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앞에 두고 자중지란…막장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안창욱
발행날짜: 2013-04-01 06:29:08
  • 경기도의사회 대의원총회, 감사보고서·예산안 처리 무산 파행

경기도의사회 감사들이 상반된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는가 하면 대의원회는 의사회가 야심차게 준비한 올해 사업비를 삭감하려고 시도했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는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다.

경기도의사회는 30일 정기 대의원총회를 열어 지난해 감사, 결산, 2013년 사업 및 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의원총회는 초반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서기홍 감사는 의사회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의원회는 의사회의 근간"이라면서 "상임이사들이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순기능에 매진해 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대의원회의 의사회 흔들기를 자제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서 감사는 "회비 납부율을 48%로 제고했고, 많은 회무를 수행하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의사회를 격려했다.

반면 김세헌 감사는 의사회 집행부와 사무처가 감사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예산을 횡령한 의혹이 있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김 감사는 "일반회계 결산자료 중 대외협력비 4천여만원, 특히 현금으로 인출한 800만원, 500만원 등을 포함해 지출내역에 대한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김 감사는 "상당수 예산 집행이 공적 용도가 아닌 사적으로 사용된 정황이 포착돼 이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거나 사용내역 확인을 거부했다"고 횡령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집행부에서 대의원총회에 제출한 결산서는 감사자료 미제출로 인해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대의원총회는 두개의 상반된 감사보고서를 두고 격론을 벌였고, 의사회 집행부도 김세헌 감사의 감사자료 요구 목록을 공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세헌 감사가 요구한 자료 제출 목록 중 일부
김 감사가 요구한 내역을 보면 '대외협력비 전부' '택시비 3만원 이상' '회장 유류 지원비 관련 미비 영수증 및 회장 승용차 연료탱크 초과 의혹 사안에 대한 해명-15만원, 13만 4천원, 13만 8천원, 13만 7천원' '회장 유류지원비가 사적 사용이 아닌 공용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정황 설명' '2012년 6월 18일 택시비용 2만 8400원에 대한 설명' 등이다.

최동락 재무이사는 "김 감사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며, 대외협력비 사용에 대해서는 과거 집행부 관행대로 선임감사에게 다 보고했다"고 반박했다.

조인성 회장도 회원 재신임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은 "취임 이후 일주일에 두번 병원 문을 닫고 의사회로, 국회로 뛰어다녔고, 지금까지 어려운 의료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해 왔다"면서 "하지만 지금 총회 상황은 너무나 비참하고, 집행부는 잠재적 범죄자가 됐다"고 개탄했다.

조 회장은 "회장이 승용차 기름이나 팔아먹고, 어떻게 예산을 횡령했다고 하느냐"면서 "지금까지 다 합법적으로 일했고, 일주일에 두번 병원 문을 닫았더니 환자가 떨어져 일요일에도 진료하면서 한점 부끄럼 없이 회무에 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의사회 조인성 회장
조 회장은 "집행부 명예는 이미 실추됐고, 직선제로 취임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면서 "회장직을 걸고 전체 회원들에게 재신임을 물어서 떠나라면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모 대의원은 "감사의 역할은 두가지다. 회무가 회칙에 맞는지, 집행부가 제시한 결산자료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라면서 "집행부가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까고 발목잡는 게 감사냐"고 몰아붙였다.

대의원회는 두 개의 감사보고서 중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지 투표에 붙였지만 모두 과반을 얻지 못했고, 결국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재감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대의원회 예산결산위원회는 의사회가 제출한 2013년도 예산안 중 신규 사업과 대외협력비 등을 대폭 삭감해 의사회의 손발을 묶어버렸다.

예결위가 삭제하거나 삭감한 2013년도 예산안을 보면 ▲의원발전협의회 회의비 및 운영비 250만원 ▲상임이사 활동비, 통신비, 교통비 1800만원 ▲시니어클럽 200만원 ▲35세 미만 개원의, 전임의, 전공의 젊은 의사미래모임 회의비 및 운영비 250만원 ▲통합연수교육 1500만원 ▲회원 조의금 및 대내외 경조비 1500만원 ▲대외협력비 2300만원 ▲업무추진비 3600만원 ▲회장 유류지원비 600만원 등이다.

반면 예결위는 대의원 관련 운영비 1775만원, 총회비 600만원을 인상했다.

이에 대해 조인성 회장은 "예결위가 대외협력비, 젊은의사미래포럼, 개원의사 모임 등의 예산을 다 삭감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따졌다.

그는 "회원들에게 재신임을 묻거나 이 자리에서 재신임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라"면서 "다만 불신임 하면 집행부와 함께 떠나겠지만 재신임 된다면 다시 감사를 하고, 예산안 역시 재상정해 적법하게 처리하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의사회 최연소 이사인 이철진 입법이사는 "의사들을 위한 여러가지 법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제 돈을 쓰면서 일해 왔는데 이대로 예산안이 통과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서 "한달에 공식모임만 두세번 할 정도로 일하고 있는데 집행부가 왜 욕을 먹고, 예산을 삭감한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집행부가 총사퇴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면서 "바로 이사들의 가족"이라며 분을 참지 못했다.

모 대의원은 "예산안을 짤 때에는 먼저 주무이사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예결위가 서류만 보고 삭감했다"면서 "집행부가 의욕적으로 일하려고 하는데 대외협력비 1천만원 가지고 뭘 하라는 거냐"고 몰아붙였다.

대의원회는 예결위가 제출한 2013년도 예산안 역시 과반을 넘지 못해 처리하지 못하는 초유의 결과를 남겼다.

그러자 또다른 대의원은 "적을 앞에 두고 의사들이 자중지란을 해서야 되겠느냐"면서 "우리가 이렇게 일을 저질러놓고 앞으로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토요일 오후 5시부터 시작한 막장드리마는 자정을 넘어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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