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기까지의 첫걸음 '해부학'

문지현
발행날짜: 2014-04-18 06:03:57
  • 중앙대 의대 본과 3학년 문지현 씨

저는 본과 3학년 실습을 앞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병원에서 실전 상황과 맞딱 드리기 위해 교실에서 충실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쉽지만은 않았던 준비과정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떼는 첫걸음인 해부학부터 시작해서, '내외산소'로 대표되는 임상과목까지 의대생들의 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해부학은 의대 생활의 상징이다. 아이튠즈에서 Anatomy를 입력하면 아이들이 볼법한 가벼운 앱에서부터 60달러를 내고 3D로 즐길(?) 수 있는 앱까지 50여개의 앱이 검색될 정도다. 해부학은 의대생이 하는 공부 중 가장 낯설고 궁금증을 많이 자아내는 부분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진짜 ‘속살’을 들여다보는 매력이 느껴지는 과목이기도 하다.

영화 <해부학교실>에 등장한 카데바. 실제 카데바는 이렇게 금방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이 생기지 않았다.
해부학을 공부하면서는 근육, 혈관, 신경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는지 익한다. 근육은 뼈에 붙어 있는데, 붙어있는 지점은 어디이며 어떤 관절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지 외운다. 혈관이나 신경은 각각이 지나가는 길이 있는데 이것을 '주행경로'라고 부른다. 수십개 혈관과 신경의 주행경로와 그들이 어떤 근육이나 장기에 혈액을 공급하고 신경지배를 하는지까지 외웠다면 시험을 치를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은 아니지만.

해부학과의 첫 만남

의대생임을 밝히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 "해부학 할 때 진짜 시체 봤어요?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하나하나 답해보자면 진짜 시체를 봤고, 무섭지 않고, 기절하는 사람은 없다. '해부학 실습 첫 시간에 쓰러진 여학생' 같은 도시전설이 어디서 탄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습에 쓰이는 시신은 카데바(cadaver:시체)라고 부른다. 카데바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포르말린 처리가 되어있고 피부도 창백을 넘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다. 영화 '해부학교실'에 등장하는 카데바처럼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포스를 풍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습 첫 시간에는 시작에 앞서 시신을 기증한 분들께 예의를 표하고 감사하는 의미로 위령제를 지낸다. 이 경건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드디어 카데바와의 첫만남이다. 카데바는 지퍼가 달린 커다란 비닐 속에 들어있다. 실습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퍼를 처음으로 열었을 때 훅 풍겨오는 독한 냄새를 기억할 것이다. 포르말린 냄새와 동물에서 나는 비릿함이 뒤섞인 것 같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냄새. 서너 시간 실습을 하고 나면 장갑을 꼈던 손은 물론 가운과 옷에도 냄새가 배어 그날 집에 갈 때까지 고약한 냄새가 코 끝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선배들이 해부학에 시달리는 불쌍한 본과 1학년 학생들을 놀릴 때 '너 본1 냄새난다'고 말하고는 한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해부학 책의 팔 그림. 실물보다 훨씬 보기 좋게 그려져 있다.
실습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처음에는 책의 그림과 아무리 비교하면서 해부를 한들 내가 보고 있는게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신경이나 혈관같은 구조물들은 칼로 슥하고 지나가기만 해도 잘리기 때문에 조심조심, 분속 1cm도 안 될 속도로 신중을 기하지만 또, 자르고 나서 그 흔적으로 위치를 확인한다. 이렇게 한참을 카데바와 씨름을 하고도 별 성과없이 첫 실습을 마무리하고 나면 이미 시간은 9시를 훌쩍 넘긴 후다. 지금도 그때를 되돌아보면 배는 고프고, 잔뜩 지쳐서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해는 저물어 깜깜하고, 다른 학과는 아직 방학중이라서 캠퍼스에는 아무도 없고, 학생회관 식당도 문을 닫아버린 모습을 보며 느끼던 서러움과 먹먹함이 생생하다.

해부학에도 포지션이 있다?

보통 한 카데바에 5-6명 학생이 조를 이뤄서 실습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의욕적으로 한번이라도 더 매스를 잡아보려고 하지만 한주만 지나도 그 열기는 빠르게 식는다. 잘 모르면서 파다가 중요한 구조물을 잘라먹으면 교수님께 혼나고, 같은 조 학생들의 지탄을 듣는데다가 세시간 넘게 서서 해부를 하다보면 체력도 금방 고갈되기 때문. 게다가 시험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전날 새벽까지 잠을 아껴가며 도서관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아서 실습에는 게을러지는 사람도 생긴다. 학생들은 대개 '브레인', '포크레인', '멤브레인' 3개의 포지션 중 하나를 택한다. '브레인'은 그 조에서 똑똑하고 성적이 좋아서 지금 보고 있는 구조물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주는 사람을 말한다. '포크레인'은 카데바의 피부, 지방 및 근육 같은 구조물을 '파내는' 노동력을 제공한다. '멤브레인'은 우리말로 하면 세포막의 '막'(膜)을 뜻하는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변을 떠도는 존재들을 말한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실습조의 포크레인으로 기능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 실습이 시작되고 한달 정도만 지나면 다들 훌륭히 적응해서 능숙하게 해부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저녁 7시 쯤이면 마무리를 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온다. 실습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아무리 냄새가 역해도 배는 고파오고, 옆에 있는 친구와 오늘 삼겹살 먹을까, 치킨 먹을까를 고민한다.

해부하고 나오자마자 살코기를 뜯는 광경이 그로테스크하다고 느낄 지 모르겠지만, 해부학기가 워낙 체력적으로 힘들어서인지 그렇게 고기가 당기더라. 역시 배고픔 앞에는 장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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