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중재원 대표번호 바꾼 속내

손의식
발행날짜: 2014-06-02 06:03:09
논어 자로편에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공자에게 고을을 다스리는 방도를 물었을 때 공자는 "일을 속히 하려고 서둘지 말고, 조그만 이득을 보지 말아야 한다"며 "속히 서둘면 도리어 달성하지 못하고, 조그만 이득을 탐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라고 답했다.

공적을 올리려고 작은 이득을 탐내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6월 1일부터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담센터 대표전화번호가 '1670 - 2545'로 변경됐다.

의료중재원은 의료분쟁 상담의 대국민 접근성을 제고하고, 향후 지원 설치 등을 고려해 전국대표전화를 도입키로 했다.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1670-2545는 '일로쳐요(1670) 의료사고(2545)'라는 의미로 담고 있다.

의료중재원은 이용자들이 전화번호를 쉽게 기억할 수 있어 의료사고 상담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도와 기관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그동안 접수된 조정·중재 신청 중 피신청인의 동의를 받아 조정이 개시된 건수는 지난 2년간 912건인데 비해 피신청인이 동의하지 않아 각하된 건수는 1292건이나 됐다.

의사들이 의료분쟁조정제도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아무리 국민에게 홍보를 열심히 한들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의료분쟁조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성의 부재라고 볼 수 있다.

의료중재원에 조정을 맡기면 불리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어느 의사가 참여하길 원하겠는가.

의료중재원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관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의료인과의 간격 좁히기에 나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물론 대국민 홍보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의료중재원의 인적구성 개선 등을 통해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이 밖에 의료계가 독소조항으로 제시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료중재원은 대화보다는 힘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은 의사의 동의 없이도 의료분쟁조정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료중재원으로서는 대단히 감사한 법안임에 틀림없고 조속한 국회 통과를 바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가장 손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여론을 모아 당위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중재원의 상담센터 대표전화번호 변경은 그 순수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기억하기 쉬운 전화번호와 의료중재원의 적극적인 홍보에 힘입어 의료분쟁 상담 건수는 지금보다 증가할 것이고, 증가하는 상담 건수만큼 의사들의 거부로 인한 각하 건수도 증가할 것이다.

과연 의료중재원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고, 오 의원의 법안 통과는 더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힘의 논리로 오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가 강제성을 갖게 된다면 의사들은 적극적 진료보다는 '의사 스스로에게 안전한' 진료를 택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누가 질 것이고,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은 또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

당장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듯 보이는 의료중재원의 모습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오피니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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