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후 복귀한 A대학병원 전공의 "원하는 건 돈 아닌 교육의 질"
"맥도날드 라이더(배달사원)의 시급은 7200원 정도 합니다. 전공의와 맥도날드 알바는 시급뿐 아니라 열악한 근무 환경도 판박입니다."
최근 알바노조가 저임금, 착취를 중단하라며 한 맥도날드 점포를 점거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입에서 맥도날드 알바의 시급 이야기가 나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소연의 주인공 역시 지난 달 파업에 가담했던 전공의. 그에 따르면 알바와 전공의는 직업만 다를 뿐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 업무강도 측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지난 달 중순 인천의 A대학병원 내과 전공의들이 인력부족으로 인한 업무부담·수련환경 개선을 이유로 파업에 돌입했다가 현장으로 복귀했다.
파업 복귀 후 2주가 지난 시점.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그대로 일까. 지난 6일 A대학병원과 인근 B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자리는 윤형선 인천시의사회장과 이광래 인천시의사회 수석부회장의 주선으로 마련됐다. 현장에 있는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개선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목적에서였다.
전공의 대표의 간담회지만 주인공들의 참석은 쉽지 않았다.
이광래 수석부회장은 "전부터 수련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직접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며 "A병원장에게 이런 취지를 40분간 설명하자 수련환경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는 공감을 나타냈지만 전공의들이 참석하는 것에는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참석한 전공의는 총 7명. B병원과 달리 A병원 소속 전공의들은 사실상 병원장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참석한 셈이다.
서먹한 분위기는 윤형선 인천시의사회장이 깨뜨렸다. 윤 회장은 "전공의의 수련이나 근무 여건이나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어 최근 A병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정부가 전공의 수련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끊임없는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 개진을 촉구했다.
"맥도날드 알바생보다 못한 처지, 우리 이름은 전공의"
윤 회장의 발언을 기다렸다는 듯 전공의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모 전공의는 "주당 80시간 근로 기준을 지키는 과가 별로 없다"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년차는 주당 100시간 정도 일하면서 이에 따른 초과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전공의는 아예 맥도날드 알바생과 전공의의 처지를 직접 비교했다.
그는 "평일 40시간 근무에 휴일, 야간 당직을 포함하면 주당 88시간을 일하고, 월급은 총 300만원 남짓 받는다"며 "많이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휴일, 주말 야간 가산율 등을 다 적용해서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6750원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맥도날드 배달 아르바이트도 시간당 7200원을 받고 있지만 전공의들은 그보다 열악한 시급으로 근로와 수련을 함께 하고 있다"며 "다르게 말해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시급 6750원짜리 전공의들에게 진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돈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모 전공의는 "돈 문제를 꺼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면서 수련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며 "정상적으로 교육과 수련을 받기위해 전공의에게 '떠 넘겨진' 일을 누군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입원환자를 다 커버하는게 전공의의 역할이 아니듯이 전공의라는 이름만으로 과중한 업무를 맡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전공의 교육 수련에 있어서 모든 인건비를 고용자(병원) 측만 지불을 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캐나다 등의 선진국은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해 전공의 수련 비용의 상당수를 하는 정부가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며 "저수가 상황에서 경영자에게만 수련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해 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파업 참여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모 전공의는 "내가 분노하는 것은 의협의 이슈몰이에도 병원 경영자들은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수련 환경 개선에 침묵했다는 것이다"며 "병원들도 내부적으로만 쥐어짜면서 최근 모 대학병원의 명예퇴직 사태를 만드는 등 자승자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병원이 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안으로 PA나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들고 나온 것도 내부적으로만 쥐어짜며 가장 싼 인력을 찾으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각과 전공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응급실 당직용 호스피탈리스트가 아니라, 각과를 맡아 일할 전문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병원 경영자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정부에 저수가 문제 해결 촉구와 함께 수련비용 보조를 적극 주장해야 한다"며 "그런 이후에야 전공의들이 병원 내 모든 입원, 내원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바뀔 것이다"고 덧붙였다.
A병원 소속 전공의는 "파업 이후에도 병원은 전공의협의회를 교섭이나 협상의 대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병원은 전공의가 파업으로 빠진 자리에 인턴을 대체 투입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인력 지원을 약속한 것이지 우리 힘으로 뭘 이뤄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파업 이후 얻은 것은 PA와 호스피탈리스트요, 잃은 것은 자신감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이호익 인천시의사회 부회장이 정리에 나섰다.
이호익 부회장은 "의사회 차원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필두로한 법안을 반드시 입법하도록 하겠다"며 "법제화는 결국 여론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의원실의 전화번호를 찍어줄테니 여러분도 전공의의 어려움을 알리는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며 "여론을 움직이는 힘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전화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