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시대, 대형마트와 대형병원

이성우
발행날짜: 2014-06-13 11:54:49
  • 고려의대 본과 4학년 이성우 씨

누구나 한 번쯤 대형마트 쉬는 날을 모르고 갔다가 허탕 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올해로 대형마트의 의무휴일제가 시행된 지 2년에 접어들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명분하에 출점 제한, 월 2회 의무휴업, 영업시간 단축을 강제했다. 최근 대형마트들이 '의무휴업'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것이 알려짐에 따라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주요 대형병원들이 토요진료를 시행하면서 개원가 환자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빅5를 위시로 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대형병원 쏠림을 막기 위해 대형병원의 경증•외래환자 비율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상급종합병원의 지정 및 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규제위를 통과하여 법제처 심사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대형병원 외래 이용 제한과 병상 증설 제한 규정이 개원가의 근본적 부양책이 될 수 있을까. 단순히 '대형병원 : 동네의원 = 대형마트 : 재래시장'의 프레임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재화와는 구분되는 의료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모든 것을 재화라고 한다. 재화는 다시 내재적 특성에 따라 크게 사적재, 가치재, 공공재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구매하는 재화는 사적재(private goods)라고 한다. 시장 질서를 통해 공급되는, 경합성과 배제성을 동시에 가진 재화를 말한다. 대형마트 규제의 문제는 시장질서 훼손에서 기인한다. 그 피해는 소비자 편익 훼손이나 유통 관련 일자리 감소를 넘어서, 도미노처럼 농산물을 공급하는 농민이나 납품 중소기업 등으로 줄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형마트 규제의 반사 이익이 재래시장에 돌아온 것도 아니다. 더불어 살자던 상생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의료는 공공성이 요구되므로 경제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공공성이 요구된다고 공공재인 것도 아니다. 공공재(public goods)는 어느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편익을 얻을 수 있으며,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자를 소비에서 제외시키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 하지만 의료 자원은 한정된 것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많이 사용할 경우 다른 사람의 이용에 큰 지장이 생길뿐더러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 이용에는 본인 부담이 따르므로 비배제성에도 부합하지도 않는다.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공성이 큰 사적재를 가치재(Merit goods)라고 한다. 가치재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개인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는 바람직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진다. 의료도 가치재에 해당하는데, 환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오히려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에는 어느 정도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간섭주의가 요구된다.

자유주의적 간섭주의는 개인이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개인이 합리적 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와 자기통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고 보고, 개인이 스스로 바람직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접근 방식이다. 물론 국가에 간섭의 권한이 주어지는 만큼 이에 대해 국가가 스스로 적절한 자원을 투입해야 할 책임이 따른다.

의료전달체계의 예를 들어보자. 대다수 국민에서 의료는 일련의 전달체계를 가지는 시스템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의료인이 아닌 이상 1차 의료, 3차 의료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뿐더러, 알고 있다 하더라도 무조건 큰 병원이 좋다는 국민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경증만으로도 대학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오죽하면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도 못하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정부는 국민인식 변화를 위해 충분한 정보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제 다시 토요 진료의 문제점으로 돌아가 보자. 평일도 아닌 토요일에 모든 외래가 다 열리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원하는 외래가 열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헛걸음할 가능성도 높다. 과마다 질환이 세분화 되어있고, 의사들도 각자 세부 분과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해당 분과로 '진료 의뢰'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료 의뢰'는 기본적으로 1차 의료기관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아닌가.

그렇다고 토요 진료로 의료 인력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의료는 지식집약산업이기 때문에 추가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기존의 인력을 활용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늘어난 진료 시간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연구와 교육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해져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의료경쟁력 약화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의료는 시장 경제와는 다른 변수들에 의해 작용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토요 진료가 환자들의 요구보다는 병원의 경영난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대형 병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형병원이 그렇게 환자를 많이 보는데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동안 비급여 항목으로 손실을 보전했다면 이제는 그 영역도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 개정안이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1차 의료기관에서 이미 시작된 붕괴현상은 결국 3차 의료기관으로 이어질 것이다. 도미노 놀이를 떠올려보자. 도미노의 한 쪽 끝을 넘어뜨리면 그 다음 팻말이 넘어지고 연쇄적으로 끝까지 이어진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도미노는 불행하게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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