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본과 4학년 이성우 씨
흔히 무지개는 일곱 개의 빛깔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한국이 아닌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무지개를 일곱 빛깔로 묘사한다. 하지만 무지개는 스펙트럼의 연속선상이기 때문에 빛깔들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언어 체계에서는 무지개를 네가지 혹은 열가지 빛깔로 표현한다. 사람들은 무지개에서 자신의 모국어가 지닌 색채 어휘 수만큼의 띠를 들춰낼 뿐이다. 믿고 싶은 대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객관화된 실증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적 관념들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여기에는 언어라는 매개체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즉 우리의 인지 체계와 그것에 의해 인지되는 현실 세계는 언어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언어 체계가 정신 세계를 완전히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언어권역의 사람들에게 인지적 해석에 대한 선택의 범위를 한정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처럼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는 현대의학에 대해 조금 색다른 명칭을 부여한다. 일상 생활에서나 방송 매체에서나 현대의학을 두고 양(洋)의학, 양방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한의학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데, 실제로 서양의학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샤머니즘적 요소를 가진 것들이고, 이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폐기됐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현대물리학을 양물리학, 현대수학을 아랍수학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현대의학이 대중들에게 보편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과학과 비견될만한 민족사상이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현상이 곧 실체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음양오행론 혹은 기혈론과 같은 주관적 의식과 상징을 실증적 세계에 투영하는 것이다. 민족사상이라던지 민족의학으로 불리는 것들은 거의 의식세계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간혹 한의학을 비판하면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역비판을 주로 받게 되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정신 세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민족의학이라는 것의 실체가 현상학적 환원주의 혹은 종교에 가까운 것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과학적 사고와 동양적 가치가 대립되면서 인지적 부조화가 진행돼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조차 일관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체질, 한의학, 신토불이, 환단고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도그마로 성립된다. 해외에는 없는 우리 민족만의 브랜드를 통해, 한민족이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걸 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반대로 현대의학은 양(洋)의학이라는 어휘로 포장돼 '제국주의, 외세침략'이라는 어휘와 한 프레임으로 묶여 폄하된다. 언어가 생각을 규정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민족적 자긍심이 아니라 구한말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양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의 표시이며 인지부조화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휘 습관은 다시 사회 전영역에 걸쳐 근대화에 대한 불안감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제는 더 나아가 신어조작까지 불사한다. 한(漢)의학을 한(韓)의학으로 변경해 중국 고대의학을 민족 고유의 것으로 둔갑한 것으로 모자라, 양진한치(洋診韓治)라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어휘를 생성하는, 정신분열 말기에서나 보일 법한 신어조작증(Neologism)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어휘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잘못된 인식체계를 심어주고 있다.
'양방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한의학적 진단원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진단과 치료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다. 음양오행(陰陽五行), 팔강변증(八剛辯證), 기혈론(氣血論)과 같은 한의학의 내적논리체계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즉, 현대의학장비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한의학의 학문체계는 더 이상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사족을 달자면,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의료계 선배들의 잘못이 크다. 현대의학의 진단체계인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를 한방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뿐만 아니라 한의대 출강 문제 역시 의사 선배들의 책임이 크다. 의사들 역시 인지적 부조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한의사들이 현대의학장비를 사용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수순이었다.
음양오행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가치는 의학 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한국인의 지적 발전과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이것을 버리지 않는 한 절대 다음 단계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불행한 식민지 역사의 경험으로 인해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은 스스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피동적으로 얻게 된 현대적 사고방식이 뒤섞여있는 기형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한의사 제도 역시 식민지의 원주민들에게 준의사 면허를 부여했던 일제의 식민통치의 유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한국인 의식 변화의 첫 단초(端初)는 한의과대학 폐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다음 세대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인간은 객관화된 실증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적 관념들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여기에는 언어라는 매개체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즉 우리의 인지 체계와 그것에 의해 인지되는 현실 세계는 언어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언어 체계가 정신 세계를 완전히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언어권역의 사람들에게 인지적 해석에 대한 선택의 범위를 한정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처럼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는 현대의학에 대해 조금 색다른 명칭을 부여한다. 일상 생활에서나 방송 매체에서나 현대의학을 두고 양(洋)의학, 양방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한의학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데, 실제로 서양의학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샤머니즘적 요소를 가진 것들이고, 이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폐기됐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현대물리학을 양물리학, 현대수학을 아랍수학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현대의학이 대중들에게 보편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과학과 비견될만한 민족사상이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출발한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 현상이 곧 실체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음양오행론 혹은 기혈론과 같은 주관적 의식과 상징을 실증적 세계에 투영하는 것이다. 민족사상이라던지 민족의학으로 불리는 것들은 거의 의식세계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간혹 한의학을 비판하면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역비판을 주로 받게 되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정신 세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민족의학이라는 것의 실체가 현상학적 환원주의 혹은 종교에 가까운 것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과학적 사고와 동양적 가치가 대립되면서 인지적 부조화가 진행돼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조차 일관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체질, 한의학, 신토불이, 환단고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도그마로 성립된다. 해외에는 없는 우리 민족만의 브랜드를 통해, 한민족이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걸 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반대로 현대의학은 양(洋)의학이라는 어휘로 포장돼 '제국주의, 외세침략'이라는 어휘와 한 프레임으로 묶여 폄하된다. 언어가 생각을 규정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민족적 자긍심이 아니라 구한말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양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의 표시이며 인지부조화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휘 습관은 다시 사회 전영역에 걸쳐 근대화에 대한 불안감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제는 더 나아가 신어조작까지 불사한다. 한(漢)의학을 한(韓)의학으로 변경해 중국 고대의학을 민족 고유의 것으로 둔갑한 것으로 모자라, 양진한치(洋診韓治)라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어휘를 생성하는, 정신분열 말기에서나 보일 법한 신어조작증(Neologism)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어휘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잘못된 인식체계를 심어주고 있다.
'양방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한의학적 진단원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진단과 치료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다. 음양오행(陰陽五行), 팔강변증(八剛辯證), 기혈론(氣血論)과 같은 한의학의 내적논리체계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즉, 현대의학장비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한의학의 학문체계는 더 이상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사족을 달자면,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의료계 선배들의 잘못이 크다. 현대의학의 진단체계인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를 한방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뿐만 아니라 한의대 출강 문제 역시 의사 선배들의 책임이 크다. 의사들 역시 인지적 부조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한의사들이 현대의학장비를 사용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수순이었다.
음양오행으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가치는 의학 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한국인의 지적 발전과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이것을 버리지 않는 한 절대 다음 단계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불행한 식민지 역사의 경험으로 인해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은 스스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피동적으로 얻게 된 현대적 사고방식이 뒤섞여있는 기형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한의사 제도 역시 식민지의 원주민들에게 준의사 면허를 부여했던 일제의 식민통치의 유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한국인 의식 변화의 첫 단초(端初)는 한의과대학 폐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다음 세대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