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문 원장(국내 1호 격투기 링닥터)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주먹이 멈추는 곳마다 터지는 둔탁한 타격음. 관중들의 환호 소리도 덩달아 높아진다. 묵직한 한방이 꽂히자 얼굴에 새겨지는 붉은 생채기.
"스탑!"
정적을 깬 그가 서둘러 구급함을 챙긴다. 철창 문이 열린다. 그의 진료가 시작되는 시간. 진료의 공간은 8각의 케이지. 그는 링닥터다.
"저의 진료소는 케이지 안입니다."
떨릴 법도 한데 한켠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그의 표정이 차분하다. 냉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걱정스런 눈빛. 부모의 얼굴이랄까. 그의 표정을 이해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링닥터란 부모와 같다는 게 그의 속내였기 때문이다.
복서 출신 김지연 선수가 한국 여성 최초로 로드FC 케이지에 오른 지난 달.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정우문 원장(원주 정병원)을 만났다.
선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관중들이 서둘러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잠깐의 틈을 내 마주섰다. 작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체구. 말쑥하게 차려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땀내나는 선수들의 주치의다.
어떤 '인연'이 그를 격투기 링닥터로 이끌었을까. 다른 분야도 많은데 왜 하필 격투기 링닥터냐는 질문을 건네자마자 속사포처럼 아껴왔던 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의사로 스포츠의학을 주로 했습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군의관 시절에도 '스포츠 군의관'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어요. 수영, 스키, 패러글라이딩, 산악바이크 등을 두루 섭렵하다보니 직업적인 소양으로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생겼습니다. 운동에 따라 주로 다치는 부위나 다칠 수 있는 리스크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이 무렵 로드FC로부터 콜이 왔습니다."
불과 4년 전. 불모지에 핀 꽃처럼 불연듯 종합격투기 1호 링닥터라는 호칭을 얻었다. 참고할 만한, 조언을 얻을 만한 선배가 없다보니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어떤 경우에 경기를 중단하고 속개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경우가 아쉬웠다. 가벼운 커팅 정도로도 많은 양의 출혈이 나올 수가 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뇌진탕이나 안와골절같은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여기서부터 링닥터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 관중의 입장과 심판의 입장, 그 중간에서 면밀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입는 부상은 주로 컷팅입니다. 피부가 찟어지는 부상이죠.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격투기에서의 출혈은 흥미 유발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선수들의 의지와 분위기 등을 따져 경기를 속개시킬지 고민해야 합니다. 선수와 관중 입장 모두 중요하니까요."
코뼈 골절이나 손가락 골절 등은 위급한 부상에는 경기를 중단시키지만 애매한 부분에서는 배운다는 자세로 주최 측과 논의하면서 고쳐나가고 있다. 섣부른 '스탑' 싸인이 몇개월간 공들인 경기에 재를 뿌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4년차에 접어들면서 한숨 돌렸다는 진짜 '여유'도 보였다.
"오래되다보니 선수들의 속성도 알게 됐습니다. 레슬링을 주로 하던 선수인지, 복싱을 메인으로 하던 선수인지 이런 것까지 세부적으로 알게됐죠. 개별 부상 부위를 알고 치료에 접근할 정도로 한숨 돌렸습니다."
점차 그의 표정이 밝아진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흥분들이 그의 차분한 표정을 일깨운 것일까.
얼마 전 UFC 데뷔전을 가진 남의철 선수와의 특별한 친분을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 반짝였다.
"지난 해 10월 남의철 선수가 일본인 쿠메 선수와의 경기에서 손가락 골절을 당했습니다. 이미 한차례 골절로 쇠를 박은 부위인데 또 골절이 된 것이죠. 그런데도 연장 경기를 뛰어서 쿠메 선수를 이겼습니다. 경기 후 메디컬체크를 하면서 남 선수에게 처음 수술을 받은 곳에서 재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그의 투지가 너무 가상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직접 수술을 해주겠다고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무보수 봉사…선수 아끼는 마음 있어야
11월에 수술을 한 남 선수는 3월 세계 최고의 격투단체 UFC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3월 1일 삼일절에 잡힌 경기이고 또 일본 선수를 상대로 하는 만큼 선수의 자신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네바다주 체육위원회의 복잡한 규정에 따라 메디컬테스트를 진행하고 자비를 들여 마카오로 따라갔다. 이번엔 링닥터의 신분이 아니라 남 선수의 '주치의' 자격이었다. "정말 따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 건 경기가 끝난 후 남 선수의 손이 들어올려질 때였다.
"경기 전 일본 선수 한번 혼내 보자 하니까 남의철 선수가 '예 알겠습니다. 자신있습니다'는 말을 하더군요. 고전 끝에 이기고 나니 마치 친동생이 이긴 것처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UFC를 보고온 소감 때문일까. 국내 격투기 발전을 위한 아쉬운 속내도 털어놨다.
"UFC에는 전문 소속 의료진이 있어 놀랐습니다. 다른 진료를 보는 게 아니라 아예 UFC 소속으로 선수들의 진료에만 신경을 쓰더군요. 특히 UFC 링닥터의 권위가 매우 강한 점이 인상 깊습니다. 심판보다 강한 발언권을 가진 이유는 바로 선수 보호 차원에서 그런 것일 테지요."
UFC에서는 링닥터가 TKO 판정을 내리면 그냥 경기가 끝난다는 것. 다른 외부 요소를 눈치볼 필요없이 선수 보호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소리다.
"선수는 한번 경기하고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그의 말을 듣자 오로지 선수 보호를 위해 링닥터의 권위가 올라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상 부위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격투기의 특성상 전문과별 닥터가 참여하는 메디컬팀이 꾸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밝혔다.
그는 "안와골절이나 각막손상에 대비한 안과, 코뼈 골절에 대비한 이비인후과, 치아 손상을 위한 치과의사도 필요하다"면서 "전국 수십개의 체육관에 등록된 선수명단별로 수술력이나 병력 등을 기록한 개인 프로필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런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선수들이 행복하게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그는 "선수들이 행복한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해 앞으로도 불러주면 계속 힘닫는대로 링닥터를 하겠다"면서 "제 2호 링닥터를 이어갈 탄탄한 의사 후배를 만드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전했다.
무보수로 전국으로 주말에 열리는 8각의 케이지를 찾아 떠도는 일. 시간외 수당을 주면서 병원직원과 엠뷸런스를 불러 동행하는 일은 무엇보다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링닥터란 부모와 같다는 그의 속내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탑!"
정적을 깬 그가 서둘러 구급함을 챙긴다. 철창 문이 열린다. 그의 진료가 시작되는 시간. 진료의 공간은 8각의 케이지. 그는 링닥터다.
"저의 진료소는 케이지 안입니다."
떨릴 법도 한데 한켠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그의 표정이 차분하다. 냉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걱정스런 눈빛. 부모의 얼굴이랄까. 그의 표정을 이해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링닥터란 부모와 같다는 게 그의 속내였기 때문이다.
복서 출신 김지연 선수가 한국 여성 최초로 로드FC 케이지에 오른 지난 달. 홍은동 그랜드 힐튼호텔에서 정우문 원장(원주 정병원)을 만났다.
선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관중들이 서둘러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잠깐의 틈을 내 마주섰다. 작지만 단단함이 느껴지는 체구. 말쑥하게 차려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땀내나는 선수들의 주치의다.
어떤 '인연'이 그를 격투기 링닥터로 이끌었을까. 다른 분야도 많은데 왜 하필 격투기 링닥터냐는 질문을 건네자마자 속사포처럼 아껴왔던 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의사로 스포츠의학을 주로 했습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군의관 시절에도 '스포츠 군의관'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어요. 수영, 스키, 패러글라이딩, 산악바이크 등을 두루 섭렵하다보니 직업적인 소양으로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생겼습니다. 운동에 따라 주로 다치는 부위나 다칠 수 있는 리스크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이 무렵 로드FC로부터 콜이 왔습니다."
불과 4년 전. 불모지에 핀 꽃처럼 불연듯 종합격투기 1호 링닥터라는 호칭을 얻었다. 참고할 만한, 조언을 얻을 만한 선배가 없다보니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어떤 경우에 경기를 중단하고 속개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경우가 아쉬웠다. 가벼운 커팅 정도로도 많은 양의 출혈이 나올 수가 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뇌진탕이나 안와골절같은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여기서부터 링닥터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 관중의 입장과 심판의 입장, 그 중간에서 면밀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입는 부상은 주로 컷팅입니다. 피부가 찟어지는 부상이죠.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격투기에서의 출혈은 흥미 유발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선수들의 의지와 분위기 등을 따져 경기를 속개시킬지 고민해야 합니다. 선수와 관중 입장 모두 중요하니까요."
코뼈 골절이나 손가락 골절 등은 위급한 부상에는 경기를 중단시키지만 애매한 부분에서는 배운다는 자세로 주최 측과 논의하면서 고쳐나가고 있다. 섣부른 '스탑' 싸인이 몇개월간 공들인 경기에 재를 뿌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4년차에 접어들면서 한숨 돌렸다는 진짜 '여유'도 보였다.
"오래되다보니 선수들의 속성도 알게 됐습니다. 레슬링을 주로 하던 선수인지, 복싱을 메인으로 하던 선수인지 이런 것까지 세부적으로 알게됐죠. 개별 부상 부위를 알고 치료에 접근할 정도로 한숨 돌렸습니다."
점차 그의 표정이 밝아진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흥분들이 그의 차분한 표정을 일깨운 것일까.
얼마 전 UFC 데뷔전을 가진 남의철 선수와의 특별한 친분을 이야기할 때는 눈빛이 반짝였다.
"지난 해 10월 남의철 선수가 일본인 쿠메 선수와의 경기에서 손가락 골절을 당했습니다. 이미 한차례 골절로 쇠를 박은 부위인데 또 골절이 된 것이죠. 그런데도 연장 경기를 뛰어서 쿠메 선수를 이겼습니다. 경기 후 메디컬체크를 하면서 남 선수에게 처음 수술을 받은 곳에서 재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그의 투지가 너무 가상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직접 수술을 해주겠다고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무보수 봉사…선수 아끼는 마음 있어야
11월에 수술을 한 남 선수는 3월 세계 최고의 격투단체 UFC에서 데뷔전을 가졌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3월 1일 삼일절에 잡힌 경기이고 또 일본 선수를 상대로 하는 만큼 선수의 자신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네바다주 체육위원회의 복잡한 규정에 따라 메디컬테스트를 진행하고 자비를 들여 마카오로 따라갔다. 이번엔 링닥터의 신분이 아니라 남 선수의 '주치의' 자격이었다. "정말 따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 건 경기가 끝난 후 남 선수의 손이 들어올려질 때였다.
"경기 전 일본 선수 한번 혼내 보자 하니까 남의철 선수가 '예 알겠습니다. 자신있습니다'는 말을 하더군요. 고전 끝에 이기고 나니 마치 친동생이 이긴 것처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UFC를 보고온 소감 때문일까. 국내 격투기 발전을 위한 아쉬운 속내도 털어놨다.
"UFC에는 전문 소속 의료진이 있어 놀랐습니다. 다른 진료를 보는 게 아니라 아예 UFC 소속으로 선수들의 진료에만 신경을 쓰더군요. 특히 UFC 링닥터의 권위가 매우 강한 점이 인상 깊습니다. 심판보다 강한 발언권을 가진 이유는 바로 선수 보호 차원에서 그런 것일 테지요."
UFC에서는 링닥터가 TKO 판정을 내리면 그냥 경기가 끝난다는 것. 다른 외부 요소를 눈치볼 필요없이 선수 보호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소리다.
"선수는 한번 경기하고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그의 말을 듣자 오로지 선수 보호를 위해 링닥터의 권위가 올라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상 부위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격투기의 특성상 전문과별 닥터가 참여하는 메디컬팀이 꾸려졌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밝혔다.
그는 "안와골절이나 각막손상에 대비한 안과, 코뼈 골절에 대비한 이비인후과, 치아 손상을 위한 치과의사도 필요하다"면서 "전국 수십개의 체육관에 등록된 선수명단별로 수술력이나 병력 등을 기록한 개인 프로필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런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선수들이 행복하게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그는 "선수들이 행복한 스포츠 환경 조성을 위해 앞으로도 불러주면 계속 힘닫는대로 링닥터를 하겠다"면서 "제 2호 링닥터를 이어갈 탄탄한 의사 후배를 만드는 데도 힘을 쏟겠다"고 전했다.
무보수로 전국으로 주말에 열리는 8각의 케이지를 찾아 떠도는 일. 시간외 수당을 주면서 병원직원과 엠뷸런스를 불러 동행하는 일은 무엇보다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링닥터란 부모와 같다는 그의 속내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