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페인으로 간다
돈키호테가 거인과 싸웠다는 콘수에그라(2)
여행작가 박정은은 '스페인 소도시 여행'에서 돈키호테가 풍차에 돌진한 곳이 캄포 데 크립타나라고 단정하고 있지만, 전후 맥락을 짚어보면 다소 혼돈을 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필자 역시 지난 편에서 콘수에그라보다는 1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캄포 데 크립타나의 풍차마을이 '돈키호테'의 진짜 무대가 아닐까 싶다고 적었지만, 사실은 콘수에그라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풍차가 서 있는 언덕을 올라 주차장에서 내린 일행은 조금 걸어 언덕의 정상(?)에 섰다. 시린 느낌이 들 정도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풍차가 너무 외로워 보인다 싶었다. 시선을 돌려 마을을 바라보면서 풍차언덕 위에 서서 몰려드는 안개를 마을이 어떻게 물리칠까 하는 망상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별 생각을 다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돈키호테의 망령이라도 씌운 모양이다.
사실은 돈키호테가 맛이 조금 갈 정도로 기사소설에 빠져 지내던 곳은 콘수에그라에서도 조금 떨어진 토소보(Tosobo) 인근 일터이니 말이다. 돈키호테가 한 때 열렬히 사랑했고 둘시네아공주라고 부른 알돈사 로렌조라는 이름의 처녀 농부가 살던 곳이 토소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한 버스를 타러 내려가다 보니, 놀랍게도 위쪽으로부터 네 번째에 서 있는 풍차는 부러진 날개를 달고 있다. 마치 돈키호테가 창을 들고 돌격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처럼 보인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한 돈키호테는 이들을 악의 씨라고 간주하고 상대가 거인임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나선 것이다. 오로지 둘시네아를 위하여 기사로서 업적을 쌓겠다는 일념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대목을 보자.
"온 마음을 다하여 여인 둘시네아에게 자신을 맡기고, 위기에서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방패로 잘 가리고 창을 창받이에 걸친 채 전속력으로 로시난테를 몰아 정면에 있는 첫 번째 풍파를 공격했다. 풍차의 날개를 향해 창을 찌르는 순간 너무나도 세찬 바람에 풍차가 움직이면서 창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잇따라 말과 기사도 휩쓸려 들어가 높이 떠올랐다가 들판에 내동댕이쳐졌다."
저돌적인 사람을 보면 돈키호테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장면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무리 승부는 길고 짧은 것을 대보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되지 않을 승부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흔히 주막집 주인으로부터 기사책봉을 받고,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고 돌격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돈키호테와 그를 보좌하는 산초 판사 이야기만 기억하면서도 돈키호테가 숭모하는 여인 알돈사 로렌조, 즉 둘시네아공주가 너무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굴복시킨 상대들에게 토보소에 가서 둘시네아공주에게 예를 올리라고 하는 장면들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시공사판 '돈키호테(1편)'에서 둘시네아공주가 등장하는 장면을 읽은 기억이 없다.
1596년 스페인 보병대에 입대한 세르반테스는 1571년 10월 7일 그리스의 레판토 해역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했다가 총탄을 맞고 왼쪽 팔에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1575년까지 시실리에서 복무하다가 귀국하던 길에 마르세이유 해안에서 알제리 해적들에게 잡혀 포로생활을 하면서 네 차례에 걸쳐 탈출을 기도한 끝에 스페인의 삼위일체 수도회가 몸값을 치러준 덕분에 마드리드로 귀환하였다.
무적함대의 보급담당관, 세금징수원등을 전전하면서 작품을 발표하다가 1602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돈키호테(1편)'를 구상하였고, 출감 후에 세비야에 주로 살면서 집필하여 1605년에 발표하였다. '돈키호테(1편)'는 출간부터 인기를 끌어 같은 해에 6판까지 나왔지만 판권을 출판사에 양도하는 바람에 경제적인 이득은 얻지 못했다고 한다. '돈키호테(2편)'의 위작이 나오는 등 우여곡절 끝에 1615년 '돈키호테(2편)'이 출간되었다.
'재치 있는 시골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돈키호테'의 서문에서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소설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하여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면에는 반종교개혁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 하에 있던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뜻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사가 눈에 띈다.
"행복한 시절, 행복했던 수 세기를 황금시대라 이름 붙였던 이유는 오늘 날 이 철기 시대에 높이 평가되는 황금이 복된 그 시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소."
기사소설에 빠진 돈키호테와 그를 추종하는 산초 판사의 기행만으로는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한 세르반테스는 삽입소설, 혹은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일곱 개나 넣어 흥미를 고조시킨다. 삽입소설의 대부분이 4부에 집중되면서 이전까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등장인물에 서로 얽혀 복잡하게 전개되다가 최후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고 있어 읽는 이가 빠져들도록 하고 있다.
옮긴이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돈키호테'에는 모두 65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607명이 남자이며, 여자는 52명에 불과한데, 실제 대화하고 행동하는 인물은 150명의 남자와 50명의 여자라고 한다. '돈키호테'가 주목을 받는 이유 가운데 세르반테스가 활동하던 당시 사회의 다양한 구성인물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은 물론 하류계급인 건달, 매춘부, 깡패, 이교도 등까지도 등장하고 있어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있다. 즉 400년도 넘은 옛날에 이미 현대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4부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삽입소설의 등장인물 카르데니오와 루신다 그리고 도로테아와 페르난도가 얽힌 4각 관계는 따로 떼어내도 대박을 쳤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읽다보면 셰익스피어가 스페인을 무대로 쓴 '헛소동'과 흡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앞부분에서는 산양치기로 변장한 부잣집 딸 마르셀라에게 구애한 역시 산양치기로 변장한 대학생 그리소스토모가 맺어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비극인데 반하여, 후반부에서는 부잣집 도련님인 돈 루이스와 판관의 딸 클라라의 사랑은 맺어지는 것으로 대비시킨 것도 재미는 점이다.
한편 레온출신인 비에드마대위가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는데, 전투에서 승리한 신성동맹군이 오스만 투르크 군을 뒤쫓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우왕좌왕하다 놓쳤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에드마대위가 터키해군에 포로로 잡혀 알제리로 이송되었다가 무어처녀 소라이다의 눈에 들어 풀려났을 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면 세르반테스 자신이 알제리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겪은 포로생활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돈키호테'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주요 등장인물인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각각이면서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 즉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야 말로 인간이 추구할 최종의 가치라는 점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영원히 대립할 것만 같은 현실과 이상은 끊임없이 부딪히면서도 점점 그 간극을 좁혀서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경이 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에서 인용한 '돈키호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새롭게 해석하는 돈키호테가 멋있어 보인다.
여행작가 박정은은 '스페인 소도시 여행'에서 돈키호테가 풍차에 돌진한 곳이 캄포 데 크립타나라고 단정하고 있지만, 전후 맥락을 짚어보면 다소 혼돈을 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필자 역시 지난 편에서 콘수에그라보다는 1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캄포 데 크립타나의 풍차마을이 '돈키호테'의 진짜 무대가 아닐까 싶다고 적었지만, 사실은 콘수에그라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풍차가 서 있는 언덕을 올라 주차장에서 내린 일행은 조금 걸어 언덕의 정상(?)에 섰다. 시린 느낌이 들 정도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풍차가 너무 외로워 보인다 싶었다. 시선을 돌려 마을을 바라보면서 풍차언덕 위에 서서 몰려드는 안개를 마을이 어떻게 물리칠까 하는 망상도 하다가 깜짝 놀랐다. 별 생각을 다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돈키호테의 망령이라도 씌운 모양이다.
사실은 돈키호테가 맛이 조금 갈 정도로 기사소설에 빠져 지내던 곳은 콘수에그라에서도 조금 떨어진 토소보(Tosobo) 인근 일터이니 말이다. 돈키호테가 한 때 열렬히 사랑했고 둘시네아공주라고 부른 알돈사 로렌조라는 이름의 처녀 농부가 살던 곳이 토소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동한 버스를 타러 내려가다 보니, 놀랍게도 위쪽으로부터 네 번째에 서 있는 풍차는 부러진 날개를 달고 있다. 마치 돈키호테가 창을 들고 돌격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처럼 보인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한 돈키호테는 이들을 악의 씨라고 간주하고 상대가 거인임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나선 것이다. 오로지 둘시네아를 위하여 기사로서 업적을 쌓겠다는 일념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대목을 보자.
"온 마음을 다하여 여인 둘시네아에게 자신을 맡기고, 위기에서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방패로 잘 가리고 창을 창받이에 걸친 채 전속력으로 로시난테를 몰아 정면에 있는 첫 번째 풍파를 공격했다. 풍차의 날개를 향해 창을 찌르는 순간 너무나도 세찬 바람에 풍차가 움직이면서 창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잇따라 말과 기사도 휩쓸려 들어가 높이 떠올랐다가 들판에 내동댕이쳐졌다."
저돌적인 사람을 보면 돈키호테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장면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무리 승부는 길고 짧은 것을 대보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되지 않을 승부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흔히 주막집 주인으로부터 기사책봉을 받고,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고 돌격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돈키호테와 그를 보좌하는 산초 판사 이야기만 기억하면서도 돈키호테가 숭모하는 여인 알돈사 로렌조, 즉 둘시네아공주가 너무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굴복시킨 상대들에게 토보소에 가서 둘시네아공주에게 예를 올리라고 하는 장면들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시공사판 '돈키호테(1편)'에서 둘시네아공주가 등장하는 장면을 읽은 기억이 없다.
1596년 스페인 보병대에 입대한 세르반테스는 1571년 10월 7일 그리스의 레판토 해역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했다가 총탄을 맞고 왼쪽 팔에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1575년까지 시실리에서 복무하다가 귀국하던 길에 마르세이유 해안에서 알제리 해적들에게 잡혀 포로생활을 하면서 네 차례에 걸쳐 탈출을 기도한 끝에 스페인의 삼위일체 수도회가 몸값을 치러준 덕분에 마드리드로 귀환하였다.
무적함대의 보급담당관, 세금징수원등을 전전하면서 작품을 발표하다가 1602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돈키호테(1편)'를 구상하였고, 출감 후에 세비야에 주로 살면서 집필하여 1605년에 발표하였다. '돈키호테(1편)'는 출간부터 인기를 끌어 같은 해에 6판까지 나왔지만 판권을 출판사에 양도하는 바람에 경제적인 이득은 얻지 못했다고 한다. '돈키호테(2편)'의 위작이 나오는 등 우여곡절 끝에 1615년 '돈키호테(2편)'이 출간되었다.
'재치 있는 시골 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돈키호테'의 서문에서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소설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하여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면에는 반종교개혁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 하에 있던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뜻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사가 눈에 띈다.
"행복한 시절, 행복했던 수 세기를 황금시대라 이름 붙였던 이유는 오늘 날 이 철기 시대에 높이 평가되는 황금이 복된 그 시기에 쉽게 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은 '네 것, 내 것'이라는 두 단어를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었소."
기사소설에 빠진 돈키호테와 그를 추종하는 산초 판사의 기행만으로는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한 세르반테스는 삽입소설, 혹은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일곱 개나 넣어 흥미를 고조시킨다. 삽입소설의 대부분이 4부에 집중되면서 이전까지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등장인물에 서로 얽혀 복잡하게 전개되다가 최후의 해피엔딩으로 이어지고 있어 읽는 이가 빠져들도록 하고 있다.
옮긴이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돈키호테'에는 모두 65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607명이 남자이며, 여자는 52명에 불과한데, 실제 대화하고 행동하는 인물은 150명의 남자와 50명의 여자라고 한다. '돈키호테'가 주목을 받는 이유 가운데 세르반테스가 활동하던 당시 사회의 다양한 구성인물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은 물론 하류계급인 건달, 매춘부, 깡패, 이교도 등까지도 등장하고 있어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있다. 즉 400년도 넘은 옛날에 이미 현대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4부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삽입소설의 등장인물 카르데니오와 루신다 그리고 도로테아와 페르난도가 얽힌 4각 관계는 따로 떼어내도 대박을 쳤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읽다보면 셰익스피어가 스페인을 무대로 쓴 '헛소동'과 흡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앞부분에서는 산양치기로 변장한 부잣집 딸 마르셀라에게 구애한 역시 산양치기로 변장한 대학생 그리소스토모가 맺어지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비극인데 반하여, 후반부에서는 부잣집 도련님인 돈 루이스와 판관의 딸 클라라의 사랑은 맺어지는 것으로 대비시킨 것도 재미는 점이다.
한편 레온출신인 비에드마대위가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였는데, 전투에서 승리한 신성동맹군이 오스만 투르크 군을 뒤쫓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우왕좌왕하다 놓쳤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에드마대위가 터키해군에 포로로 잡혀 알제리로 이송되었다가 무어처녀 소라이다의 눈에 들어 풀려났을 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면 세르반테스 자신이 알제리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겪은 포로생활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돈키호테'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주요 등장인물인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각각이면서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 즉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야 말로 인간이 추구할 최종의 가치라는 점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영원히 대립할 것만 같은 현실과 이상은 끊임없이 부딪히면서도 점점 그 간극을 좁혀서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경이 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에서 인용한 '돈키호테'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용감한 사람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 이것이 나의 순례이며 저 별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길이라오. 아무리 희망이 없을지라도, 또한 아무리 멀리 있을지라도." 새롭게 해석하는 돈키호테가 멋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