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23]

양기화
발행날짜: 2015-03-03 05:30:10
  • 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열다

세비야에서 묵은 솔루까호텔은 지금까지 묵은 어느 호텔보다 좋았다. 전날 플라멩코 공연을 구경하고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이미 9시가 넘었다. 9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으니 공연히 스페인문화에 익숙해진 느낌이 든다. 샐러드를 곁들인 삶은 돼지고기에 과일이 후식으로 나왔다. 돼지고지는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어 좋았다. 돼지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접시를 내놓았다.

여행 9일차다. 10월 15일. 이날은 이번 여행이 있게 한 중요한 날이다. 30년 전 오늘, 아내와 나는 결혼을 했고, 제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는 아내를 불러 "30년간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말해주었다. 아내는 답례로 날 안아주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문을 연 식당에서 깔끔한 컨티넨탈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커피머신이 세 곳이나 있어서인지 다섯 팀이나 되는 단체여행객들이 몰렸는데도 여유가 있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어제 밤에 응급실을 다녀왔다고 한다. 여행 중에 아프면 개인도 불행한 일이지만 일행 역시 나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호텔을 나섰다. 오늘도 하늘은 구름이 두텁게 덮여 있다. 아침체조를 마친 가이드는 포르투갈을 안내한다.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끝 대서양에 연한 직사각형의 나라이다. 대서양에 위치한 부속도서 아조레스섬과 마데이라섬을 포함하여 영토는 9만 2131㎢에 달한다.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본토는 테주 강을 경계로 하여 구분된다. 북쪽은 고원이 들어선 산악지역이며, 남쪽은 평원이다. 테주 강과 함께 스페인에서 발원하는 도루 강, 미뉴 강, 과디아나 강 등이 흐르고 있다.

인구는 1067만 6910명(2008년 기준), 수도는 리스본(Lisbon)이다. 이베리아족, 켈트족, 로마족, 게르만족, 무어족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라틴어에서 기원한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교를 믿는다. 포르투갈의 국민작가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이름을 따서 '카몽이스의 언어'라고도 하는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2억 1000만 명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스페인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약 2만 4500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공존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750년경 켈트족이 정착하였고, 지중해를 건너온 그리스인, 페니키아인 및 카르타고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케사르(Caesar, J.)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원정하여 로마제국으로 편입시켰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는 5세기 초 무렵 이주한 서고트족이 세운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711년 무어족이 세운 알 안달루스에 편입되었다.

포르투갈 사람들 역시 무어인들을 축출하기 위하여 11세기 무렵 북부에서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리스본에서 무어인들을 축출한 과정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을 전후한 포르투갈의 상황을 정리한 니콜라스 시라디의 ‘운명의 날’에 잘 정리되어 있다. 12세기가 되자 레콘키스타의 선두에 섰던 브르고뉴 백작 동 아폰수 엔히크는 스스로 포르투갈 왕이라 선포하고 대공세에 나섰다.

1147년 아폰수의 군대가 리스본의 이슬람요새를 포위하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뜻밖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영국의 다트머스항을 출항한 200여척의 제2차 십자군 원정대가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일부 군함이 오포르투에 잠시 정박한 것이다. 오포르투의 주교는 아폰수왕을 도와주도록 원정대를 설득하였다.

프랑크족으로 구성된 십자군 원정대는 전리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아폰수왕의 보장을 받고서야 전투에 임했다. 공성은 치열했지만 무어인들의 방어도 훌륭해서 무려 17주를 버텼다고 한다. 결국은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무어인들은 온전한 철수를 요구하며 항복했다. 스페인의 레콘키스타가 1492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것에 비하면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행운이 따랐다고 하겠다.

하지만 무어인의 축출이 리스본 사람들에게 축복받을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리스본 공략에 합류한 십자군의 광신적 파괴로 이슬람 사원은 무너졌고, 이슬람이 정착시킨 과학적인 방식들도 모두 버려졌으며, 인도양에서 이베리아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이슬람제국의 교역활동에서 리스본이 차지했던 중요한 위치도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포르투갈은 독립왕국을 세웠지만 이웃한 카스티야의 위협이 거듭되었고 1385년에 이르러서야 알주바호타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위협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14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가 포르투갈에도 유입되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내우외환이 겹치는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지만 농사를 지을 땅이 부족해서 많은 국민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눈앞에 펼쳐진 대서양이 유일한 활로였다. 물론 수평선 너머 어디엔가 절벽이 있어 배가 떨어질 것이라는 속설이 떠돌던 시절이다.

이 무렵 전해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서 잠자고 있던 '모험정신'을 일깨웠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의 '지리학 입문'에는 지구가 둥글다고 묘사되어 있지 않았던가. 유럽에서 육로로 동양으로 가는 길은 장애가 많았기 때문에 바다를 통한 항로의 개척에 성공만 하면 포르투갈로서는 대박을 터트릴 미래지향적 사업이 될 터였다.

이 무렵 이웃 스페인은 여전히 레콘키스타에 매달려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눈길도 줄 틈이 없었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열 주인공은 포르투갈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끼고 살았고, 각종 항해서적을 탐독하며 대서양으로 나가는 꿈을 키운 항해왕 동 엔리케(Dom Henrique)왕자가 그 선두에 있었다.

왕자는 사그레스곶에 항해 전문학교를 세웠고, 항해에 필요한 각종 토목공사를 벌였다. 그리고 14년 만인 1415년 모로코의 세우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세우타함락으로 전리품도 획득하고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왕자는 장기간 항해가 가능하고, 역풍에도 순항할 수 있도록 조종이 쉽고 가벼운 카라벨선을 개발하여 대항해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되었다.

엔히크 항해왕자서거 500년을 맞아 15-16세기 포루투갈의 대항해시대를 기리기 위한 발견의 탑
엔리케왕자 시대(1421-1467)에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따라 내려간 데 이어, 페르낭 고메스(Fernao Gomes)가 아프리카의 기네아만의 북부에서 황금해안을 따라 미나지방까지 진출했다(1469-1479). 바로톨로메우 디아스(Bartholomeu Diaz)가는 1488년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0년 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는 희망봉을 돌아 케냐에 도착했으며, 이곳에서 만난 이슬람 항해가 아마드 이븐 마지드(Ahmad ibn Majid)를 만나 인도의 캘리컷으로 가는 항로를 배워 1498년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하게 되었다. 실로 백여년에 걸친 투자 끝에 일궈낸 성과였다.

그 결과는 컸다. 다 가마는 각종 향신료와 수정, 루비 등을 가득 싣고 포르투갈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양항로를 개척하면서 아프리카 해안에서 노예, 금, 다이아몬드를 실어들인 포르투갈은 단숨에 세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것이다.

▲ 연대를 무시한 포르투갈 제국(1415~1999)의 지도 <출처:위키피디아>(←클릭시 관련 페이지 이동)

뒤이어 ‘행운왕’ 마누엘 1세 통치기간에는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동양으로의 항로와 육지 등 대다수를 발견했다. 16세기 전반에 포르투갈은 아시아로 확장하는데 전력을 쏟는 한편, 1530년 동 주앙 3세가 브라질의 식민화를 시작하였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대항해시대의 탐험결과,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포르투갈 제국은 사상 첫 세계 제국이었다. 1415년 세우타 정복으로 열었던 제국의 길은 1999년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기까지 거의 600년 동안 이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지속된 식민지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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