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본과 4학년 이성우 씨
지난 서울시장 선거 정책 토론회에서 의료 생협이 의료 분야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두 후보가 엇갈린 이견을 내세우며 팽팽히 맞섰다. 지금까지 생활협동조합 체계는 '자조', '협동', '연대'와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자발적 모델로 인식되어온 측면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 기대가 크고 긍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활성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의료기관과 구분되는 의료생협의 큰 특징은 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조합원 대의원회에서 의결된 바에 따라 운영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 자원 확보나 재정 운영에 있어 조합원들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조합원이 스스로 필요한 보건의료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소유권과 운영권이 의료인에게 없기 때문에 의료인의 주관이 반영될 여지가 적다. 이 논리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보건의료 영역에서 전문가가 왜 필요한 건지, 그 당위성에 대한 자문(自問)에 도달하게 된다. 의학적 판단은 의료인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상식과 충돌한다. 통제하지 않아도 질병의 역학적 질서에 따라 불필요한 것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기 마련이다.
법리적 측면에서, 의료생협은 소위 사무장 병원으로 위시되는 비의료인의 불법적 의료기관 개설 통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비의료인이 설립, 인가 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에 대해 알아보자. 병원은 민법에 따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분류되고 공익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지분에 대한 외부 출자가 불가하다. 반면 의료생협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분류되고 조합원의 실익증진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익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권에 대한 실익증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이 영리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익사업 잉여금을 조합원에 배당할 수 있고, 해산 시 잉여재산에 대해 처분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의료생협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분류되어 조합원 배당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영리성에 대해 일면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출자금 환급, 경영자 급여 지급, 소액 대출, 적립금 전환 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비영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 실제 의료생협은 사무장 병원의 새로운 모델로 변질되고 있으며, 불법 적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사무장 병원의 패악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포화상태인 1차 의료 생태계 교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미 건강검진, 예방접종 덤핑으로 생협이 들어선 지역 일대의 환자들을 독차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행 생협법에 따르면 총 공급량의 절반 이내에서 비조합원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정 상으로도 문제되지 않고, 규모도 개인 의원보다 크기 때문에 박리다매가 가능한 것이다. 일반 진료는 소홀히 하면서 특정 의료 상품을 염가에 판매하는 것은 의료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고 왜곡하는 행위이다.
또한 의료생협은 서울시 의료 사각지대를 채우지도 못한다. 최근 들어 지하철 사고, 대형 방화사건 등 재난적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협동조합 활성화에 지급할 예산이 있다면 도시 재난에 대비하여 응급의료체계 강화와 중증외상센터 구축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의료 보장성 강화와도 거리가 먼 정책인데 암, 심장질환, 뇌질환, 희귀난치성질환과 같은 중증질환에서 동반되는 재난적 의료비는 비교적 소규모로 구성된 의료생협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할 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의료취약계층이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에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독거노인 어르신, 장애우, 이주노동자에 대한 방문진료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그동안 협동조합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은 '자조', '협동', '연대'를 실현하는 이상적 공동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졌으나 실제적으로는 특정 이해집단에 대한 편향적 자금 지원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등 사회', '공동분배'와 같은 이상주의적 구호에 쉽게 동조한다. 그 뜻이 옳고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사회주의 실험은 전체주의로 귀결되곤 하였다. 경우에 따라 목표가 이상적일수록 결과는 더 처참해질 수도 있음을 역사는 반증한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협동조합은 자유주의적 시장질서 내에서 '코뮌'(commune)들의 고립된 섬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인간의 합리적 구성주의는 자연의 자생적 질서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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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의료기관과 구분되는 의료생협의 큰 특징은 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조합원 대의원회에서 의결된 바에 따라 운영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 자원 확보나 재정 운영에 있어 조합원들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조합원이 스스로 필요한 보건의료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소유권과 운영권이 의료인에게 없기 때문에 의료인의 주관이 반영될 여지가 적다. 이 논리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보건의료 영역에서 전문가가 왜 필요한 건지, 그 당위성에 대한 자문(自問)에 도달하게 된다. 의학적 판단은 의료인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상식과 충돌한다. 통제하지 않아도 질병의 역학적 질서에 따라 불필요한 것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기 마련이다.
법리적 측면에서, 의료생협은 소위 사무장 병원으로 위시되는 비의료인의 불법적 의료기관 개설 통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비의료인이 설립, 인가 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에 대해 알아보자. 병원은 민법에 따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분류되고 공익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지분에 대한 외부 출자가 불가하다. 반면 의료생협은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분류되고 조합원의 실익증진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익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권에 대한 실익증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이 영리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익사업 잉여금을 조합원에 배당할 수 있고, 해산 시 잉여재산에 대해 처분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의료생협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분류되어 조합원 배당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영리성에 대해 일면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출자금 환급, 경영자 급여 지급, 소액 대출, 적립금 전환 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비영리성을 담보할 수 없다. 실제 의료생협은 사무장 병원의 새로운 모델로 변질되고 있으며, 불법 적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사무장 병원의 패악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포화상태인 1차 의료 생태계 교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미 건강검진, 예방접종 덤핑으로 생협이 들어선 지역 일대의 환자들을 독차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행 생협법에 따르면 총 공급량의 절반 이내에서 비조합원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정 상으로도 문제되지 않고, 규모도 개인 의원보다 크기 때문에 박리다매가 가능한 것이다. 일반 진료는 소홀히 하면서 특정 의료 상품을 염가에 판매하는 것은 의료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고 왜곡하는 행위이다.
또한 의료생협은 서울시 의료 사각지대를 채우지도 못한다. 최근 들어 지하철 사고, 대형 방화사건 등 재난적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협동조합 활성화에 지급할 예산이 있다면 도시 재난에 대비하여 응급의료체계 강화와 중증외상센터 구축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의료 보장성 강화와도 거리가 먼 정책인데 암, 심장질환, 뇌질환, 희귀난치성질환과 같은 중증질환에서 동반되는 재난적 의료비는 비교적 소규모로 구성된 의료생협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할 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의료취약계층이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에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독거노인 어르신, 장애우, 이주노동자에 대한 방문진료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그동안 협동조합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은 '자조', '협동', '연대'를 실현하는 이상적 공동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졌으나 실제적으로는 특정 이해집단에 대한 편향적 자금 지원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등 사회', '공동분배'와 같은 이상주의적 구호에 쉽게 동조한다. 그 뜻이 옳고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사회주의 실험은 전체주의로 귀결되곤 하였다. 경우에 따라 목표가 이상적일수록 결과는 더 처참해질 수도 있음을 역사는 반증한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협동조합은 자유주의적 시장질서 내에서 '코뮌'(commune)들의 고립된 섬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인간의 합리적 구성주의는 자연의 자생적 질서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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