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가입조건? 나눔 실천에 동의하느냐는 것이죠"

발행날짜: 2015-01-15 06:00:23
  • 청각장애 야구부 지원하는 오재국 원장 "선한 부자가 롤모델"

"말은 입으로만 하는게 아니다. 가슴으로 표현해라." -영화 '글러브' 대사 중

팔이 커다랗게 반원을 그린다. 허공의 끝에서 그 궤적이 멈춘다. 손끝에서 떨어져 나온 공이 직선을 그리며 글러브를 향해 날아간다. 딱! 직선을 그리던 야구공이 포물선으로 바뀐다.

수십 명의 눈망울이 야구공이 그려내는 포물선과 직선의 움직임을 그대로 쫓고 있다. 숨소리도, 미동도 없다. 1년만에 충주성심학교 야구부가 LG트윈스 팀을 만나는 황금같은 시간이다.

프로 야구팀과 고교 야구부와의 그저 그런 만남이었다면 큰 감동을 주진 못했을 것이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가 가진 특별한 의미는 청각장애 야구부라는 점 때문.

실제로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야구부가 전국대회 첫 출전을 목표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글러브'는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든든한 '빽'

영하 13도의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달 중순 보아스이비인후과 오재국 원장과 LG트윈스의 이병규 선수가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이날은 이병규 선수와 함께하는 충주성심학교 야구클리닉이 있는 날. 2011년부터 시작한 야구클리닉이 벌써 4번째를 맞았다.

영화에서는 듣지 못해 공이 떨어지는 위치도 못 찾고, 말을 못해 팀 플레이도 안 되는 것으로 그렸지만 이들만큼 치열하게 '마음으로 대화'하며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도 없다.

2010년 대한야구협회 53번째 정식등록 고교 야구부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총 7회 봉황대기 고교 야구대회에 참가해 전패를 했다. 그래도 이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우여곡절의 스토리 뒤에는 보이지 않게 활동한 조력자도 있었다. 야구부의 든든한 '빽'이 된 오재국 원장과 이병규 선수는 사실 의사와 환자로 인연을 시작했다.

감기로 내원한 이 선수에게 오 원장이 어렵사리 야구부 지원 이야기를 꺼냈다. 2008년부터 병원 차원에서 장비 등 금전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야구 선수가 직접 1일 코칭을 해준다면 야구부에는 물질적 지원 이상의 따뜻한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이병규 선수는 흔쾌히 응답했다. "해야죠. 좋은 일인데."

하루를 비워두고 새벽부터 오 원장과 이 선수는 충주를 향했다. 가장 놀란 것은 야구부원들. LG트윈스의 간판스타 이병규 선수를 실제로 본 아이들의 놀란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다. 그날도 한파가 기승을 부렸지만 야구부원들의 열정까지 식히지는 못했다. 모처럼 "좋은 일을 했다"는 훈훈한 마음이 들었다.

2011년부터 시작된 클리닉이 2014년까지 이어지면서 오 원장과 이 선수는 형, 동생의 사이가 됐다. 의사-환자로 시작한 인연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일종의 의리마저 공유하게 됐다.

오재국 원장
이 선수는 야구부원들을 아예 잠실경기장으로 초대해 1일 코칭을 할 뿐 아니라 남몰래 1000만원의 성금과 매년 야구 배트와 장갑 등을 지원해 오고 있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스토리가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영화 '글러브'가 개봉했을 당시 보아스이비인후과 네트워크의 전 직원이 영화관으로 집결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오 원장은 "이병규 선수를 치료하면서 그저 의사-환자라는 형식적인 관계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간 의리를 공유하는 느낌도 받는다"며 "환우와의 의리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변치 않고 평생 이들을 지원할 다짐을 매번한다"고 웃었다.

영화 '글러브'의 대사 중에 "말은 입으로만 하는게 아니다. 가슴으로 표현해라"는 구절처럼 오랜만에 만난 야구부원들과 하이파이브 한번이면 언어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가슴에 팍 꽂힌다는 게 그의 말.

"선한 부자 되겠다" 보아스이비인후과의 '나눔 경영'철학

성경 속 인물인 '보아스'는 기업을 통해 가난한 이웃을 살리는 공동체적 마인드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 철학을 실천하겠다고 세운 병원이 바로 보아스이비인후과다.

2004년 개원한 오 원장은 전공의 시절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다짐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돈을 벌면 남을 돕는데 조금이라도 쓰자"는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각장애 선수들로 구성된 야구부가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물어물어 야구부 감독과 연결이 됐다. 세계 농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고 싶지만 야구복과 스파이크를 구입할 여력도, 후원 자체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성심학교 야구부와의 인연은 그때 시작됐다.

300만원의 후원.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해지고 있다. 네트워크에 가입한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적립금의 덩치가 커지고 있다. 네트워크 가입의 조건은 단 하나. '나눔 경영'의 철학에 동의하냐는 물음이다.

보아스이비인후과는 현재 7개의 네트워크로 성장을 했다. 본원인 약수점의 직원만 22명에 달한다. 덩치가 커졌지만 초심은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초심이 더욱 확고해 졌다.

보아스이비인후과는 청소년 자살 예방 단체 지원과 겨울철 독거노인 난방비 지원, 아프리카 아이들의 예방 접종비 지원, 외국인 근로자 진료봉사·보청기 지원, 남산원어린이 뮤지컬관람 지원, 독거 노인 축농증 수술 지원, 해외빈곤 어린이 컴패션 후원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후원 사업을 실천하고 있다.

오 원장은 "최근에는 3명이 접종을 받으면 아프리카의 1명에게 접종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을 시작해 벌써 3000명 가까이 지원을 했다"며 "지역사회에서 고생하는 소방관과 경찰관에도 무료 접종을 하는 사업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의사들이 먼저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선한 부자'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다"며 "종교적 목표가 아니더라도 작은 일을 통해 우리 주변이, 이웃이 바뀌고 변화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보아스이비인후과가 지원하는 다양한 후원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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