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탈리스트'…위기의 내과 대안될까

발행날짜: 2014-11-21 05:58:24
  • 서울대학교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

대한내과학회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위기에 몰린 내과의 난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 즉,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꼽으면서 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수면 아래서 논의해 온 제도가 현실화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의료체계에서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는 데 있어 걸림돌은 무엇이며 이를 추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지난 2012년도부터 이를 처음 주장했던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종양내과)를 지난 20일 만나 물어봤다.

허대석 교수
허 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는 내과의 위기 이외에도 최근 병원계 3대 난제로 꼽히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환자 안전법, 응급실 당직법 등의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내과학회가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현재 내과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힌 데 앞서 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응급실 당직법 등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으로 이 제도를 꼽은 바 있다.

"호스피탈리스트는 새로운 전문의 제도가 아니다"

허대석 교수는 이 제도를 추진하기에 앞서 이를 둘러싼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고 했다.

다수의 병원 관계자 혹은 의료진이 '호스피탈리스트'를 또 다른 전문의 제도쯤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이는 새로운 전문의 제도가 아니라 병원 운영체계, 그중에서도 전문의 인력체계 바꾸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검토한다는 일부 병원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이 병원에 전문간호사(PA) 혹은 전문의 한 두명을 추가로 채용해 운영하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제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호스피탈리스트 제도'의 실체는 무엇일까. 허 교수는 제도를 설명하기에 앞서 현재 의료인력체계를 짚었다.

그에 따르면 병원은 주 7일 24시간 운영된다. 하지만 교수들이 진료하는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간, 그것도 낮 시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은 전공의가 당직 형태로 병원을 지키고 있다.

전공의는 임상 경험도 부족하고 과도한 업무량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면 주 7일, 1일 24시간 내내 전문의가 상주하게 된다. 현재 전문의들은 주 5일, 주중 낮시간에 진료하는 근무체계에 변화를 줌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시행하면 A팀과 B팀으로 나눠 일주일씩 근무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의사는 일주일 근무하고 나면 일주일의 휴일이 생기는 셈이다.
가령, 주 7일 근무를 하고 그 다음주는 7일 내내 휴가를 갖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 4인 1조 혹은 5인 1조의 팀체제로 운영, 구성원의 특성에 따라 격주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고 오전, 오후로 나눠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어떤 팀은 14일(2주)일하고 나머지 14일(2주)를 몰아서 쉬자고 합의하면 그대로 하면된다. 또 다른 팀은 낮에 A팀, 야간에 B팀으로 구분해 근무하기로 했다면 한팀은 일주일 내내 오전에만, 다른 한팀은 야간에만 근무할수도 있다.

의료진의 만족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통해 의료진의 충분한 휴식 및 자기개발은 물론 취미활동이 가능해지고 의사의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24시간 내내 병원에 전문의가 상주함으로써 환자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교수(전문의)가 주 5일 근무에 주말 이틀 쉬고, 그나마도 언제 콜을 받을 지 모르고 또 주중에는 환자를 레지던트 1~2년차에게 맡겨두고 퇴근하면서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피로감만 쌓이고 환자 안전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근근이 막아가며 버텨왔다.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통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응급실 당직제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허 교수의 생각이다.

"호스피탈리스트는 환자가 추구하는 '안전'. 병원이 추구하는 '경영 효율성', 의사가 추구하는 '삶의 질 향상' 등 3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이 제도가 급속도로 확산,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내 환자라는 인식 바꿔야 현실화 될 것"

허 교수는 의사들이 '내 환자'라는 개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제도 정착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많은 의사가 '내 환자'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내가 진료하고 입원시킨 환자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바꿔야 한다. 입원전담전문의 즉, 호스피탈리스트와 동등한 위치에서 해당 환자를 함께 진료한다는 인식을 가져야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호스피탈리스트가 입원환자를 책임지는 시스템이 효율적이라는 게 입증됐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호스피탈리스트와 전문의는 환자가 입원했을 때 공동진료(co-management)를 하거나 전문의가 자문역할을 하는 식이 될 것"이라며 "당장은 어색하지만 임상 경험이 부족한 레지던트에 의존했던 것을 전문의로 대체되기 때문에 교수, 환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의사들만 합의하면 실현 가능한 문제…정부에 맡길 일 아니다"

'의료계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 in Healthcare)'. 미국에서 시작된 호스피탈리스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허 교수는 "한국 의료계도 전통적인 의사 인력체계 틀에서 벗어날 시점"이라면서 "지금 의료계의 총체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제도의 도입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어 "이는 정부 눈치 볼 일이 아니다. 의사들끼리 합의만 하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따라 간단한 일"이라며 "무엇이 환자를 위하는 것인지 의사들이 가장 잘 알지 않나. 의사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허대석 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실시하는 의료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12년 한달 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 로체스터 대학병원, 피츠버그 대학병원 등 3곳을 직접 찾아가 제도 시행에 따른 병원의 변화를 확인하고 돌아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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