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서당개…병풍이 된 의대 실습생의 비애

의대생신문
발행날짜: 2012-11-05 12:40:15
  • 학생의사 모호한 신분 실습교육 한계…"인식 개선 시급하다"

기계를 다루는 법을 배울 때 사용 설명서만 보고 그 기계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몇 번은 그 기계를 만져보고 써 보면서 사용법을 익힌다. 하물며 인체는 기계와 다르기에 멋모르고 함부로 만지다 고장을 내서도, 감정 없는 사물로 대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선배 의사들의 지도와 감독 하에 실제 상황을 접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임상실습'은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들 속에서 임상실습은 실체적 실용적 의학의 표상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의료의 전제조건이 된다.

하지만 상황은 말처럼 이상적이지 않다. 실습을 도는 학생들이 모인 자리라면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고 스스로를 병풍에 비유하는 자조 섞인 농담도 들린다.

어느 정도 실습생활에 관록이 붙으면 이번 주에 돌게 될 과가 얼마나 힘든 지부터 일단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잘 '도망'을 쳐서 편하게 한 주를 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영특함도 발휘되게 마련이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씁쓸하게 만드는 것일까?

목표의 부재

문제의 원인을 짚어보기 위해 기자가 만난 7개 학교의 12명의 실습생들은 회진이나 티칭, 수술참관, 외래 등 실습을 구성하는 여러 항목들에 대해 엇갈리는 평가를 내놓았다(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하 모두 익명 처리함).

그 평가들 속의 뒤죽박죽 엉켜 있는 요구들은 실습을 도는 구체적 목표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게 공유돼 있다면 실습에서 기대하는 바가 이토록 천차만별을 보이긴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실습을 이루는 항목에 대한 이들의 평가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먼저 몇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교수님이 특정 내용을 설명하는 티칭(렉처)에서는 별로 실습의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병원에 나오는 가장 큰 목적은 환자를 대하는 법이나 배운 이론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라고 봤을 때 강의실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병원에서 하는 것은 실습의 목적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EMR을 보면서 하는 증례 위주의 설명은 이론만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져 도움이 된다고 받아들이고 있기도 했다.

한편, CPX/OSCE의 도입이 과마다 실습교육의 체계화에 일조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그 과에서 알아야 할 실제적인 임상적 지식이나 술기, 이를테면 호흡기내과에서 객혈의 감별진단이나 소아과의 신체진찰 등을 실습 중에 교육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항목화 된 시험이라는 목표가 교수나 전공의들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인식과 학생교육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게 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실습 자체를 평가하는 방법이 모호한 것을 문제로 삼는 시각도 있었다.

평가는 평가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 평가의 기준이 되는 항목들을 통해 학습목표를 보다 명확히 한다는 기능도 있다.

특히 상황이 가변적이고 교육내용을 체계화하기 힘든 실습에는 이런 기능이 더 절실하다.

실습에서는 대개 케이스발표나 논문 발표, 혹은 태도라는 항목으로 평가받는데 이것은 실습을 통해 얻어가야 할 것들에 대한 다소 간접적이고 주관적인 측정지표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뚜렷한 목표 제시와 그를 통한 동기부여가 안 되는 상황에서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할 지 가늠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건의 불확실성

실습교육의 질에 변수가 되는 한 가지 요소는 환자에 관한 문제다.

환자를 통한 공부를 하려고 해도 특정 질병이나 상태를 가진 환자가 실습 시기에 없으면 처음부터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가령 알레르기내과를 도는 짧은 기간에 약발진(Drug eruption)으로 내원한 환자가 없으면 매우 흔하고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질환임에도 증례를 접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바깥에 있는 문제다.

더 큰 장애물은 임상실습은 암묵적으로라도 환자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런 문제는 산부인과와 같이 환자의 프라이버시와 깊이 연관되는 상황에서 특히 저명하게 표출된다.

환자도 많고 과 분위기도 좋아서 실습할 때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환자의 거부로 정작 가장 중요한 분만과정을 참관하지 못한 어느 학생의 안타까운 사정은 환자의 인격권과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가 충돌해 일어난 비극의 대표적인 사례다.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간단한 술기나 처치를 환자나 보호자들의 눈치에 치이면서라도 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다행인 셈이다.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의 성격이 예민한 경우 등 특정 상황에서는 교수나 전공의가 아예 학생에게 시도의 기회를 주는 것조차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학생의 교육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 환자가 누려야 할 의료의 질까지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떤 사정일까?

스웨덴은 환자가 대학병원에 내원하면 의대생이 먼저 예진을 하고 그 다음에 교수를 만나는 시스템이다.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부 학교 일부 과에서는 필요나 상황에 따라 학생에게 예진을 경우도 있지만 이들과 비교해보면 학생이 환자를 직접 대할 수 있는 기회가 확연히 적다.

혈액배양 같은 기본적인 술기도 오스트리아에서는 학생들이 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턴의 역할인 것도 이런 차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부분이다.

여력의 부족

강의실은 일차적인 목표가 교육에 있는 것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환자를 보는 것이 더 다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론적으로야 대학병원은 학생교육을 위해서도 존재하는 기관이지만 문제는 그러기에는 현장의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

세 시간만에 많게는 100명의 환자까지 외래를 처리해야 하는 교수님이나 병동 주치의 한 명이 50명에 달하는 입원환자들을 챙겨야 하는 열악한 처지.

이들이 이런 여건과 싸워가며 억지로라도 기회를 마련하지 않는 한 교육의 양과 질 확보는 요원한 이야기다.

교수나 전공의가 잉여의 시간을 내어 학생교육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은 그야말로 '잉여'가 된다.

학생교육을 총괄하는 인력이나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느끼는 교육의 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전자의 경우 학생들은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그 과의 일이나 특수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 가는 반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방치된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근처에 있는 것도 방해인 것 같아서 잠깐 어디 가있으려 하면 연락이 와서 학생들이 실습시간에 어디 가 있냐고 혼나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가면 또 할 일 없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제는 대기시간뿐만 아니라 회진이나 외래, 수술 등을 참관하는 상황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참관에 교수나 전공의의 설명이 병행되면 이해도 되고 지속적으로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데, 설명이 없이 그냥 따라다니면 무엇을 봐야 하고 지금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가 없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오늘은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자'와 같이 딱 정해주는 날이 가장 효율도 높고 집중도도 높다고 했다.

그리고 회진부터 수술까지 교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늘 어려웠던 것이 학생의사라는 모호한 신분. 어디부터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매 상황마다 고민된다는 게 실습생의 애로사항이었다.

의지의 문제?

교육심리학에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교육자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과가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임상실습 학생들에게 있어 교육자인 교수나 환자들이 업무와 병원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치여 어떤 기대치와 지향점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는 지난한 현실들은 곧 배움의 의지 둔화로 연결됐다.

본과 1,2학년에 비해 시험부담이 덜한 만큼 정신적인 압박감은 적지만 학생도 의사도 아닌 애매한 위치를 요구받는 실습생들은 정서적으로 지친다는 이야기는 그런 배경 속에서 들려왔다.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오래 서 있는 학생들은 체력적으로까지 지치게 되고 결국 수술이, 외래가, 하루일과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는 괴로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남 탓만 할 문제는 아니다. 누가 챙겨주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건 그만큼 자신이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얻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도 된다.

환자가 배정되었을 때 남이 작성한 의무기록을 보고 5분 만에 레포트를 내는 사람과 매일매일 30분씩 환자와 이야기하고, 직접 고민해보고 환자가 물어보는 걸 찾아서 알려주기도 하면서 많은 걸 얻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다를 것이라는 의견은 그런 시사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권리는 누가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어나가는 것인데, 배울 권리를 누리려는 학생들의 의지가 충만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실습생들의 생각이 일치한 몇 안 되는 부분이었다.

이젠 바뀌어야, 아니 바꾸어야 할 때

목표, 여건, 여력과 의지. 충실한 교육을 위한 필요조건들 중 어느 것도 안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위협받는 건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에게 주어져야 할 양질의 교육이다.

이는 결국 장래의 환자들에게 주어질 의료의 질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인턴을 폐지하고 전문의 비율도 점차 조정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간간이 전해져오는 가운데 국민의 보건의료를 책임질 의대생들의 실습교육이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인턴이 없어지면 전공 선택에 관한 고민의 기회까지 축소될 걸로 예측되는 마당에 의대협 Task Force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실습교육 강화를 위한 대응책에 관한 별다른 논의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다만 실습생이 인턴을 거치지 않으면서 다소 약해질 수 있는 기본술기를 보완할 수 있도록 예비면허의 형태로 어떤 자격이 주어질 것이라는 엉성한 추측만 들려올 뿐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강의실에서 2년, 병원에서 2년 도합 4년을 의학공부에 쏟아붓고 해마다 3000명씩 의사로 배출되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의대만 졸업해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그렇다면 감별진단은 세 가지 정도로 추려진다. 서당이 이상하거나 풍월이 과분하거나 아니면 의대생들이 실은 견공 정도 또는 그 이하의 지능이거나.

의대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든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결국 답은 앞의 두 가지 쪽에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물론 병원 상황은 변수가 많고 유동적이다. 병원이나 과마다의 특수성에 따른 제약도 있고 또 그곳을 찾는 환자의 구성이나 기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환경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으로 의대생에게 잘 다듬어진 실습교육을 제공하도록 요구한다면 비현실적인 주장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식을 공유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의대생의 임상실습에는 대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현재 환자의 권리와 미래 환자의 권리의 충돌이라는 문제까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메디칼타임즈 제휴사 = 의대생신문 하진경 기자(계명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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