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헤라클레스 기둥
여행 8일째, 모로코를 떠나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8시40분에 출발하는 페리가 취소되는 바람에 10시40 분에 떠나는 배를 타게 되어 아침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카사블랑카의 호텔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면도도 했다. 물론 가이드가 당부한 것처럼 생수로 비누칠을 하고 면도 후에는 역시 생수로 비누를 씻어냈다. 이 정도면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에 출연해도 아주 잘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새벽에 문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누군가 창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밖이 컴컴해서 내다보이지는 않지만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풀이 내다보이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가지고 온 컵라면을 먹었는데, 이날따라 준비된 아침메뉴가 괜찮아서 조금은 억울(?)했다. 버스를 탈 무렵에는 비가 그치고 해가 얼굴을 내민다. 아무래도 우리 일행 중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있나보다.
배를 타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하여 일찍 호텔을 나섰다. 덕분에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몇 가지 언어로 출항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배가 움직인다. 파도는 없는 것 같은데 막상 배가 항구를 빠져 나오자마자 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화장실에 가는데 마치 영화 <취권>을 찍는 느낌이다. 땅바닥이나 내게 덤비더라는 술 취한 사람의 변명이 실감났다. 그것도 맑은 정신으로…
잡념을 잊기 위하여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미셀 푸코에 정통한 프랑스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다. 그로는 이 책에서 느리게 걷기, 즉 느리게 사는 것이 장수하는 길이라는 점을 "천천히 걸어야 할 날들은 무척 길다. 이런 날들은 걷는 사람을 더 오래 살게 만든다. 매 시간을, 매분을, 매초를 억지로 서로 잇고 가득 채우는 대신에 그것들이 숨을 내쉬도록, 더욱 심오해지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장수의 비결과 함께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도 덤으로 얻었다. "눈 아래 보이는 것들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보면 그것들은 우리의 소유가 된다. 낑낑대며 암벽 위로 기어 올라가 거기 앉아보라. 드넓은 전망이, 광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때 느껴지는 도취감을 느껴보아야 한다."라고 적은 부분이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보고 느껴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낑낑대며 암벽 위로 올라가는 수고조차 아끼는 여행자들도 많고, 암벽 위로 올라간 다음에도 그저 인증샷을 찍고 뒤돌아서는 여행자들도 많은 것 같다.
지난 해 3월 앙코로와트에 갔을 때 해발 67m 정도인 프놈바켕에 오르는 것이 힘이 든다면서 오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일품이라는 석양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앙코르와트 일대에서 가장 높다는 이곳에 오르면 시야가 닿는 데까지 펼쳐지는 열대우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 공연히 전해져 온 말이 아니다. (후일담이지만 이날 페리에서 찍은 책읽는 사진으로 반디앤루니스의 펜벗 서재 이벤트 '여러분의 책읽는 사진을 올려주세요.' 이벤트에 응모해서 고구마를 선물을 받았다.)
모로코 탕헤르에서 스페인의 따리파로 가는 항로는 지중해가 아니라 대서양이라는 것은 앞서도 적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구분하는 지브롤터해협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챙겨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동침하여 얻은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꾐으로 에우리스테우스의 노예가 되었는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12가지의 위험한 과업을 완수해야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서쪽의 끝에 있는 게리온의 황소무리를 끌고 오는 일이었다. 헤스페리데스 동산을 지나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야 했던 헤라클레스는 괴력을 사용해 산줄기를 끊어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지브롤터 해협이 생기면서 대서양과 지중해가 연결되었다고 한다.
이 때 지브롤터 해협의 양쪽에 생긴 바위기둥을 헤라클레스의 기둥 (라틴어: Columnae Herculis, 영어: Pillars of Hercules)이라고 한다. 북쪽 기둥은 현재 영국령 지브롤터에 있는 ‘지브롤터 바위산’(Rock of Gibraltar)인데, 남쪽 바위는 분명치 않아서, 세우타의 몬테 아초 혹은 모로코의 에벨 무사라는 곳이 지목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스페인 국가 문장(엠블럼)에도 나온다. 스페인의 문장은 옛날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등 4개의 가톨릭왕국과 이들이 연합하여 벌인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로 통합한 이슬람의 나스르왕국의 문장을 합한 것이다.
방패의 왼쪽 위에 있는 금색의 성은 카스티야, 오른쪽 위에 있는 금색 왕관을 쓴 사자는 레온, 왼쪽 아래의 적색과 금색의 방패는 아라곤, 오른쪽 아래 금사슬은 나바라의 문장이다. 그리고 방패의 꼭지 부분에 있는 작은 쐐기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잎이 달린 석류꽃은 나스르왕국을 나타낸다. 그리고 위쪽에 있는 커다란 왕관은 이 다섯 개의 왕국이 하나로 통일되었음을 나타내고, 방채의 가운데 있는 타원 안에 든 세 송이는 백합은 현재의 스페인왕실인 부르봉 왕조를 나타낸다.
그리고 방패의 좌우에 서있는 2개의 기둥이 지브롤터해협의 양쪽에 있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기둥에 감겨 있는 리본에는 "여기는 세계의 끝이다."라고 쓰여 있었는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에 "보다 먼 세상으로(Plvs Vltra)"라고 고쳤다.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좌우명이었던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는 대서양을 넘어 이미 확보한 해외 식민지에 더하여 더 큰 세상으로 스페인의 영향력을 넓히자는 야망을 담은 것이었다고 한다.
배가 따리파항구에 접근하자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사인에 따라 선실출구에 대기했다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입국수속을 마쳤다. 아침 출근길에 밀리는 도로처럼, 조금 늦게 나서면 배에서 내리는데도 한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배에서 내리는 시간이야말로 낭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가이드는 자신이 지금까지 여행팀을 인솔하면서 가지고 있던 팀입국 기록을 15분에서 11 분으로 단축한 것이라고 우리를 추켜세웠다. 어떻든 대단한 일을 했다.
2박3일 동안 따리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짐을 던져 놓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페리부두에서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서 왼쪽으로 돌아서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길가에 조그만 중식당이 있다. 그런데 식당 앞에서 바라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도로가 멀리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길가에 세워둔 차들이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지는 않을까?
중식당에서 고른 메뉴는 소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닭고기 요리 삼종세트에 곁들인 쌀밥이다. 요리는 다소 짠 편이었지만 밥맛이 좋아 용서가 된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곁들였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입국하면서 시간을 절약한 덕분에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부두에 있는 여객터미널에 세워둔 버스를 타러 가면서도 여유를 만끽한다.
이제 우리는 세비야로 간다. 까르멘,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세빌리야의 이발사 등 유명한 오페라의 무대 세비야는 사실 부활절이 끝난 뒤 일주일동안 벌어지는 축제기간이 제일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알룸부라오(Alumbrao)라는 불꽃 점화로 시작되는 세비야의 '4월 대축제'(Feria de Abril; 4월 29일~5월 4일)는 발렌시아의 '불꽃 축제'(Las Fallas; 3월 12일~19일), 알리칸테의 '기독교와 무슬림 축제'(Alcoy; 4월 22일~24일),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in; 7월 1일~14일)와 함께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페인 4대 축제이다.
축제 기간 동안 세비야 주민들의 일상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이때는 플라멩코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세비야나를 추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4월이 아니라서 아쉽다. 그래도 세비야는 볼거리가 많다.
여행 8일째, 모로코를 떠나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8시40분에 출발하는 페리가 취소되는 바람에 10시40 분에 떠나는 배를 타게 되어 아침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카사블랑카의 호텔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면도도 했다. 물론 가이드가 당부한 것처럼 생수로 비누칠을 하고 면도 후에는 역시 생수로 비누를 씻어냈다. 이 정도면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에 출연해도 아주 잘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새벽에 문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누군가 창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밖이 컴컴해서 내다보이지는 않지만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풀이 내다보이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가지고 온 컵라면을 먹었는데, 이날따라 준비된 아침메뉴가 괜찮아서 조금은 억울(?)했다. 버스를 탈 무렵에는 비가 그치고 해가 얼굴을 내민다. 아무래도 우리 일행 중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있나보다.
배를 타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하여 일찍 호텔을 나섰다. 덕분에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몇 가지 언어로 출항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배가 움직인다. 파도는 없는 것 같은데 막상 배가 항구를 빠져 나오자마자 몸이 심하게 흔들린다. 화장실에 가는데 마치 영화 <취권>을 찍는 느낌이다. 땅바닥이나 내게 덤비더라는 술 취한 사람의 변명이 실감났다. 그것도 맑은 정신으로…
잡념을 잊기 위하여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미셀 푸코에 정통한 프랑스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다. 그로는 이 책에서 느리게 걷기, 즉 느리게 사는 것이 장수하는 길이라는 점을 "천천히 걸어야 할 날들은 무척 길다. 이런 날들은 걷는 사람을 더 오래 살게 만든다. 매 시간을, 매분을, 매초를 억지로 서로 잇고 가득 채우는 대신에 그것들이 숨을 내쉬도록, 더욱 심오해지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장수의 비결과 함께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도 덤으로 얻었다. "눈 아래 보이는 것들을 뚫어지게 응시하다 보면 그것들은 우리의 소유가 된다. 낑낑대며 암벽 위로 기어 올라가 거기 앉아보라. 드넓은 전망이, 광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때 느껴지는 도취감을 느껴보아야 한다."라고 적은 부분이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보고 느껴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낑낑대며 암벽 위로 올라가는 수고조차 아끼는 여행자들도 많고, 암벽 위로 올라간 다음에도 그저 인증샷을 찍고 뒤돌아서는 여행자들도 많은 것 같다.
지난 해 3월 앙코로와트에 갔을 때 해발 67m 정도인 프놈바켕에 오르는 것이 힘이 든다면서 오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일품이라는 석양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앙코르와트 일대에서 가장 높다는 이곳에 오르면 시야가 닿는 데까지 펼쳐지는 열대우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 공연히 전해져 온 말이 아니다. (후일담이지만 이날 페리에서 찍은 책읽는 사진으로 반디앤루니스의 펜벗 서재 이벤트 '여러분의 책읽는 사진을 올려주세요.' 이벤트에 응모해서 고구마를 선물을 받았다.)
모로코 탕헤르에서 스페인의 따리파로 가는 항로는 지중해가 아니라 대서양이라는 것은 앞서도 적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구분하는 지브롤터해협의 밖에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헤라클레스의 신화를 챙겨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동침하여 얻은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꾐으로 에우리스테우스의 노예가 되었는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12가지의 위험한 과업을 완수해야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서쪽의 끝에 있는 게리온의 황소무리를 끌고 오는 일이었다. 헤스페리데스 동산을 지나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야 했던 헤라클레스는 괴력을 사용해 산줄기를 끊어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지브롤터 해협이 생기면서 대서양과 지중해가 연결되었다고 한다.
이 때 지브롤터 해협의 양쪽에 생긴 바위기둥을 헤라클레스의 기둥 (라틴어: Columnae Herculis, 영어: Pillars of Hercules)이라고 한다. 북쪽 기둥은 현재 영국령 지브롤터에 있는 ‘지브롤터 바위산’(Rock of Gibraltar)인데, 남쪽 바위는 분명치 않아서, 세우타의 몬테 아초 혹은 모로코의 에벨 무사라는 곳이 지목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스페인 국가 문장(엠블럼)에도 나온다. 스페인의 문장은 옛날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등 4개의 가톨릭왕국과 이들이 연합하여 벌인 레콘키스타(국토회복운동)로 통합한 이슬람의 나스르왕국의 문장을 합한 것이다.
방패의 왼쪽 위에 있는 금색의 성은 카스티야, 오른쪽 위에 있는 금색 왕관을 쓴 사자는 레온, 왼쪽 아래의 적색과 금색의 방패는 아라곤, 오른쪽 아래 금사슬은 나바라의 문장이다. 그리고 방패의 꼭지 부분에 있는 작은 쐐기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잎이 달린 석류꽃은 나스르왕국을 나타낸다. 그리고 위쪽에 있는 커다란 왕관은 이 다섯 개의 왕국이 하나로 통일되었음을 나타내고, 방채의 가운데 있는 타원 안에 든 세 송이는 백합은 현재의 스페인왕실인 부르봉 왕조를 나타낸다.
그리고 방패의 좌우에 서있는 2개의 기둥이 지브롤터해협의 양쪽에 있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기둥에 감겨 있는 리본에는 "여기는 세계의 끝이다."라고 쓰여 있었는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에 "보다 먼 세상으로(Plvs Vltra)"라고 고쳤다.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좌우명이었던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는 대서양을 넘어 이미 확보한 해외 식민지에 더하여 더 큰 세상으로 스페인의 영향력을 넓히자는 야망을 담은 것이었다고 한다.
배가 따리파항구에 접근하자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사인에 따라 선실출구에 대기했다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입국수속을 마쳤다. 아침 출근길에 밀리는 도로처럼, 조금 늦게 나서면 배에서 내리는데도 한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배에서 내리는 시간이야말로 낭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가이드는 자신이 지금까지 여행팀을 인솔하면서 가지고 있던 팀입국 기록을 15분에서 11 분으로 단축한 것이라고 우리를 추켜세웠다. 어떻든 대단한 일을 했다.
2박3일 동안 따리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짐을 던져 놓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페리부두에서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서 왼쪽으로 돌아서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길가에 조그만 중식당이 있다. 그런데 식당 앞에서 바라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도로가 멀리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길가에 세워둔 차들이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지는 않을까?
중식당에서 고른 메뉴는 소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닭고기 요리 삼종세트에 곁들인 쌀밥이다. 요리는 다소 짠 편이었지만 밥맛이 좋아 용서가 된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 곁들였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입국하면서 시간을 절약한 덕분에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부두에 있는 여객터미널에 세워둔 버스를 타러 가면서도 여유를 만끽한다.
이제 우리는 세비야로 간다. 까르멘, 오렌지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세빌리야의 이발사 등 유명한 오페라의 무대 세비야는 사실 부활절이 끝난 뒤 일주일동안 벌어지는 축제기간이 제일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알룸부라오(Alumbrao)라는 불꽃 점화로 시작되는 세비야의 '4월 대축제'(Feria de Abril; 4월 29일~5월 4일)는 발렌시아의 '불꽃 축제'(Las Fallas; 3월 12일~19일), 알리칸테의 '기독교와 무슬림 축제'(Alcoy; 4월 22일~24일), 팜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in; 7월 1일~14일)와 함께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페인 4대 축제이다.
축제 기간 동안 세비야 주민들의 일상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이때는 플라멩코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세비야나를 추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4월이 아니라서 아쉽다. 그래도 세비야는 볼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