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건정심, 과연 사회적 합의기구인가?

김명성
발행날짜: 2015-10-06 05:25:40
  • 김명성 김안과의원 원장(의협 보험자문위원)

차등수가제 관련한 가입자단체의 퇴장 및 법적소송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며

지난 10월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차등수가제 폐지 안건이 격론 끝에 표결과정까지 거쳐 결국 폐지키로 결정되었다.

차등수가제는 지난 2001년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 직면하자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과 함께 한시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2006년 특별법의 만료와 함께 폐지되어야 했음에도 현재까지 유일하게 지속되고 있는 제도이다.

당시 동 차등수가제는 재정절감의 주된 목적 이외에도 일정 진료시간 확보 및 의료서비스의 질 담보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그 효과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었고 급기야 국정감사의 단골 지적사항이 되었다.

이처럼 제도자체의 불명확성과 각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지적 등으로 마침내 해당 정부부처에서 건정심을 통해 동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건정심에 차등수가제 폐지가 처음으로 상정된 것은 지난 6월 달 이었으나, 당시에도 격론과 표결을 거쳤으나 부결된바 있으며, 이는 차등수가제 폐지 자체에 대한 근본적 우려 이외에도 폐지에 따른 대안의 부적절성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에 복지부에서 마련한 새로운 대안과 함께 10월 건정심에서 차등수가제 폐지에 대해 다시 논의하게 되었고, 표결결과 11대5라는 두배 이상의 차이로 폐지가 결정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차등수가제 폐지를 의결하는 과정에서 일부 가입자단체가 보인 행태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정심에서 가입자 단체의 정체성과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과, 더 근본적으로 건정심의 기능과 구성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입자단체는 당일 건정심이 시작되기 전 건물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등수가제 페지를 반대하는 성명서와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가 하면, 막상 건정심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동 안건자체를 회의에 상정시키지 말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정상적인 회의진행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회의가 진행되었으나 차등수가제 안건이 논의되자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그들만의 주장을 되풀이 하였고, 일반적인 건정심 진행 과정에 따라 표결에 들어가려 하자 절차적 문제점과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위원장인 복지부 차관을 협박하는 분위기로 몰고가기도 하였다.

결국 표결결과 2배수가 넘는 차이로 차등수가제 폐지가 확정되자 가입자단체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불만을 표현하며, 회의 진행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는 경솔한 행태를 보였다.

평소 가입자 단체는 건정심이 우리나라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임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정작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막무가내의 모습을 보인 것은 스스로가 합의문화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을 증명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그동안 건정심에서 안건을 논의할 때마다 회의적인 시각으로 불평과 비판 일색을 해온 일부 가입자 대표가 정녕 의료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판단을 제대로 한 것인지 되돌아 봐야 한다.

한펀, 건정심은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전반에 걸친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이다 보니 다루는 내용이나 범위 자체가 워낙 방대할 뿐 아니라, 안건에 따라 심의하는 위원들의 전문성 등이 문제가 되었고, 이는 보사연에서도 연구보고서에 동일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건정심의 공급자, 가입자, 공익으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측면이 강한데 우리나라의 의료정책과 건강보험제도와 같이 중요한 국가시책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전문성과 공정성보다 합의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냉정한 평가를 할 때이다.

공익위원의 적정성은 진즉에 문제점이 제기되어 온 사항이며, 가입자 단체의 구성 또한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업계를 참여시켰다고는 하나, 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사안에 따라서는 거의 연관성이 없고, 고도의 전문성과 견해를 바탕으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건정심 위원이라는 이유로 참여뿐만이 아니라 의결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참고로 독일의 건정심과 유사한 위원회를 보면 가입자가 포함되어 있으나, 거의 옵저버 형태로 참여하고 있으며 표결권한은 없이 운영하고 있다)

어느 순간 가입자단체 위원은 본인이 이 분야에 대한 전문가이자 건정심이라는 무소불위의 구성원이 되어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넘어선 듯한 모양새를 보이기도 한다.

이번 건정심 차등수가제 폐지 과정에 보인 행태도 이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고, 그동안 건정심에서도 심지어는 안건을 통과시키려면 먼저 가입자단체가 완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부터 해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건정심이 건강보험 정책 결정이라는 전문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포괄적으로 건강보험 전반에 관한 사항을 다루도록 할 것이 아니라, 심의와 의결대상을 명확하게 명시함으로써 위원회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기능과 구성의 재정립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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