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실습에서 기억해야 할 세가지

김혜인
발행날짜: 2014-07-24 10:09:39
  • 연세대 의전원 4학년 김혜인 씨

이제 실습을 한 달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서 지난해 처음 실습을 시작할 때가 생각났다. 2주간의 짧은 소아과 일정을 마치고 6주간의 외과 실습을 앞둔 주말은 왠지 설레었다. 그리고 또 두려웠다. 대학교 때 살아있는 쥐로 실험을 한 기억과 본과 1학년 때 카데바 해부 실습의 기억이 섞여 자꾸 떠올랐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다고 들었고 성격상 외과가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외과 실습을 학년 초반에 배정받았던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 속에 그려왔던 것과는 달리 완벽한 실습학생은 되지 못했던 것이 계속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다른 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론과 실습을 통해 배우는 외과는 매우 다르다. 남의 생명을 다루는 수술에서 폐를 끼치지 않는 학생이 되기 위해 몇 가지 기억해둘 것을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행동을 적극적이되 침착하게 할 것.

'외과의'라는 단어는 당당하고, 적극적이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스크럽을 설 기회가 왔을 때 "열심히 당기고, 열심히 타이하고, 열심히 자르고, 모두다 열심히 해야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봉합을 할 때가 돼 시저가 손에 쥐어졌을 때에는 언제 타이가 끝나나 지켜보며 자를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마침내 선생님이 두 가닥을 같이 들고 텐션을 주었을 때 재빠르게 시저를 갖다 대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성격이 너무 급하다"며 가볍게 꾸중하시고는, 아무도 늦게 컷한다고 뭐라 하지 않지만 봉합사를 자르다가 skin을 자르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외과 수술의 이미지는 뭔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것이라 거기에 맞춰 행동한 것이었다. 그러한 수술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침착하게 원칙을 중시해야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극성과 동시에, 어쩌면 그보다 먼저 침착함이 요구되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둘째, 자신의 식사는 알아서 챙겨먹을 것.

초반에 수술 참관을 할 때, 나와 내 친구는 밥 먹고 오겠다는 허락을 맡을 용기가 없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굶었던 적이 있다. 왠지 어지러운 기분까지 들고 다리도 계속 아파 수술을 보면서도 속으로는 계속 투덜대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 환경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해가 지고 한참 후 수술이 끝나 병원 밖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유달리 소심했던 둘의 조합을 아쉬워했다.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실 수술 방에서는 누구도 밥 먹을 때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는다. 정해진 자리는 누군가에 의해 지켜져야 하고 수술은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배려해가며 손을 바꿀 뿐이다.

더구나 스크럽을 서지 않는 다면 수술에 관해서 기능상 '먼지'에 가까운 학생은 누군가와 교대할 필요도 없다. (물론 교수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년 반의 시간 동안 점심 먹고 왔다고 혼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학생이 우물쭈물 하다가 식사를 하지 못했다면 안타까워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분위기를 보고 허락을 맡거나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다녀오길 권한다.

셋째, 절대 졸지 말 것.

의대생에게 졸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일찍 자는 편이라 본과 2학년 수업 들을 때 거의 졸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보다가는 몇 번 졸은 기억이 있다.
사실 첫 수술을 본 날 조금 당황했다. TV에서 수술을 보고, 학교 수업에서 수술 동영상의 일부만 보았을 때랑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위암 수술을 하면 복부를 절개하고 omentum을 박리하고 혈관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이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열고, 위 절제하고, 닫고'라는 이론만 생각했던 내게 일일이 혈관을 타이하며 정리하고 또 복강을 닫을 때 촘촘히 봉합하는 과정이 길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급기야 어느 수술 도중 졸다가 깼을 때는 너무 놀라 교수님 등뒤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아찔하다는 그 느낌이 아직도 떠오른다.

수업에서 조는 것과 수술에서 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수업을 조금 못 듣는 것은 언제라도 보충할 수 있다. 하지만 수술 중에는 조명에 머리를 박아 컨탐을 시키는 사고에서 자칫 잘못하면 오퍼레이터를 건드리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들께도 조심스럽게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다.

하나는 수술 중간에 질문을 해도 되는지 미리 알려주십사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교수님마다 차이가 있어 학생들에게는 큰 혼란이 되고는 한다. 어떤 교수님은 수술 중간중간에 학생이 질문을 하는 것을 적극성의 척도로 생각하시는가 하면 어떤 교수님은 수술 도중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신다.

학생들이 눈치가 빠르거나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한마디 주의를 주시면 좋으련만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수술 방에서는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어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또 하나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op field를 보느라 숙이고 계시는 상태, 더구나 교수님의 등뒤에서 까치발을 들어가며 수술을 참관하고 있는 경우에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원래 소리의 한 30% 정도 밖에 안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내 이름을 물어보시는 것을 근육 이름을 물어보시는 것으로 잘못 들어 모두를 당황시켰던 것 같은 경험은 나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물론 학생도 교수님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겠지만 교수님들께도 조금만 배려를 부탁 드리고 싶다.

이제 곧 실습이 끝나고 지겨울 시험 준비기간이 지나고 나면 인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실습 학생으로 병원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농담처럼 "인턴보다 학생 선생님이 위에요. 인턴은 돈 받고 일하는 입장이고 학생 선생님은 돈 내고 배우는 입장이니까 편하게 지금을 누려요"와 같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때는 돈 버는 인턴 선생님들이 부러웠었는데 막상 실습학생 기간이 지나가버리고 인턴을 앞두자니 벌써부터 두렵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나를 보며 "그래도 학생일 때가 좋지"라고 말하는 것이 참 싫었는데 왠지 당장 내년부터 저런 말을 입에 달고 살 것 같다.

곧 부러워질 학생 선생님들, 즐겁고 유익한 실습 기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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