기본적인 최소한의 상담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질병이 많았다"면서 "귀가 안 들린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귀지가 가득차서 안 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응급수술을 위해 만든 임시 수술실.
응급수술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표적 기피과로 전락해버린 외과가 의료가 절실한 곳에서는 빛이 났다.

외과의사인 경기도의사회 윤창겸 회장은 탁구대와 플래카드로 제작한 임시수술실에서 환자의 종양을 떼어내는 3건의 응급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날 의료봉사에는 의약분업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 의사들의 처방속도를 약사의 조제속도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처방전이 수북이 쌓이자 결국 윤 회장과 스텝들이 전부 달려들어 2시간가량 조제를 도와주고서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진료는 퀘존 시티(Quezon City)에서 진행됐다. 300~400명의 환자가 몰려들었지만 봉사단은 캘쿤 시티의 경험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미리 과별로 환자를 등록해 순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의약분업 시스템은 개별 의사가 간단한 약은 직접 처방, 조제하고 분쇄 처방 등 일부 어려운 조제건만 약사에게 넘기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날은 영화배우이자 정치인인 알프레도 바가스(Alfedo Vargars)가 의료봉사 현장을 방문했다. 의료봉사가 이들 정치인에겐 좋은 홍보감인 듯 했다. 그만큼 의료가 절실하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이었다.

알프레도 바가스는 의료봉사단에게 융숭한 대접을 했다. 하지만 순수한 목적의 의료봉사가 정치인에게 이용당하는 씁쓸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국빈급 대우받은 '경기도의료봉사단' 위상 보다

이번 의료봉사 기간 동안 경기도의료봉사단은 필리핀 현지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필리핀 국가기관인 MMDA(Metro Manila Development authority)가 의료봉사를 지원했으며 차관급 인사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의료봉사 현장까지 오토바이를 탄 경찰들이 인도해 주기도 했다.

MMDA의 비호(?) 아래 공항에서 세관 통과도 일사천리였다. 일반적인 의료봉사의 경우 의약품을 압류당하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게 현지 교민의 증언이다.

윤 회장은 "경기도에서 이번 의료봉사를 적극 후원하면서 필리핀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면서 "경기도의사회는 경기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여행사 광고 속에 등장하는 마닐라 인근 관광지는 의료봉사단에겐 꿈도 꾸지 못할 곳이었다.

하지만 의료를 갈망하는 필리핀 국민들의 눈빛을 본 의료봉사단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기도 했다.

한편 이번 의료봉사에는 경기도의사회 윤창겸 회장(외과), 안산시의사회 윤종태 회장(이비인후과), 현재요 원장(수원정형외과), 아주대병원 송지훈 교수(안과), 김상후 공중보건의(예방의학과), 경기도약사회 위성숙 부회장, 경기도 간호사회 김효심 회장, 유선자·노예슬·강민경 간호사, 의협 대의원회 장승준 사무처장, 경기도의사회 이상규 부장, 김인호 과장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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